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산다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삶을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이 불공평한 세상이라 해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일 것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현재를 살라'라는 말은 그만큼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갈까? 오히려 어리석게도 영원히 살 것처럼 현재를 살며, 소중한 것들을 내일로 미루며 살아가지 않는가? 죽음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 반면 또 한편으론 매 순간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그리 탐탁친 않다. 그저 마음만을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하며 충실히 현재를,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진리가 아닐까 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러나 <죽기 위해 산다>의 주인공 '기드온 크루'에겐 이런 철학조차 어쩐지 사치처럼 느껴지는 건 그의 삶이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시한부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것과, 죽음 그 자체를 위해 사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이처럼 그의 기구한 운명에 이끌린 것일까? 기존에 읽어 왔던 책 속 주인공들의 삶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그의 삶이 궁금했다. <죽기 위해 산다>는 읽는 내내 할리우드 액션 첩보물을 보는 것 같았는데, 장르 역시 '액션 첩보 스릴러물'이다. 이런 장르의 주인공이라면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튼튼한 몸'은 기본일 텐데,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인공이 주인공인 책이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호기심과 어떤 이끌림에 의해 읽게 되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열두 살의 '기드온 크루'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총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아버지 멜빈 크루는 INSCOM(미 육군 정보안보사령부) 소속 연구원으로 극비리로 진행된 새로운 암호표준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다. 그러나 이론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고, 얼마 후 소련에 의해 암호는 해독되었고 스물여섯 명의 미국 첩보원들은 희생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샘블리 터커' 중장은 모든 혐의를 멜빈 크루에게 덮어 씌우고 급기야 그의 사살을 명령했다. 그 후 진실은 은폐되었고, 세상은 진실을 알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흘러갔다. 스무 살이 된 기드온 크루는 죽음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불우했던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의 나이 서른셋에 결국 그 목적을 이루어 낸다. <터커는 불명예를 안은 채 죽었고 기드온의 아버지는 오명을 씻어냈다. 73페이지> 처음엔 '기드온 크루'의 복수하는 과정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 과정이 빨리 끝나 당황했었다. 이는 다음에 있을 그의 인생 제2 막을 위한 전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서른셋의 기드온 크루.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실현되었고, 결국 아버지의 명예도 회복되었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대자연의 숲 가운데 여유롭게 송어낚시를 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하나의 미션 수행과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보수를 제안하며. 낯선 남자와 함께 도착한 곳은 국토안보부의 협렵업체이자, 실패분석과 엔지니어링 사업을 주로 하는 ESS(이펙티브 엔지니어링 솔루션)라는 사설단체였다. 그곳의 대표 '일리아 글린'을 통해 전해 들은 미션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국 정보기관이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의문의 프로젝트 정황을 포착했고, 그것이 전 세계 힘의 균형을 뒤바꿀 신무기와 관련된 거라는 것! 크루의 임무는 중국 정부를 피해 신무기 설계도를 미국으로 빼돌려 가져오는 중국인 과학자 '마크 우'의 뒤를 밟아 그 설계도를 EES에 가져오는 것이다. 미션 수행의 적임자는 자신이 아니며, ESS라는 단체에 의심을 품은 '기드온 크루'에게 '글린'은 그가 이 미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첫째, 지난 33년 동안 크루의 모든 행적(아버지의 복수, 미술품 절도 솜씨, 컴퓨터 해킹 능력, 변장술과 그에 따른 연기력 등)을 알고 있다는 것! 둘째, 크루 그 자신조차 몰랐던 '동정맥기형' (AVM : 갈렌정맥을 포함한 뇌동맥과 뇌정맥이 비정상으로 얽힌 상태)이라는 불치병, 길어야 1년.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다. <남은 1년을 즐기면서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 1년을 다른 식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바로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기회를 드리는 것뿐입니다. 95페이지> ​결국 크루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며 또 다른 도전으로 치닫는다.

'마크 우'의 뒤를 밟아 추적하던 중 크루는 ​자신 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마크 우'를 추적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마크 우'는 우연을 가장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마크 우'는 죽기 전 크루에게 난해한 숫자들의 조합인 '수열'을 말해 주는데, 크루는 이것이 신무기 설계도와 관련된 암호라 생각하며 자신의 비밀병기인 '톰 오브라이언'을 찾아가 해독을 부탁한다. '수열'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어떤 물질을 만드는 '비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물질이 신무기 설계도가 아닌 '실온 초전도체'라는'전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을 바꿀 물질이라고! 자원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과정에서는 저항에 의해 소실되는 전기량이 있는데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99퍼센트가 소실돼. 하지만 초전도체를 통할 경우, 전기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흐를 수 있어. 에너지 손실이 없는 것.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선을 이 물질로 만든 전선으로 교체하면, 전기 에너지 사용량을 99퍼센트나 줄일 수 있다고. 석탄이나 석유를 계속 소비해야 하는 화력 발전소는 필요도 없다고. 발전과 전송에 드는 비용도 뚝 떨어지겠지. 말 그대로 전기가 거의 공짜 에너지가 되는 거야. 전기 자동차를 거의 공짜로 굴릴 수 있을 테니. 기름 넣는 자동차는 자취를 감추게 될 거야. 석유나 석탄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어. 화석 연료 시대는 끝난 거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이유도, OPEC이 세계를 쥐락펴락할 이유도 사라진다고. 305페이지> 와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진짜 이런 물질이 개발된다면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 역사상한 번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쨌든, 크루는 '마크 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이 중국 공작원 인간 살인 병기인 '노딩 크레인'(고개를 끄덕이는 학이란 뜻)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 자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의 미행을 따돌리고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매춘부 '오키드'를 고용해 그 자신의 특기인 변장술과 능청스러운 연기로 위기를 모면해 나가기도 한다. 그 밖에 CIA 요원 민디 잭슨 등과 함께 미션 과정을 수행해 가면서 크루는 우정, 배신, 위기, 행운 등을 겪는데 이 모든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스펙터클하게 진행되어 간다. 어쨌든! 더 이상 신무기 설계도가 아닌 '마크 우'가 가지고 있었을 '전선'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노딩 크레인'과 '기드온 크루'의 숨 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자, 죽기 위해 싸우는 자! 마지막 대결의 장은 둘 중 하나만 살아서 나갈 수 있다. 크루는 이 대결의 장에서 '전선'을 무사히 사수하고, 살인 병기 '노딩 크레인'을 상대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프터 안나
알렉스 레이크 지음, 문세원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

유괴된 딸이 7일만에 멀쩡하게 돌아왔다. 안도감도 잠시, 본격적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 BEFORE : 이혼전문변호사 줄리아 크라운은 회의가 길어져 제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까지 방전되어 학교 측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도착한 학교 정문 앞엔, 딸 안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곧바로 경찰수사를 요청하고 줄리아 역시 주변을 탐색하지만 안나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별다른 단서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줄리아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어쩌면 평생 딸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줄리아의 일상은 서서히 무너져 간다.  『 두 시간 동안 줄리아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다. 동시에 모든 곳에 있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는 안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에 겨우 두 장소에도 있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지구 상에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한 뼘이며, 들이쉴 수 있는 숨은 고작 한 줌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한 뼘의 공간 속에 안나는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63페이지> 』 『 이는 이성을 넘어선, 주체할 수 없는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그런 선택으로 어미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67페이지> 』 안나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진 유괴사건으로 영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영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다. 처음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동정심으로, 이후 점차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질타로. 딸 안나를 잃어버리기 전 줄리아는 남편 브라이언과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남편 브라이언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는데, 이 사실 또한 언론에 보도되고, 심지어 결혼 전 줄리아의 사생활까지 폭로되면서 줄리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더욱더 거세진다. 『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부모탓을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걸 수도 있다. 자기들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중이라고, 혹시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일을 저렇게까지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거다. 자기들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이니, 자기 아이들은 안전한 거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차피 무작위라 자녀조차도 우리의 통제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위기의 영국 타령이나 하면서 형편없는 요즘 부모를 비난하는 것이 나으리라. 무서운 발상이다. 자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자기 자녀만큼은 안전하다고 자신을 세뇌하는 중인 것이다. <162페이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줄리아는 보드카와 수면제 두 알 정도만 삼키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와중에 딸, 안나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안나를 찾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안 된다. 안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안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때 가서 이 알약들을 삼키자. 그전에는 아니다. <220페이지>

후 AFTERWARDS : 딸, 안나가 실종 7일 만에 멀쩡히 돌아왔다. 조금 야위고, 지난 7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만 빼곤. 딸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줄리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딸 안나에게 7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또한 유괴범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는 것과 왜 유괴범이 딸을 돌려보낸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유아 유괴범의 경우 보통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돈이 목적이거나 소아성애자이거나. 안나의 경우,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돌아온 안나로 인해 줄리아는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나 남편 브라이언과의 관계는 더 악화되기만 하고, 시어머니 에드나와의 갈등 또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나, 친정뿐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는 줄리아.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시작되는 악몽! 소름 끼치는 올가미가 되어 줄리아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데...

베일에 싸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렉스 레이크'의 작품 <애프터 안나>는 ​중간중간 유괴범의 행동을 관찰하고 마음을 읽는 화자가 등장한다. 마치 실행범과 교사자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들은 동일인물인가? 아니면 공모자들인가? 또한 유괴의 목적은 무엇인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딸을 잃은 엄마로서의 줄리아의 심리묘사가 압권이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줄리아의 일상과 실상은 아랑곳없이 그들 입맛대로 변질되어가는 여론몰이엔 나조차도 소름이 끼치곤 했다. 소위 마녀사냥이랄 수 있는. 한 개인의 삶이 검증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폭로되고, 이를 즐기는 군중들의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범인의 목적과 의도를 알아챘을 땐 그 무서운 집념과 신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이에 못지 않게 처절했던 모성애까지도... 현재 미국 북동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엔 알려진 바가 없다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책 속 밑줄>

 

원래 필요악은 올바르고 적절한 것과 잘 구분이 안 되는 법이야. 필요하다는데, 어찌 악할 수가 있겠어? 그것이 올바르고 적절한 결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라면, 그게 무엇이 됐든 그 자체로 올바르고 적절할 수밖에. <76페이지>

 

지금 줄리아는 적막 속에 가만히 서서 텅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다. 만일 그게 딸을 보는 마지막이었다면, 줄리아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거라면, 그날 아침의 인사는 영원한 작별 인사였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 중일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은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이에게 유쾌하게 작별 인사를 할 것이다. <148페이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고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출근해서는 자기들 인생을 사느라 바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의미 따위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덕관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절망에 빠진 엄마를 현관문까지 쫓아와서 상처 줄 목적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질문을 퍼부었다는 사실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언론이란 게 이딴 식으로 운영돼 왔단 말인가? 기사 하나 쓰려면 이런 비열한 짓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이보다는 덜 잔인한 방법으로는 지면을 채울 수 없단 말인가? <154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문학 - 동서양 대표성인 8인의 마음수업
송태인 지음 / 미디어숲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고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쉽게 읽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문학은 어려운 고전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고전 속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사건과 인물, 지명, 고유 개념 또한 일반화하였고 주석과 해설 없이 깔끔하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저자 송태인은 말한다. 고전은 셀프카운슬링이라고. 지금의 세상은 살아가기가 참 녹록지 않다. 청년실업, 경영악화, 환경파괴, 불신과 몰이해 등 그야 말로 난세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고전은 이러한 원인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으라 한다. 국제정세보다는 국내정서에서, 자연환경보다는 인간환경에서,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게서. 문제의 본질을 보는 인식의 거울이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자신의 '안'을 밝게 비출 수 있는 길로 안내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고, 고전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학생, 주부, 직장인, 정치인 등등.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면 무엇이 문제겠느냐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나 자신이 속한 영역 속에 도움이 되고, 가르침이 될 만한 고전들 중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문학은 각자의 영역에, 각자의 본분에 맞게 각 고전들을 연결하여 펼쳐 놓았다. <장자>는 학자에게, <공자>는 학생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직장인에게, <맹자>는 정치인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종교인에게,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은 <금강삼매경>은 주부에게, <노자>는 과학자에게, <소크라테스>는 경영인에게. 물론 어떤 고전이든 그 고전 속 가르침과 지혜를 익히고 배운다면 영역을 구분함 없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각 고전들을 이렇게 적재적소에 적용하여 단순화시킴으로써 그동안 광범위해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전을 좀 더 친숙하게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더불어 고전이 가지고 있는 세월을 초월한 가치까지도. 그렇다고 그 내용 자체가 단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여러 번 읽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곱씹어 봐야 할 일이다.

총 8개의 이야기는 질문과 답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학자가 장자에게 질문을 하면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답변을 하고, 주부가 석가모니에게 질문을 하면 석가모니의 사상을 바탕으로 답변을 해주는 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맞춰 한 꼭지별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주부이면서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학생이자 직장인인 나의 경우는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모니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읽었다.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나, 더 나은 삶을 만들고 이루기 위함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뭐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이것이 '성공'이라는 단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자는 말한다.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성공과 야망을 위해 맹목적으로 하는 공부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공부'야말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이라고. 처음에는 이게 뭔 뜬구름 잡는 소리? 했으나, 곰곰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우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락함만을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 끝은 희망 없는 대한민국, 그 자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기 전까지 나 역시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나는 나름대로 가사노동을 하면서 내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한편으론 티도 안 나는 가사노동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 자꾸만 내 주변의 워킹맘과 나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그때 석가모니는 말씀하셨다.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의 문제이며, 행복은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 나로부터 떠나간다는 것을. 결국 맨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문제의 본질은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소소한 것일지라도 내가 행복하고, 내가 그 안에서 나름의 가치를 발견하면 되는 것을, 나는 끊임없이 내 주변 사람과 내 처지를 비교해 왔던 것이다. 그럴수록 '행복'은 내 안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던 것도 모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문학. 책상 위에 책을 펼치고 노란 불빛 아래 조용히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거울 속에 투영시키듯 바라 보았다. 앞서 간 성현들의 가르침과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이 시대의 등불로서 우리 앞을 비춰주고 있다. 작가의 의도로 주석과 해설을 뺐기 때문에 원문의 출처나 정확한 해설을 알기는 어렵지만, 한 편으론 조금 더 수월하게 읽힌 부분은 분명 있다. 향후 더 깊이, 각 고전의 가르침과 지혜를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각자의 몫이고, 각자 찾아 볼 일이다. 이 책은 어려운 고전을 향해가는 도약이자 발판이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탐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 10인의 예술가와 학자가 이야기하는, 운명을 바꾼 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어 왔지만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 속에서 나는, 내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이해하고, 곱씹어 보곤 했다. 때론 감동에 온몸이 전율한 적도 있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책 속 주인공의 삶에 몰입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들이 내 삶을 통째로 바꿨다거나,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곤 생각지 않는다. 책, 독서의 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나. 아마도 내 독서 방향의 문제겠지. 음식도 먹던 음식만 먹으면 영양불균형이 생기듯, 독서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냥 '독서습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 어딘가 헛헛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분명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탐독 속 10인의 인터뷰이들처럼. 나 역시 책을 매개로 한 마법과도 같은 순간을 경험해 보고 싶고, 내 삶을 변화시킨 '내 인생 책'을 적어도 한 권 정도는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이런 가운데 만나게 된 '탐독'은 작게나마 그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했다. 물론 탐독 속 인터뷰이들이 선정한 '내 인생의 책'들은 다분히 '개인적인 선정'이다. 나하고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그래도!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 끝에 나만의 길을 찾고, 나만의 인생 책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탐독'은 하나의 이정표이자, 길잡이, 참고서라 생각한다. 문화부 기자인 어수웅 작가님은 말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생각은 지극히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 책상물림의 온전하지 못한 독서에서 벗어나, 활자의 울타리 밖에서 성취감을 확인하고 삶을 바꾼 사람들이. 그러한 '진짜 사람들'을 책을 통해 찾고 만나는 일. '나를 바꾼 책, 내가 바꾼 삶'. 이 주제를 바탕으로 그가 인터뷰한 총 10인의 주옥같은 이야기가 '탐독' 속에 실려있다.

김영하의 탐독 <달과 6펜스> 탈주의 서사로 책 속 주인공의 삶과 작가의 삶의 궤적이 너무도 닮았기에 작가의 인생 책이 되었다는 것.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행위는 이해할 수 없으며, 존재는 오리무중이다.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 버리고, 작가는 그 물음표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도 소설을 쓴다." 조너선 프랜즌의 탐독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장편소설 <자유>와 <인생 수정> 단 두 권만으로 '위대한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너선 프랜즌. 그의 세계는 극단의 사실주의로 우리를 발가벗기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몽롱하게 일그러진 이미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지만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눈을 존재의 맨 밑바닥까지 돌리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이야기. "나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독자들은 내 글을 읽지 않았었고, 내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어요. 1990년대 미국은 천박한 물질주의가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새로 개발된 항우울제 따위가 사람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식의 멍청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저는 이 시점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김중혁의 탐독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면 말고', '뭐라도 되겠지', 어딘지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작가 김중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아홉 번이나 읽었고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왔다 한다. "책은 삶을 바꾸지 않지만, 대신 뭔가를 살짝 바꾼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씩, 큰 게 바뀌는 게 아니고, 한 권 읽고 나면 마음의 위치가 0.5센티미터 정도 살짝 옮겨지는 것 같다. 그 정도 바뀌는 게 좋은 것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탐독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은희경의 탐독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무용가 안은미의 탐독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 영화감독 김대우의 탐독 <로빈슨 크루소>, 사회학자 송호근의 탐독 <서유견문>, 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탐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마지막 정유정의 탐독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까지 총 10인의 탐독과 약간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인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총 10인의 이야기들이 다 의미 있고, 재미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끌렸던 건 작가 정유정이었다. 최근 <종의 기원>을 읽고 있기도 했고.

정유정 작가님의 이력에 대해선 작품과 한때 간호사로 일했었다는 것 외엔 없었는데 <탐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정유정 작가님의 <탐독>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작품보다 정유정 작가님 삶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25살에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한다. 간호사 재직 시절, 자신이 몸담고 있던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 참담한 시간들이었다고 작가 정유정은 고백했다. "이제부터는 네가 집안의 엄마다. 동생들을 부탁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으며, 정유정 작가에게 엄마는 하나님이었다고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다.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나 역시 엄마는 내게 하나님이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정유정 작가님의 엄마보단 10년을 더 내 곁에 계셔 주셨구나.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하나님 같은 엄마를 잃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난 또 눈물을 흘렸고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작가님이 있다는 것에 위로도 받았다. 14년이란 시간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고, 30대 중반부턴 소설을 쓰자고 결심했다 한다. 작가님 왈 "대책 없는 확신이 있었다."한다. 0아니면 100, 모 아니면 도, 자신은 타협없는 성격이란다. 아마 작가님의 이런 근성과 재능이 3무 작가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남편은 소방공무원이고, 3살 연하로 동생의 친구였단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던 그 대책 없는(?) 꿈을 딱 서른다섯에 선전포고했다. "이제는 신랑, 당신이 나를 먹여 살려라." 그러나 이후 6년 동안 문예지, 각종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 처음으로 슬럼프라는 것을 겪었다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가 세계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되던 날 신랑과 함께 펑펑 우셨다는 작가님. "글을 쓰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인간 같아요. 마누라로서, 엄마로서 하는 역할이 있겠지만, 나는 '소설가 정유정'의 삶이 가장 중요해요. 그 자체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거든요. 가족이 위기에 닥치면 당연히 제 역할을 해야겠지만, 일상을 살고 있을 때 저는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만이 유일하게 존재감을 주는 걸 어떡하겠어요."  

 

 

작가님의 책상 위 작업노트를 공개했다. 직접 그린 지도들이 가득한 스케치북. 공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해 직접 그린다는, 수채색연필을 이용한 지도들이다. 스케줄 노트도 있다. 시간적 배경을 장악하기 위한 노트란다. 새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노트만 평균 십여 권. 엔터테인먼트로 훌륭하면서도, 동시에 기법 면에서도 웰메이드인 소설. 느슨하고 태만한 순문학보다 정교하고 재미있는 웰메이드 장르 소설을 잘 쓰는 게 꿈이라는 정유정 작가의 말씀.

<탐독>을 통해 10인의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만난 것, 그들 모두의 '영롱한 삶의 한 면을 공유'하게 된 즐거움까지. <탐독, 을 탐하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자 이제 다시 책을 읽으러 가야겠다. <나를 바꾼 단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많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단 0.5cm만이라도 내 마음이, 내 삶이 변화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고 행복하단 걸 알았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와 별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지음, 최상희 옮김 / 사계절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

 한때 북디자이너가 꿈인 적이 있었다. 기존에 하고 있었던 일은 웹디자인이었지만 책을 워낙 좋아해서 '책의 첫인상이랄 수 있는 겉표지'를 책의 내용을 토대로 아름답게 꾸며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시절. 『 여우와 별 』도 예전에 꾸었던 꿈의 한 조각을 떠올리며 읽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기존에 내가 읽어왔던 책과는 확연히 다른,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기도 했고. 『 여우와 별 』은 '펭귄 클로스바운드 클래식' 북 디자이너인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가 쓰고 그린 첫 책이라 한다. 원서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표지는 백박 천양장으로, 내지는 최고급 친환경 종이 문켄지 사용했다 한다. 책장을 넘겨보면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패턴 형식의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고, 몇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색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고 있는  『 여우와 별 』은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여느 서사 못지않게 깊은 울림을 준다.

깊고 어두운 숲 속에 살고 있는 작고 겁 많은 여우에게 유일한 친구는 별이었다. 별빛의 도움을 받아 여우는 딱정벌레도 사냥하고 토끼도 사냥하며 수풀 사이를 쏜살같이 내달리곤 했다. 별과 함께 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가 와도 구름 사이로 별을 불러내어 빗방울과 함께 춤도 추곤 했다. '짝이는 별만 있다면 여우는 행복했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만 같았다.' 여우의 커다란 두 눈동자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별은 사라지고, 여우가 머물렀던 숲은 다시 어둡고 스산해졌다. 땅 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긴 채 여우는 어둠뿐인 공간에서 별이 다시 뜨길 꿈꿨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땅 속에 찾아 든 수많은 딱정벌레들을 상대로 어둠과 맞서 싸운 후 맛있게 딱정벌레도 먹고 기운을 차린 여우는 다시 별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가시덤불과 토끼, 나무들에게 별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고, 그렇게 별을 찾아 헤매며 도착한 곳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막한 숲 속이었다. 여우는 지쳐 잠이 들었고 얼마 후 몸을 적시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우두커니 비를 맞고 있던 여우는 가슴속 어딘가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 마음 속 울림에 고개를 든 여우 앞에 펼쳐진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답고 찬란한 눈부심 속에서 여우는 자신의 친구인 단 하나의 별도 빛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여우는 사뿐 사뿐 걷기 시작했다. 그 어딘가로...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겪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고 그려진 ​ 『 여우와 별 』 은 조용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때론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겪는다. 아주 어렸을 적,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다. 겁에 질려 있던 강아지를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켜 주었는데, 그 순간 나를 쳐다보는 강아지의 눈망울 속에 나를 향한 신뢰의 눈빛이 담겨 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러다 당시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퇴근 후에 강아지를 보고 집에서 키울 수 없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셨고, 군 장병 한 분이 찾아와 강아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현관문 밖 계단참을 내려가는 군 장병 가슴에 안긴 강아지의 눈빛.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진 것인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이 나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 했을지.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렇게 강아지를 보내야만 했다. 아주 오래전, 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건,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애정을 갖고 의지했던 대상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억과 함께 가슴속 영원한 별로 남는다. 그리움의 별, 희망의 별, 아픔의 별, 상실의 별 등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를 살고 앞을 향해 사뿐사뿐 나아갈 수 있는 건, 가슴속 가득히 쌓여진 별들 때문이 아닐까. 아프지만, 슬프지만, 그 작은 빛들이 모여 삶은 더 깊어지고, 이별과 상실의 고통 속에도 분명, 함께 했던 추억이란 이름의 행복 역시 같은 크기로 우리 가슴속에서 언제까지나 빛나고 있을 테니까.

 

 

 

<기존에 있었던 책의 표지를 Re-Design 보았던 것>

: 론다 번의 시크릿, 하지은 얼음나무 숲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