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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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관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임과 동시에 1기 마지막 작품이다. 1기 작품 중 네 번째 작품인 <인형관의 살인>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시계관의 살인>이 가장 재미있었고, 시리즈 중 평도 가장 좋고, 그래서인지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시계관의 살인> 역시 반복 교차되는 '이중구조'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각의 시간을 형상하는 12개의 방과 시계추 모양의 진자의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의 '구관'과 '신관'이라는 두 곳의 물리적 공간이 바로 서술의 중심축이다. '시계관' 역시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일본 전역에 지었다는 기괴하고도 독특한 건축물들 중 하나이며, 이곳의 주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계회사 '고가 정계사'의 전 회장인 '故 고가 미치노리(63)'였다. (지금은 그의 아들 '고가 유키야'(17)가 '시계관'의 현 주인이다.) 그는 자신의 딸 '故 고가 도와(14)'를 위해 시계관을 설계했는데, <관 시리즈>를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런 독특하고 기괴한 건축물들을 지은 걸까?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다행히 작가는 '시마다 기요시'를 통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 준다.


....

"내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지금 한 이야기와 같은 레벨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딱히 거기서 무슨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가 지은 건물에는, 글쎄 뭐랄까, 이 사회의 압박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 자 하는

어떤 장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런 기분이 들어.

거기에는 물론 설계를 의뢰한 '인간이 사육해 온 악몽'도 다분히 섞여 있을 것이고,

아니 오히려 그쪽이 메인인지도 모르지.

수차관의 주인이었던 후지누마 기이치, 미로관에 살고 있었던 그 선생의 경우에도, 말하자면 세이지는

그들의 '고독한 환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를

그런 관의 형태로 만든 것인지도 몰라.

그 점은 시계관을 지은 고가 미치노리도 예외는 아닐 거야.

.

.

<345page>


3년 전 <십각관의 살인>에서 대학생이었던 '가와미나미'가 이제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재등장 하는데, 무척 반가웠다. '카오스'라는 잡지를 펴내는 '희담사'의 신입 편집자로 재직 중인 그는 '시마다 기요시'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회사에 추리소설을 낸 것에 대하여 반가워하면서도 한 가지 부탁을 한다.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시계관'에 소녀의 원혼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 진상 파악을 위해 교령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혹 시간이 되면 참석해 달라는 것이다. 희담사 직원들,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들, 초능력자 '고묘지 미코토'는 먼저 '시계관'을 방문하고 108개의 시계로 가득 찬 '구관'에서 교령회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날 밤 '가와미나미'는 진자의 방에서 '미코토'가 누군가와 다투는 소리를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다음 날, 구관의 출입열쇠를 가지고 있던 '미코토'가 사라진 것을 시작으로 밀실이 되어버린 구관에선 정체불명의 살인자에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임을 당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시계관'에 합류하게 된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 중 한 명인 '후타나시 료타'와 '시마다 기요시'(=시시야 가도미)는 '구관'으로 가지 않고 '신관'에 머물면서 관리자인 '사요코'를 통해 10년 전 '시계관'에서 연이어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신관에선 '시마다 기요시'가 10년 전 사건을 추적하는 한편, 구관에선 '가와미나미'가 밀실 속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결국 10년 전 발생한 사건은 현재 발생한 사건과 전혀 무관치 않은데, 어쨌든 한 곳은 죽음과 공포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고, 한 곳은 큰일 없이(약간의 수상쩍은 일들은 있지만) 돌아가는 일상의 장이 되어버린 이 극명한 상황이라니. 읽으면서 뒤늦게 합류한 '후타나시'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휴.............


<시계관의 살인>은 밀실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물리트릭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가장 충격적이고 큰 비중을 두었던 트릭은 이 '공간'이 아니다. 어쩌면 책의 제목에서도 그 암시하는 바를 충분히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눈에 보이는 실체만을 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만을 쫓고, 그것을 현실이라 명명하며, 그 틀안에서 안심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라는 어쩌면 관념적인 것조차도 '사물화'(=실체화)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시계가 아닌가? 그리고 완벽하게 시간을 통제했다고, 통제하고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리석게도. 그래서일까? '故 고가 미치노리'의 딸에 대한 집착과 사랑으로 세워진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의 모습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유한함을 느낌과 동시에 애달프기까지 했다.

마지막, 침묵의 여신이 노래할 때 독자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펙터클한 장관이었다. 시간의 감옥에서 해방된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이루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니... 1기 전 시리즈들 보다 꽤 두꺼웠던 <시계관의 살인>이었지만, 흡입력 있게 잘 읽혔고, 무엇보다 '시마다 기요시'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았던 책이다. 덕분에 서평이 조금은 길어지겠지만, 그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아 아래 적어두도록 한다.



"시시야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이하생략)

"그렇지만, 주의주장이란 관점에서 마음속으로 전혀 믿지 않고 있을 거야.

물들어 있으니까 말이지.

이른바 과학적 사고란 것에 말이야. 하지만, 무조건 비과학적이라고 부정하는 것은

현대인의 구제받을 길 없는 교만이란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야.

.

.

<123page>




"우리들이 평소에 굳건하다고 믿는 이 현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빈약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는 것인지를 말이야.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현실은 절대로 견고한 실체가 아니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아."

"환상이오?"


"현실이란 이름의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서 만인으로 하여금 분명한 실체라고 인정하게 하고,

또 믿도록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일이 이 사회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들에게 안정이 공급되는 셈이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이 도식은 변함이 없어.

그러나 동시에 종종 그것이 일종의 지배 - 통제의 장치로 과잉되게 기능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

결과적으로, 그런 도식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고 단언하면서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소인배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되었어.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는 자가 나타나면,

거의 신경질적으로 과민반응을 일으키지.

맹목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화를 내고, 그들을 배제하고, 매장시키려고 해.

그런 모습을 보고 웃는 것은 언제나 그들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그 거대한 지배 = 통제 장치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뽑아내려고 분주한 패들이지.

.

.


<3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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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수호자 수호자 시리즈 1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김옥희 옮김 / 스토리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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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의 수호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환상적인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로 구성된 <동양적인 세계관이 돋보이는 판타지 모험담>이었는데, 책으로 접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에하시 나호코의 수호자 시리즈는 총 12권으로 현재 제4권 '허공의 여행자'까지 출간되었다. <정령의 수호자>,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신의 수호자>는 '단창의 바르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30대의 여성무사가 주인공이며, <허공의 여행자>, <푸른 길의 여행자>는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가 주인공이다.

 

보통 판타지 문학이나 작품의 경우 10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령의 수호자 속 주인공인 무사 '바르사'는 30대 여성이다. 출간 당시 출판사 측에서도 난색을 표했다고 하는데, 작가 '우에하시 나호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인생 경험이 풍부하며, 어린 생명을 푸근히 감싸 안을 수 있는 모성애를 지닌 여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한다. 나 역시 당시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에도 그랬고, 책을 읽을 때에도 주인공이 나와 같은 30대 여성이어서 보다 친근감이 가고, 공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정령의 수호자 속 스토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주인공 '바르사'는 북방의 칸발 왕국 출신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가 궁중 암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면서 아버지의 친구 '지그로'의 손에 무사로서 길러지게 된다. 이후 '지그로'마저 목숨을 잃게 되자 '바르사'는 고향인 칸발 왕국을  떠나 사람들을 경호하면서 번 돈으로 세상을 떠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사'는 우연한 계기로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의 목숨을 구하면서 제2황비의 은밀한 부탁을 받게 된다. 바로 '챠그무'의 호위무사가 되어달라는 것. 알 수 없는 것의 알을 품은 제2황자 '챠그무'가 부황으로부터 몇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아 왔고, 이번 사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르사'는 이를 받아들이고 '챠그무'의 몸속에 존재하는 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술사 '토로가이'를 찾아가게 되고, 이는 '늉가로임의 알' 즉, 물정령의 알임과 동시에 '챠그무'가 이를 수호하는 '정령의 수호자'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챠그무'가 품은 알은 나라의 가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느 것이든 자기가 선택한 역할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정령의 수호자 늉가로차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자 묵직한,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느끼며 챠그무는 또다시 처음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왜 나일까?


왜 나일까? 수없이 자문해 보고 괴로워했지만, 이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챠그무'는 깨닫게 된다.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지금의 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고. '바르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객으로 온 친우들을 베어넘기며 살아남았던 '지그로', 당시에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 또한 '챠그무'를 구하고 지켜내면서 '지그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굴곡진 삶을 살아왔지만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는 '바르사'와 어리고 연약하지만 점차 강인한 성인으로 성장해 갈 '챠그무', 험난하지만 따뜻한 둘만의 여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왜냐고 물어도 알 수 없는 뭔가가 갑자기 주변 세계를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커다란 손아귀 안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 말하지만, 위 말처럼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늘 후회로 남아있는 것이 누구나의 삶이다. 차그무의 삶과 선택도, 바르사의 삶과 선택도 돌아보면 후회 따윈 없는 삶이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한 믿음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담담한 듯 슬펐지만, 이 헤어짐이 결코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슬픔을 떨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바르사, 나를 챠그무라고 불러줘. '안녕, 챠그무'라고 말해줘."

바르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안녕, 챠그무".

챠그무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안녕, 바르사, 탄다, 토로가이 님.....고마워."

탄탄한 세계관과 건국신화, 다양한 민족 문화에 대한 생생한 묘사, 여러 나라의 역사와 정치적 관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게 곁들여진 <수호자>시리즈. 이는 분명 여느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부분이다. 특히 <정령의 수호자>라는 제목처럼 모든 만물에 소생하는 정령의 존재는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닌 오히려 작품의 세계관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경의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다음권 <어둠의 수호자>로의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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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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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하고 있는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님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미로관의 살인>이다. 기존의 두 작품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이 섬과 육지, 과거와 현재라는 이중적 교차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미로관의 살인>역시 소설과 소설 속 소설(즉, 액자소설)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관 시리즈> 기존 작품들에서 '탐정'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시마다 기요시>에게 어느 날, 한 권의 책이 배송된다. 발송인은 <시시야 가도미>로 책의 내용은 1년 전 일어났던 '미로관의 참극'을 쓴 것이다. 당시 <시마다 기요시>는 이 사건과 관련된 경험자이기도 했다. 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책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탐정 역할을 했던 <시마다 기요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음을 밝힌다.

이제 독자들은 소설 속의 소설인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을 통해, 1년 전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조우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보통의 액자소설의 경우 스토리를 통해 액자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은 실제 책 중간에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이 '물리적인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이 끝나는 마지막 장에 인지, 몇쇄, 지은이, 출판사 등의 정보가 실제 책과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 그 예인데, 심지어 같은 장 마지막 부분엔 * 이 페이지는 잘못 끼어든 것이 아닙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순간 책이 주는 긴장감을 잠시 잊고, 피식 웃어 버렸다. 이런 귀여운 디테일이라니.


추리소설계의 원로 대가이자 미로관의 주인인 <미야가키 요타로(60)>는 자신의 환갑잔치를 맞아 사람들을 초대한다. 초대된 인물은 다음과 같다. 추리작가이자 후배인 <기요무라 준이치(30), <후나오카 마도카(30)>, <하야시 히로야(27)>, <스자키 쇼스케(41)>와 평론가인 <사메지마 도모오(38)>, 추리소설 마니아 <시마다 기요시(37)>, 그의 오랜 전담 편집자인 <우타야마 히데유키(40)> 마지막, 남편 따라 함께 미로관으로 오게 된 아내 <우타야마 게이코(33)>까지 총 8명이다.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기괴한 건축물인 미로관에 모인 사람들. 그러나 <미야가키 요타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신 그의 비서인 <이노 미쓰오(36)>가 <미야가키 요타로>의 자살소식과 함께 그의 유언을 전한다. 내용인즉, 4명의 추리 소설가들에게 최고의 추리소설을 쓰라는 것. 심사는 <우타야마 게이코>를 제외 한 3명의 사람들이 하고, 1등이 된 사람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넘겨 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고, 이는 앞으로 있을 연이은 살인 사건과 무관치 않다. <미노타우로스>로 불리는 응접실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된 <스자키 쇼스케>를 필두로 나머지 추리 소설작가들이 자신들이 쓴 소설 속 표현대로 하나씩 살해되고, 유일하게 열쇠를 가지고 있던 비서 <이노 미쓰오>마저 종적을 감추고, 전화선까지 끊기며 미로관은 완벽한 밀실 상태가 된다.


* 

정신을 차리니 어두운 미궁을 홀로 방황하고 있었다.
온통 회색으로 칠해진 좁은 통로, 울퉁불퉁한 벽면에서 흔들리는 희미한 불빛.

바닥에 길게 뻗은 자기 그림자가 걸을 때마다 크게 흔들리며 형태를 바꾸고,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에 맞추어 괴상하게 춤을 추었다.

'...... 여기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곧게 뻗은 긴 복도가 아득한 저편에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 여기는?'

*

 

자신의 방조차 찾기 어려운 복잡하게 얽힌 미로관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언제 살해당할지 모를 공포와 불안감 속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시마다 기요시>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씩 단서들을 조합하여, 밀실 트릭과 범인을 밝혀냄으로써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은 끝을 맺는다. 그러나 소설이 끝난 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밝혀지는 반전과 진짜 범인. <시시야 가도미>의 <미로관의 살인>은 진범에게 읽히기 위해 썼던 것인데, 사실 소설 속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진범이 아니었던 것. 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진범을 알고 있었고, 이 사실이 세간에 밝혀지진 않았으나 소설 속 함축적 표현들을 통해 진범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은 앞선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에 비해 공간적 특성을 훨씬 더 잘 살린 작품이다. 더불어 범인 감추기를 위한 서술트릭 또한 한몫했는데, 이는 사실 평소 우리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수께끼의 저자 <시시야 가도미>그는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 이 또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반전과 반전의 연속, 밀실 속 물리트릭과 서술트릭의 조화. 한순간도 독자를 책 속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 역시 별 다섯! ★★★★★


- ​ps

<아리아드네의 실>

: <아리아드네>로 불리는 넓은 홀 앞에 <아리아드네의 실꾸리>를 들고 있는 동상이 있다. <시마다 기요시>는 이 동상이 상징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밀실트릭을 밝혀낸다. 개인적으로 이와 관련된 신화를 찾아 정리해 보았다. < 아테네 최고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다이달로스>가 조카를 살해한 죄로 아테네에서 추방당하여 크레타 섬으로 건너왔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은 그를 크게 환영하였고, <다이달로스>는 보답으로 인공의 암소를 바쳤다. 그런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미노스 왕>에게 선물한 황소에게 욕정을 느낀 <파시바 왕비>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다이달로스>가 만든 인공 암소의 몸속으로 들어가 황소와 교미를 했고 그 결과, 몸은 사람에 머리는 소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태어나게 했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부끄럽게 여겨 <다이달로스>로 하여금 라비린토스라는 지하 미로를 만들게 했는데, 한 번 사람이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갇혀 <미노스 왕>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인들이 공물로 받친 사람들을 먹고살았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지고,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라비린토스에 들어갈 즈음 실꾸리를 건네준다.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그녀가 건네준 실꾸리 덕분에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오게 된다. 즉, 신화 속 <아리아드네의 실꾸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의미한다는 것이 포인트.> 여러모로 <미로관의 살인>은 신화까지 곁들여 재미뿐 아니라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켜 준 멋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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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본깨적 - 평범한 직장인이 대체 불가능한 프로가 되기까지
박상배 지음 / 다산3.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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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곳에서 일어서려면 우리를 넘어뜨린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합니다.

삶을 바꾸고 싶으면 지금의 삶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 구본형


현장 본깨적이란, 현장에서 보고, 깨닫고,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본깨적인가?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살아남아 제대로 된 노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청년 실업률 증가, 경기 침체 등 현실은 녹록지 않고, 마음과 미래는 불안하다. 현장 본깨적은 그 불안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금 현재 당신이 몸담고 있는 현장에서 찾고자 한다. 바로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것. 평균 52세를 기준으로 경쟁력에 밀려 퇴직을 강요당하거나, 퇴직 후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경우가 많은데, 현장의 <영원한 현역>으로 남기 위해선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좇아 <현장 본깨적>속으로 길을 떠나보자.

 

<현장 본깨적>은 <왜 본깨적인가>에 대한 장과, 업무력, 실행력, 현장으로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본깨적을 해야하는 이유와 나이에 따른 일의 4단계, 100세 현역들에 대해 설명한다. ​50세가 넘어서까지 여전히 내가 해왔던 직업을 갖고 현장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드는 의문이고, 불안함일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의 나이로 여전히 현역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 READY 업무력

제2장 업무력에선 <성과의 차이를 만드는 업무 실행력 8주 프로젝트>에 임하기 앞서 <자신의 업무력>을 점검할 수 있는 장이다. 먼저 독서 본깨적으로 의식 수준을 점검해 보는데, 저자는 <의식 수준 향상을 위한 추천도서> 20권을 초급, 중급 단계별로 구분해 놓았다. 자신의 독서수준을 고려하여 순차적으로 읽어나간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의식 수준을 깨닫고, 의식이 변하기만 해도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그것은 곧 성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하는데, 일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아이젠하워의 원칙> 즉, 업무를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알고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도식화하니 좀더 실질적으로 다가와 도움이 되었다.

 

 

업무를 쪼개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파악했다면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쓰레기 업무>를 구분하는 것이다. 위 표를 보고 나의 직업과 관련하여 업무들을 대입해 보았더니 은근히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내가 잘할 수 없는 일들에 매달렸던 경우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인지. "원하는 성과를 내려면 모든 일을 끌어안지 말고 버려야 할 일은 버려야 한다. 숲 속에 큰 나무를 키우려면 큰 나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무를 솎아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내가 하는 일 중 큰 나무가 무엇이고 작은 나무는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그다음 과감하게 작은 나무를 버려야 한다."

 

우리가 성과를 내기위해선 <Project>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업무를 프로젝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가벼운 예로 단순포장 업무를 생각해보자. 아무 생각없이 반복적으로 포장만 한다면 이것은 노가다일 뿐이지만, 꼼꼼한 포장으로 올 연말까지 상품 훼손 5퍼센트 줄이기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포장을 한다면 이는 더 이상 노가다가 아닌 <프로젝트>가 된다. 포장 중 상품을 덜 훼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와 같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넘쳐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Stress>부분인데 웹디자이너로 몸담고 있는 나의 경우, <중요한데 내가 잘할 수 없는 일>들에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두려움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물론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역시나 실행력이 문제였을 뿐) <현장 본깨적>에서도 이야기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스트레스 영역에 있던 일을 프로젝트 영역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저자 또한 OA를 못해서 자신의 무능함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고 익혀 어느 정도 자료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줄었다 한다.

마지막 <Hobby>부분이다. 중요하진 않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아마 누구나 꿈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 그러나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계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 역시 웹디자이너로 업을 삼고 있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과 글쓰기이다. 이것을 업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해서 (어쩌면 당장)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취미를 성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종종 전혀 다른 세계와의 부딪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SET 실행력

제3장에선 실행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3가지를 제시한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실행력 장에선 총 12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테마 부분만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자기규정이 곧 실행력이다>에선 실행력을 높이려면 부정적인 자기규정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나 역시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들이었다. 유유자적(어떤 의미론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의지력 부족, 끈기 부족, 남에게 의지하려는 성향 (남 = 남편 등X 먹고 있는 ㅠ), 본인 관심 밖의 일에 대해선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어른을 별로 공경하지 않는 것, 남을 잘 챙기지 못하는 것 등등 하.. 감자 캐듯 계속 나오는 것이다.

 

이런 나의 부정적인 자기규정을 바꾸지 않으면 성과를 제대로 낼 수도 없을 뿐더러 인생조차도 우울해 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과도한 자기 긍정도 위험하다고 하니 "건전한 자기규정을 바탕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주변에서도 도와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규정은 오히려 주변 사람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부정적이지도, 과장되지도, 허황되지도 않은 건전한 자기 규정만이 행동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일주일 중 하루는 다르게 살기>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평소의 나대로 살다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보는 것'이다. 이유는 변화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보는 것'은 변화에 대한 내성을 주기위함이다. 우리 뇌의 전두엽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학습하는데 관여를 하는 부분인데, 특히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활성화 된다고 한다.

<확실한 성과를 내는 8주 프로젝트> 보통 신년이 되면 신년계획을 세우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것들론 다이어트, 금연, 영어공부와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처음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들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들 경험하곤 한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닌데, <현장 본깨적>에선 작심삼일을 떨쳐낼 비장의 무기로 8주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위 표의 양식을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일단 8주 동안 이루려는 목표를 적고, 가능한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게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전술부분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적는다.

 

긴 기간을 설정하고 목표를 세우면 다소 욕심을 부리게 되고, 지나치게 많은 목표를 세우기도 하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과한 목표를 세워 결국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간을 8주로 한정하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거품을 뺄 수 있다. 물론 모든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간은 아니다. 때문에 8주 안에 이룰 수 있는 목표만 선택하고 집중하면 된다. 자격증 시험공부와 같은 것이 대표적일 수 있고, 성과나 실행이 긴 것들 (영어공부, 다이어트, 책 읽기 등등)은 8주라는 간격으로 나누고 세분화해서 목표를 쪼개면 될 것이다. 중간중간 작은 성과들은 자신감을 줄 것이고, 마지막 어느 순간엔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꿈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 GO 현장으로

마지막 4장 <현장으로>에선 저자 자신과, 저자의 멘토 강규형 대표, 한현모 대표, 김수용 대표 등 자신의 현장에서 어떻게 현장을 장악하고, 성과를 끌어 올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장이다. 3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페이지로 읽기에 부담이 없었고, 일과 성과,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현재 나는 현장을 떠나있는데, 현장이라는 것이 비단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나의 인생 역시 내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위 책에서 읽고,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모든 일들을 실행하고 성취해 나간다면 나의 가정과, 나의 인생이 어제보단 나은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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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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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이장욱 작가님의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작품이다. 두꺼운 하드 커버지에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한 표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내용도 참 독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접하게 된 정세랑 작가님의 <보건교사 안은영>. 제목만 보면 도대체 어떤 내용의 소설일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데, 표지 또한 귀여운 듯 섬뜩한 느낌이 공존하는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결국 읽게 되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총 10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있으며, 안은영은 제목 그대로 M고등학교의 보건교사이자 퇴마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오! 개인적으로 이런 소재들을 큰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편이라 문득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이우혁 작가님의 <퇴마록>이 생각나기도 했다. 뭔가 한국괴담과 어우러진 진중하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스토리와, 악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활약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엇! 뭐지? 다소 가볍고 엉뚱하면서도 약간은 유치한 듯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뭔가 불안하다. 불안해. 그도 그럴 것이 안은영 그녀가 사용하는 무기가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다. 일단 여기서 1차 멘붕. (물론 아이들 장난감 같은 이 무기로 직접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기들에 그녀 나름의 힘이랄 수 있는 어떤 '기'를 주입해서 싸우긴 하지만 말이다.) 책 구입 시 미처 확인해 보지 못했던 (강렬한 앞표지에 너무 집중했나 보다.) 책 뒤표지의 소개 글을 읽어보니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라고 떡하니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아... 내가 생각했던 느낌의 책이 아니구나 싶었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첫 에피소드는 학교 지하에 봉인되어있던 압지석(壓池石)의 봉인이 해제되면서 거대한 잉어같은 생물이 학생들을 위협하는 장면인데, 보건교사 안은영이 그 생물을 퇴치하고, 학생들을 구하는 내용이다. 이때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는데, 같은 학교 한문교사이자 설립자의 손자인 홍인표이다. 어렸을 적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긴하지만, 안은영은 홍인표 주변에 보호막 같은 거대한 아우라가 형성되어있는 것을 보게 되고, 그의 손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이런 스킨십 덕분일까? 보건교사 안은영과 한문교사 홍인표는 썸을 타는 사이가 된다.

'꼭 죽은 사람들만 보는 건 아니었다. 산 사람들이 더 기분 나쁜 걸 많이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이 학교 떠다니는, 공기 가득한 나체의 환영들 같은 것 말이다. 아아, 사춘기 애들은 정말 싫어. 은영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깔때기 칼로 휙휙, 아이들의 야한 상상을 휘저어 없앴다.  벌써부터 취향이 가지가지기도 하지. 그러니까 결국 은영이 보는 것은 일종의 엑토플라즘,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다.' - 14page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병원에 있을 때는 힘든 파트만 다녀서 지금보다도 더 너덜너덜했다. 몇 년쯤 하고 나니 새벽의 병원 복도에서 기나긴 싸움을 하는 게 박찼다. 그래서 대학 때 따 놓은 보건교사 자격증을 활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호러와 에로 중에 고르라면, 단연 에로다.' - 15page

학원 명랑물이라 그런가? 사춘기 아이들이 내뿜는 정제되지 않은 기운들을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에로에로 에너지로 표현하고 있다. 정세랑 작가의 표현력과 발상엔 나름 감탄을 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있었던 사춘기 시절. (하..까마득하구나..벌써 ㅠ) 남녀공학이라 가까이서 남학생들을 상대할 수 있었는데, 한바탕 체육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몰려드는 남학생들의 몸에 밴 찐득찐득한 땀 냄새가 교실을 가득 채웠고, 이에 질세라 터지듯 발설되는 음담패설까지 숨 막히도록 어질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했던 남학생에 대해선 나름의 환상을 품기도 했었던 그 시절.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들의 이런 질척질척한 에로에로 에너지를 싫어하면서도 보건실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서슴없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느낌의 책은 아니었지만 분명 정세랑 작가만의 유쾌하고 쾌활한 분위기가 있는 책이다. 소재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신선하다. 다만 읽으면서 뭔가 살갗을 간지럽히는 미묘한 느낌과 함께 좀처럼 이 소설 속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수 없었던 건 내 개인적인 성향과 취향 때문이겠지.


일단 가장 아쉬웠던 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약간의 궁금증과 긴장감이 (스케일 면에서도) 뒤로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팽팽한 풍선 하나를 손에 들고 걷고 있는데, 점점 바람이 빠지면서 그 형태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랄까? 물론 커다란 사건 뒤엔 조금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들로 호흡을 변화시켜준다는 점에선 괜찮을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보건교사 안은영과 홍인표의 활약을 더 기대했던 터라 실망도 컸던 것 같다. <오리 선생 한아름>, <레이디버그 레이디>, <온건 교사 박대흥> 등의 에피소드에선 보건교사 안은영이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한다 하더라도 큰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다. <레이디버그 레이디>에선 뭔가 엄청난 존재와의 조우를 기대했던 나에겐 다소 실망적이었다. (그동안 스릴 넘치고 자극적인 것들을 읽다 보니 그럴 수도 ㅋ) 뭔가 나타날 듯, 보일 듯 떡밥을 던져주긴 하지만 결국,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의뢰인 본인 마음의 병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버려서, 긴장감에 흘렸던 땀들이 예기치 않은 강력한 바람에 의해 증발하듯 허무하고도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전학생 옴>에피소드의 주인공 백혜민이 옴잡이라는 설정은 독특하고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옴을 먹고 사명을 다하면 때이른 죽음을 맞이하여 환생하는 존재, 옴잡이. <온건 교사 박대흥>에피소드는 앞서 말했듯 안은영이 등장하진 않지만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나름 의미 있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교사 본연의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선택이 아닌, 기득층의 정당성을 부여할 목적으로 편찬되고 집필된, 즉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적 판단을 강요하는 선택에 있어서 작가 정세랑은 <박대흥>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그들을 교장에게 보내버리는 ㅋ : 이 부분은 정말 읽어봐야 함)


아쉬움을 간직한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고, <작가의 말>부분을 읽었는데, 이 말을 읽는 순간 소설 전체에서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습니다. 한 번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뭐랄까? 괜히 작가에게 무례하게 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래 쾌감, 어쩔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긴장감이나, 진중함이라는 무게를 걷어내고 가볍게, 유쾌하게, 유치하게 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무겁게만 소설을 대하려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님께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흰 옷자락이 펄럭일 때는 잠시 흠칫했지만, 손전등을 들고 춤을 추고 있었던 건 보건 선생이었다. 한 손에는 손전등, 한손에는 웬 무지개 색 깔때기를 들고 허공을 정신없이 휘젓고 있었다. - 24page

그리고 철망에 붙어 선 보건 교사는 뭔가를 향해 장난감 총을 격하게 쏘고 있었다. 인표가 서둘러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비비탄 총에 어울리지 않는 격발음이 들리긴 했다. "이 못생긴 새끼,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 36~37page


나에게 2차 멘붕을 안겨주었던 <보건교사 안은영>의 전투씬인데 <작가의 말>을 읽기 전까진 눈살을 찌푸리고 읽었었는데, 다시금 읽어보니 웃음이 날 정도로 안은영 그녀가 사랑스럽기도 했다. 상상 속이긴 하지만 내가 안은영이 되어 에로에로 에너지를 끊임없이 발산하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비비탄 총>을 연신 쏘아대거나 (반동으로 어정쩡한 스쿼트 자세가 되기도 하고 ㅋ) <장난감 칼>을 미친 듯이 휘두르는 모습을 그려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날은 화창했고, 푸른 하늘 끝 그 어딘가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했던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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