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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안나
알렉스 레이크 지음, 문세원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
유괴된 딸이 7일만에 멀쩡하게
돌아왔다. 안도감도
잠시, 본격적 악몽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 BEFORE : 이혼전문변호사 줄리아 크라운은 회의가 길어져 제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까지 방전되어 학교 측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도착한 학교 정문 앞엔, 딸
안나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곧바로 경찰수사를 요청하고 줄리아 역시 주변을 탐색하지만 안나의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없다. 별다른 단서 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줄리아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과 어쩌면 평생 딸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줄리아의
일상은 서서히 무너져 간다. 『 두 시간 동안 줄리아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었다. 동시에 모든 곳에 있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는 안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에 겨우 두 장소에도 있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지구 상에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 한 뼘이며, 들이쉴 수 있는
숨은 고작 한 줌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한 뼘의 공간 속에 안나는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63페이지> 』 『 이는 이성을 넘어선, 주체할 수 없는 동물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그런 선택으로 어미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67페이지> 』 안나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진 유괴사건으로 영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영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다.
처음엔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 대한 동정심으로, 이후 점차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질타로. 딸 안나를 잃어버리기 전 줄리아는 남편 브라이언과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남편 브라이언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는데, 이 사실 또한 언론에 보도되고, 심지어 결혼 전 줄리아의 사생활까지 폭로되면서 줄리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더욱더 거세진다. 『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부모탓을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확인받고 싶은 걸 수도 있다. 자기들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중이라고, 혹시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일을 저렇게까지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거다. 자기들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터이니, 자기 아이들은 안전한 거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차피 무작위라 자녀조차도 우리의 통제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위기의 영국 타령이나 하면서 형편없는 요즘 부모를 비난하는 것이 나으리라. 무서운 발상이다. 자녀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자기 자녀만큼은 안전하다고 자신을 세뇌하는
중인 것이다. <162페이지> 』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줄리아는 보드카와 수면제 두 알 정도만 삼키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와중에 딸, 안나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안나를 찾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안 된다. 안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안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때 가서 이 알약들을 삼키자. 그전에는 아니다. <220페이지> 』
후 AFTERWARDS : 딸, 안나가 실종 7일 만에 멀쩡히 돌아왔다. 조금 야위고, 지난 7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만 빼곤. 딸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줄리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딸 안나에게 7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또한 유괴범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는 것과 왜 유괴범이 딸을 돌려보낸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유아 유괴범의 경우
보통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돈이 목적이거나 소아성애자이거나. 안나의 경우,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돌아온 안나로 인해
줄리아는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나 남편 브라이언과의 관계는 더 악화되기만 하고, 시어머니 에드나와의 갈등 또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나, 친정뿐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는 줄리아.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시작되는
악몽! 소름 끼치는 올가미가 되어 줄리아의 목을 서서히 옥죄어
오는데...
베일에 싸인 베스트셀러 작가 '알렉스 레이크'의
작품 <애프터 안나>는 중간중간 유괴범의 행동을 관찰하고 마음을 읽는 화자가 등장한다.
마치 실행범과 교사자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들은
동일인물인가? 아니면 공모자들인가? 또한 유괴의 목적은 무엇인가? 읽는 내내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만큼 가독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딸을 잃은 엄마로서의 줄리아의 심리묘사가 압권이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서서히 무너져가는 줄리아의 일상과 실상은 아랑곳없이 그들
입맛대로 변질되어가는 여론몰이엔 나조차도 소름이 끼치곤 했다. 소위
마녀사냥이랄 수 있는. 한 개인의 삶이 검증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폭로되고, 이를 즐기는 군중들의 심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범인의 목적과 의도를 알아챘을 땐 그 무서운 집념과 신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이에 못지 않게 처절했던 모성애까지도... 현재 미국 북동부에 살고 있다는 사실 외엔 알려진 바가 없다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책 속 밑줄>
원래 필요악은 올바르고 적절한 것과 잘 구분이 안 되는 법이야. 필요하다는데, 어찌 악할 수가 있겠어?
그것이 올바르고 적절한 결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라면, 그게 무엇이 됐든 그 자체로 올바르고 적절할 수밖에. <76페이지>
지금 줄리아는 적막 속에 가만히 서서 텅 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다. 만일 그게 딸을 보는 마지막이었다면, 줄리아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거라면, 그날 아침의 인사는 영원한 작별 인사였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나는 중일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은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이에게 유쾌하게 작별 인사를 할 것이다. <148페이지>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고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출근해서는 자기들
인생을 사느라 바쁠 것이다. 행간에 숨은 의미 따위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덕관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가 절망에 빠진 엄마를 현관문까지 쫓아와서 상처 줄 목적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질문을 퍼부었다는 사실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언론이란 게 이딴 식으로 운영돼 왔단 말인가? 기사 하나 쓰려면 이런 비열한 짓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이보다는 덜 잔인한 방법으로는 지면을 채울 수 없단 말인가? <15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