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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그녀
가키야 미우 지음, 김은모 옮김 / 콤마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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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람났다! 더 기가 막힌 건! 남편의 애인과 아내의 영혼이 서로 뒤바뀐
사건이다. 가키야 미우 작가의 '남편의 그녀' 제목만 봐도 불륜과 막장의 냄새가 풀풀 난다. 그런데 이런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책의 표지는 어쩐지 사랑스럽다. 이 무슨 아이러니?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대략 이랬다.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조금은 흔한
설정인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영혼이 뒤바뀐, 그래도 최소한 서로 애정관계로 얽혀있는데
반해 '남편의 그녀'에선 파격적으로 영혼이 뒤바뀐 것이다. 정말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피하고 싶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인
남편의 그녀! 남편의 여자! 남편의 내연녀!로... 무뚝뚝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과 자식들을 둔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히시코. 어느 날 컴퓨터에 남겨진 남편의 흔적을
보고 불륜을 의심하게 된다. 결국 남편을 미행하게 되고 자신보다 훨씬
젊은 여성과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을 목격하게 된다.
너 같은 아줌마한테 여자로서의 상품 가치는 더 이상 없어.
어이, 유통 기한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p34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인 히시코는 이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가정을 유지할 것인가,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어 친구 지사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미 이혼 경력이 있는 지사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절대 이혼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단, 이혼을 해도 되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첫 번째 전문직에 종사한다. 두 번째 따뜻하게 맞이해 줄 부유한
친정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위자료가 충분하다. 이 세 가지에 해당되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누군가 나를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와....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새삼 나 자신을 돌아 보았다. 결혼 후
3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경력은 단절되었고, 친정 엄마는 돌아가셔서 사실상 친정이라는 공간은 없는 것과 같고,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위자료를 받을 가능성도 없고. 나야말로 이혼은 꿈에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지사의 말에 어폐가 있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할 말을 잃었다. 마치 내가 히시코라도 된 것처럼. 그렇다고 진짜 이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가끔 격하게 부부싸움을 할
때 이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은 있다. 물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긴다고,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잘 지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향후(?) 미래를 위해서라도(어떤 미래?ㅋ) 다시 전문직으로 복귀해야겠다.
결국 히시코는 상대 여성인 호시미를 만나기로 한다. 제발 남편에게서 떨어져 달라고 말할
생각이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초반의 풋풋한 호시미와 마흔을 바라보는 히시코. 서로 탐색전을 하며 남편 무기타로를 접전으로 아웅다웅하던
순간! 새빨간 롱드레스를 입은 수상쩍은 할머니로 인해 호시미와 히시코의 영혼은 뒤바뀌고 만다.
"상대의 마음을 뼛속까지 이해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p57
믿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 황당함 속에서 호시미와 히시코는 사태를 파악하고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생활공간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호시미는 남편과 자식들이 있는 히시코의 집으로, 히시코는 남편과 호시미의 불륜장소인 집으로. 그렇게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상대방의 생활 속으로 깊게 스며들게 된 두 사람! 과연, 그녀들은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 히시코는
호시미로부터 남편을 지켜낼 수 있을까? 따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가키야 미우의 '남편의 그녀'.
13일의 금요일 오후, 따뜻한 햇살이 비쳐든 거실의 소파에 누워서 혼자 심각해하며, 혼자 낄낄거리며, 혼자 감동의 쓰나미를
느끼며 읽었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 속 구절을 빌리자면 이런 문장이 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즉 교훈이든, 타인에 대한 이해든, 그 모든 것들이(타인의 아픔과 고통, 슬픔 등)내 속에서 체험된 후라야만 온전에 가까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키야 미우의 '남편의 그녀'는 영혼이 뒤바뀌는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불가능하지만,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잠시나마 나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헤아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책 속 밑줄>
난 아무 자격도,
기술도 없는데.... 이혼하고 나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남편에게 친권을 빼앗길지도 몰라.
결혼한 지 십오 년, 주부라는 자리에 불안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자리가
'남편의 사랑'이라는 불안정한 단서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p213
평범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서 자신만의 시간이 생겼는데도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만 정신을 팔았다. 주부라는 위치가 이렇게 간단하게
흔들리는 것인 줄 알았다면 고등학생 때부터, 아니
중학생 때부터
인생의 기반을 다졌을 것이다. 여차할 때 혼자 먹고살 수 있도록
직업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p214
"그야 오랜 세월 회사원으로 살다보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는 법이지.
회사에서 구르다 보면 강해지기도 하고, 교활해지기도 해.
진창에 발을 담그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어.
여차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더러운
수단이라도 쓰는 법이고." p275
『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만약 지금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다면 자신을 바꾸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야.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해 봐. 네가 변하면 상대도 변하기 마련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