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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1 - 연향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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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굽이쳐 흐르는 역사의 물길 속을
살다간 사람들. 그들에게 던 저진 세상은 늘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하여 왔다. 그 변화 속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김홍정의 '금강'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병신년 (1596, 선조 29) 유월 그믐. 금강 정지포 대장간 뒤편 토굴 속에 잠들어 있던
병장기들을 깨워 배에 실어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무진년 (1568년)
연향의 손자이자 훗날 창의 봉기의 주동자가 되는 창의 모습과 양지수의 모습을 통해 금강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더 거슬러 올라감을 예고한다.
소설 '금강 1부'는 무오년 (1498년 연산군 4년)과 갑자년 (1504년 연산군 10년) 두 차례의
사화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반정'을 통해 진성대군이 조선 제11대 왕 '중종'이 되어 집권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묘년 (1519) 동짓달. '주초위왕' 이란 글자가 궁궐의 나뭇잎에서 발견된다. 당시 훈구파와 대립한 신진 사류를 몰아 내기 위해 조광조의 성을 파자한
사건이었는데, 바로 기묘사화이다. 이 사건으로 신진 사류 조광조, 김식, 충암 김정 등 수십여 명이
죽거나 유배되었다. 충암 김정은 모든 사림파의 스승이었으며 정암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 대동사회를 꿈꾸었다. 대동사회. 노인이 편안하고, 장년들은 쓰일 곳이 많으며, 젊은이와 어린
사람들은 쓰일 곳에 이를 때까지 의지하여 자라고, 과부나 고아, 홀로 사는 이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고,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여민동락의 대열에 뒤처지지 않는 월인천강의 세상이다. <p22> 그러나 지나치게 맑은 물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법. 그가 꿈꾼
개혁방법은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하였고 결국 기묘사화를 통해 숙청된
것이다. 소설 '금강'은 좌절된 스승의 꿈을 따르고 잇기 위해 자생적으로 조직된
'충암 동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의 후학인 남원 이돈, 정희중, 양지수 등이 주축이 되고 마찬가지로 충암 김정의
후학으로 사랑을 받고 소리꾼이라 하대하지 않은 여인 '연향' 또한 이후 상단의 행수가 되어 '충암 동계'를 지원하게 된다. 소설 '금강'은 제1부에선 연향, 제2부에선 미금, 제3부에선 부용이란 여인을 내세우는데 이는 당시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권력의 정면에 맞서 싸울 수 없었던 여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그녀들은 권력의 정면이 아닌 권력의 뒷면에 서서 싸웠다. 연향은 소리채의 주인이자 상단의 행수였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소리채이자 상단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충암 동계'의 연락망이자 모임의 장이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본의 흐름, 자금줄이었다.
사대부들 역시 상단의 전면에 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인 '연향'이었을 것이다. 가끔 역사 드라마를 보면 화류계에 모여드는 사내들의 언행을
감시하고 전달하는 역할은 대부분 그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여성들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반대파의 숙청을 위해 세작 노릇을 한 것인데 아무래도
여성이었기 때문에 경계심은 덜 했을 것이고, 접근성 면에서도 남성보단 더 쉬웠을 것이다. '연향'이 비록 완전한 기생은 아니었으나 이와 비슷한
역할의 중심에 있었지 않나 싶다. 비단 이런 이유로만 여성인 '연향'을 소설 속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백성들의 젓줄이자 상단의 태동, 그 중심에
있었던 '금강'은 분명 여성의 모습을 닮았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자녀들을 훈육하고 양육하는 어미의 모습, 넓게 굽이
처 흐르는 강줄기는 모든 것을 포옹하고 아우르는 어미의 품을 닮았다. 이는 분명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자
모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금강'은 남성들의 전유물인 거친 정치적 배경 속에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한' 이
깃들여 있어 당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절절하면서도 더 애달프게 읽힌다.
절창. 그녀는 소리꾼이 되었다. 가슴에 그득한 한을
풀어내는 것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소리는 구김 없이 펼쳐져 물살처럼 어느 때는 천천히, 어느 때는 급하게 흐르는 금강이 내는 처절한
소리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p55> 발품꾼들이 지켜야 할 것은 물목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목숨을 버리더라도 물목들은 지켜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러나 연향은 사람이 먼저고 물목은 나중이라 했다. 장수는 연향을 보았다.
고운 여인의 자태와 기품 있는 모습이 겹쳐 있어 대하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파고들었다. <p351> 연향은 양지수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부용'을 강천사에 맡기고 유배를 떠난 스승 충암을
모신다. 그곳에서 상술을 익히고, 갈옷을 만드는 염색법을 배우게 된다. 스승 충암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사회의 한 면을 이곳 사람들과 도우며
아우르는 동안 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송사련에 의해 주도된 '신사무옥'으로 스승 충암은 사사되고,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제주를
떠나 한산에 소리채와 상단을 꾸린다. 이제 스승 충암의 후학인 남원이 '충암 동계'를 주도하게 되고 '연향'은 실질적인 대행수가 된다. 그러나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감시는 여전하고 급기야 '연향'은 남원을 살리기 위해 스승 충암을 죽음으로 몬 '송사련'과의 거래를 시작하는데...
지금의 세상도 여전히 정치적 이권다툼으로
어수선하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싸움의 한복판에 희생되고, 짓밟힌 것은 백성들이었고, 국민들의 몫이다. 불통의
시대. 안타깝게도 당시 그들이 꿈꾸었던 새로운 시대, 이상향인 유토피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죽지 않았으니 죽을힘을 다해 새 세상을 이룬다. 새 세상은 인간이 하늘이고 참주인인
백성이 평안한 세상이어야 한다. 주인이 종이 되는 거꾸로 된 세상은 속히 바로잡아 창천과 창해가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건다. <p104>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별천지였다. 복사꽃의 연분홍빛만으로도 한껏 달아오른 세상은 흰 배꽃과
오야꽃이 함께 섞이자 온통 꽃대궐이었다. 인간의 호사스러움이 이보다 더할 것은 없었다. 저 자연스러움에 몸을 둘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인간의
사악함이란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충암 대감의 탄식이 새삼 눈에 선했다.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