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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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플레란 프랑스어로 '부풀다'라는 뜻을 가진 디저트의 일종이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오븐에서 구워낸 후 부풀어 오른 모양새를 유지하기가 꽤 어렵다고 한다. 터키의 작가 애슬리 페커는 이 모양새에 우리의 인생을 빗대어 수플레라는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수플레는 마치 아름다운 여인의 변덕스러운 마음과도 같다. 오븐을 여는 순간, 수플레의 한가운데는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부풀어 있지만, 한순간 폭삭 꺼져버린다. 마치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수플레를 다시 만들듯 인생 역시 다시 딛고 일어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수플레는 세 나라 세 도시에서 뜻하지 않게 인생의 역풍을 맞이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아릿하게 교차되며 펼쳐진다. 외면당한 여자 릴리아, 사랑을 잃은 남자 마크, 삶에 지친 여자 페르다. 비록 다른 공간 속에 있지만 그들이 처한 삶은 녹록지 않다. 뉴욕에 살고 있는 올해 62세인 릴리아는 한때 아름다운 필리핀계 화가였으나 결혼 후 남편 아니와 입양한 아이들 장과 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쳐 헌신해 왔다. ​그러나 현재 그녀에게 남겨진 건 더 이상 사랑을 주지 않는 남편과 자식들의 비난과 멸시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아니는 쓰러지고, 릴리아는 남편이 없는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지만 아니는 반신불수가 되어 그녀의 삶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파리에 살고 있는 55세의 마크는 자신의 전부이자, 우주랄 수 있는 아내 클라라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 언제나 그렇듯 현관문 밖까지 풍기는 커피향이 나지 않자 불안감을 느낀 마크는 부엌에 쓰러져 있는 아내 클라라를 발견하고 절망하고 만다. 세상을 떠난 아내 클라라, 그녀가 없는 삶은 마크에겐 이 세상이 사라진 것과도 같았다. 마크는 점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길 원하고 자신 안으로 숨어들어간다. 터키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페르다는 남편 시난과 남매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이다. 매주 금요일 프랑스에 살고 있는 딸과 통화하는 시간을 소소한 행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페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갑작스레 몸을 다치면서 자신의 집으로 모셔오게 된다. 몸도 몸이지만 페르다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까지 보이며 단 한순간도 페르다를 그냥 놔두질 않는다.

 세 명의 주인공들에게 닥친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 그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나 자신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을 응원하기도 했다. 릴리아, 마크, 페르다는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어느 교차점에서 똑같은 책 한 권을 꺼내든다. '수플레' 요리책이다. 단 하루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간직한 그들이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 요리를 하면서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잊는다. 요리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만의 세상이다. 매번 수플레 한가운데가 푹 꺼질 때마다 릴리아는 자신의 인생이 무너지는 걸 봤다. 아무리 살아가려고 계속 노력해도 영혼의 중심이 갑자기 허물어지면서 그녀의 삶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녀의 인생은 이 전설적인 디저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든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만하면 또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그러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절망할 때면 다시 싸워봐야겠다는 기운이 솟구치곤 했다. <236 페이지> 집안에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환자 본인도 고통이지만 가족들 또한 큰 고통이다. 자신의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다. 환자의 몸을 씻기고, 배변을 처리하고, 먹여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몇 시간 단위로 몸의 위치를 바꿔주고. 오죽하면 간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을까. 릴리아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길 바랐고, 페르다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길 바랐다. 물론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페르다는 죄책감 속에 또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녀들의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되어 몇 번이나 책을 잠시 접고 옛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암 전이로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었던 엄마를 간병하면서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가졌었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 구석 방에서 혼자 입을 틀어막고 '그런 생각을 했었던 죄책감' 때문에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며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속으로 외치며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가. 마크 역시 전부였던 아내를 잃은 그 상실감. 사랑하는 사람을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잃는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그래도 마크와 페르다에겐 뭔가 희망적인 새로운 삶이 보여서 마음이 놓였지만, 릴리아의 결말은 예상 밖이어서 한동안 멍해진 머리로 앉아 있었다. 뒤에 릴리아의 에필로그나 그런 게 있는데 내가 못 본 것일까? 하며 애꿎은 책의 뒤표지만 펼쳤다 넘겼다 하기도 했다. 그냥 뭐랄까. 진짜 소설처럼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행복하게 이 삶을 극복했습니다'라는 메시지로 끝나길 바랐으면서도 또, 한 편으론 모든 삶은 다 극복되거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와서 '수플레'는 슬펐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삶이 우리가 가졌던 희망대로 끝나는 건 아니기에 이것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책속 밑줄​>

​> 부엌은 엄마의 가슴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145 페이지>

> 수플레의 한가운데가 푹 꺼질 때마다 매번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살고 있는 것처럼.

<20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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