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 소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배우다
무무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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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과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위안과 위로를 준다. 나 또한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쩌면 아직 치유되지 않은, 못한 감정의 더께들을 책을 통해 털어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은 제목도 참 좋았고, 감성을 자극하는 핑크빛의 책 표지도 그 자체로 좋았다. 각 테마별로 8장까지 68개의 꽤 많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한 꼭지씩 읽을 수 있어 부담도 없다. 작가 무무는 필명으로, 국내에선 필명 외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데, 그래서일까? 화자가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선, '아 이제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나 보다'라며 읽다가 그 작중 화자가 '여성'임을 알게 되고 '아 무무 작가님은 여성인가 보다' 혼자 생각하다가, 다음 꼭지를 읽는데 거기선 '나'라는 화자가 '남성'으로 등장한다. 잠시 머릿속의 혼란을 수습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즉,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작가 본인이 직접 체험했거나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거의 없고,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일상 속에서 느낀 어떤 깨달음이나 소소한 감정들을 나는 듣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나에겐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고,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 68개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들을 읽는 재미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나름대로 즐겁게 읽었고, 좋은 문장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몇몇 이야기들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거나,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꽤 많았다. 내가 '작위적이다'라고 느낀 것은 오롯이 내 문제다. 나라는 사람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초연할 수 있다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거나 등등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초인적인 이야기들은 교훈은 될지 언정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뭐랄까? 너무 멀게 느껴져서 정말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작가의, 혹은 사람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환상이나 이상향은 아닐까? 정말 실화인지, 어떤 감동을 주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이런 불편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부분이었다. 요즘과 같은 시대의 인스턴트식 사랑, 너무 쉬운 이혼 등 작가님께서 비판하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 주제에 포함된 몇 개의 이야기들은 나를 당혹게 했다. 젊었을 적 자식과 아내에게 난폭하게 굴다가, 나중에 늙어서 치매가 든 후에 비로소 아내를 위해 하는 여러 행동들이 이해도 안 가고, 전혀 감동스럽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런 남편이 죽고, 남편을 위해 우는 여자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 일화를 예로, 참고 인내하는 사랑이라며 요즘과 같은 시대의 사랑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그럴 거면 평소에 좀 잘하지, 왜 꼭 치매가 걸린 후에 아내를 위하는 척하느냔 말이다. 한 일화는 여자의 생일날 남자가 곰인형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선물이 마뜩지 않았던 여자는 하루 종일 뾰로통하다가, 술 마시고 차 안에 토하고, 심지어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다가 이를 알아챈 남자가 대신 몸을 날려 목숨을 잃게 된다. 후에 곰인형 속에 프러포즈 반지가 있음을 알게 된 여자가 대성통곡하면서 뒤늦게 남자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때로 경솔하고 침착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조금이라도 남자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난 이 이야기 속의 남자가 이해가 안 되어서 너무 답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보잘 것 없는 선물이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를 말이다.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분명, 읽을거리도 풍부하고 소소하게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와 좋은 문장들도 많다. 책 중간중간엔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도 배치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다만 내 마음이 아직은 강팍한 것인지, 아직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진 몰라도 읽는내내 왜?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고, (사실 굉장히 눈물이 많은 편인데)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무표정에, 무감각하게 읽어나간 페이지들도 꽤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나라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평이다. 사람마다 느낀는 바가 다 다를 것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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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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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아버지의 실험실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이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전함을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아버지에게 과학자라는 것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정체성이자 신분이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과학자란 다른 꿈을 꿀 수 없는 뿌리 깊은 본능이자 유일한 꿈이었다. 과학은 그녀에게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느끼는 행복과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랩걸은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하나의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성장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마찬가지로 호프 자런, 그녀 자신이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한차례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마침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되는 성장의 과정들이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으로 교차되며 이야기된다.


<뿌리와 이파리>

숲을 걷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무가 만들어 낸 숲의 신비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거진 나무의 우듬지를 찬탄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발아래는 잘 쳐다보지 않는다. 땅속에 나무를 꿈꾸는 수많은 씨앗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아버지의 영향, 어머니와 함께 꾸몄던 정원, 병원 일에 대한 환멸감 그리고 과학자로서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가 된 빌과의 만남 등을 통해 호프 자런의 삶은 단단한 땅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녀 인생의 첫 실험실에서, 과학자로서 첫 발견을 했을 때 벅차오르던 감정들, 그러나 연이어 행한 실험에선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맛봐야만 했던 그녀.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이방인의 입장이 아닌,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입장. 결국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 인생에, 더 많은 잎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 가루가 오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바로 이날을 위해 일하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 큰 만족감에도 그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한 일 혹은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는 작은 발견에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창피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쳤다. 창밖을 보니 캠퍼스가 떠오르는 태양의 첫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다른 어느 누가 나처럼 숨이 멎을 듯한 이 아름다운 여명을 맞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무와 옹이>

인류가 태동하기 훨씬 전, 이 지구 상의 오랜 주인은 식물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적(곤충, 곰팡이 등) 과의 전투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더 진보된 형태로 진화하여 왔다. 그러나 인간이 먹이 사슬 맨 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생태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즉, 살지 않아야 할 곳에 사는 식물들이 생겨난 것이다. 바로 살지 않아야 할 곳에 번창하는 식물, 잡초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건강한 숲을 헤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창밖을 내다보면, 빈약한 나무 몇 그루가 있을 뿐,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도로는 자가증식하는 균처럼 뻗어나가며, 식물들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 인간은 결코 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없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각종 자연재해와 질병 외에 더 나은 것이 있단 말인가? 나라에서도 환경과학 분야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눈앞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별로 인기가 없는 분야에 대해선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예산을 동결하기까지 하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호프 자런, 그녀도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고, 초조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연구의 걸림돌이 되는 재정적 문제가 늘 그녀를 괴로움에 시달리게 했다. 심지어 연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그녀 스스로를 잠식시키고, 급기야 극에 달한 광기는 몸과 마음, 정신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인 빌이 그녀와 함께 했다. 초라한 실험실에서도, 수많은 곳을 떠돌며 현장실습을 나갈 때에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 자신의 열정도 있었을 테지만, 빌 그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절대 연구 기금을 못 따게 되면? 내가 능력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흥분해서 횡설수설했다.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그런 말은 집어치워. 그런 말 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빌이 소리쳤다. "연구 기금을 못 따면 어떡하냐고?"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열쇠가 우리 손에 있잖아. 내일 가서 그 열쇠들, 복사해둘게. <....> 이 거지 같은 실험실, 한 번 만들어본 걸 두 번 못 만들라는 법은 없어. 아니면 모든 걸 집어치우고 야반도주해버릴 수도 있지. 옆 타운에서 넌 손풍금을 치고 나는 모자 들고 동전을 거두면 되잖아." 

그의 훈계에 위로를 받고 나는 희미하게 웃기 시작했다.

<꽃과 열매>

대부분의 꽃들은 자가 수정으로 씨를 맺고,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키지만 어떤 종이 계속 대를 잇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타가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꽃가루는 30센티미터, 혹은 3미터, 혹은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씨방에 성공적으로 도착해야 한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이렇듯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후손을 남긴다.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이파리를 길러내고, 크고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한 차례 크나큰 성장통을 겪은 그녀도, 사랑하는 남자 클린트를 만나 여성으로서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품게 된다. 그러나 임심 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소우주인 자궁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랑의 결실로 행복해야 함을 알면서도,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 같은 상실감에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눈물로 뿌린 씨는 기쁨으로 거두듯, 어쩌면 자신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제는 내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 필요가 있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풍요로운 사랑을 모두 표현할 능력이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절이 생각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속에서 움트길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 그 자신이 썩어져 새싹을 틔워내고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여,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찬란한 고통이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은 자연의 선물, 나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인류 문명은 4억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단 세 가지로, 즉 식량, 의약품, 목재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버렸다. 우리의 끊임없고 점점 더 거세지는 집착으로 인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황폐의 규모는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재해가 끼친 피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1990년 이후 매년 우리는 8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서 그루터기만 남기고 있다. 이런 속도로 건강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계속하면 지금부터 6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지구 상의 모든 나무들이 그루터기만 남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누군가는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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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눈 여겨 보고 있는 책입니다. 역시 가까이 있는 분이 리뷰를 써주시니까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

별해무 2017-03-14 17:12   좋아요 0 | URL
네 :) 처음엔 실험얘기들이 잘 몰라서 이해가 안 가고,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ㅋ
읽기에 조금 어려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주욱~ 읽어나가다 보니 적응도 되고, 좋은 내용들도 많더라고요 :)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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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피고인> 속 주인공도 검사이다. 비단 <피고인>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검사의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TV 속 검사의 모습은 때론 정의롭게, 때론 권력욕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깔끔한 정장에 지적인 이미지와 어딘지 근엄해 보이는 모습은 좌중을 압도하는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적어도 내 눈에 검사의 모습은 이런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신랑한테 "나중에 우리 자식이 검사가 되면 진짜 대박이겠다. 그치? 완전 좋다, 정말 멋지다!" 이런 실없는(?) 소리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환상 속의 검사;) 그런데 16년 차 부장검사로 재직했던 저자 안종오의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라는 에세이를 읽고 이런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게 되었다. 검사라는 직업도 평범한 샐러리맨들처럼 늘 업무에 시달리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직장 내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걸. 적어도 책 속 안종오 저자의 모습은 그랬다. 사실 가족이나 친인척 중 검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본인이 피의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고선 검사를 직접 대면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라는 직업이 알게 모르게 미화된 것도 같다. 이런 의미에서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라는 에세이는 검사,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 책이자, 검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진중한 고백록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면 각종 사건들이 많이 보도된다. 대부분이 안 좋은 소식들이다. 사기, 살인, 절도, 폭행 등 보고 있으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고선 한 마디 내뱉는다. 아휴, 저것들 왜 저렇게 사냐?, 천벌을 받아야지 등 그들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나 스스로 심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TV를 통해 보도되는 그들의 범죄행위는 대부분 단편적이고, 행해진 결과만을 보여준다.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니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관한 사연들은 잘, 말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고, 법정에 세우고 하는 것은 변호사나 검사의 역할이다. 그러다 보면 사건 하나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책의 제목처럼,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안종오 저자의 초임 검사 시절, 공판검사 업무를 맡았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실수로 어린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인데, 당시 피고인은 말기 암의 어머니를 둔 24살의 젊은 여성이었다. 깊은 참회 속에서, 법정 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피고인의 가족은 딸의 인생을 위해 울고, 피해자의 가족은 사라져버린 아이의 인생을 위해 울었다. 이 상황에서 당시 안종오 검사는 그저 먹먹해져 앉아 있었다 한다.


검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삶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누구라도 좀 가르쳐주었으면 좋으련만. 생각지도 못한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사회 초년생인 나의 가슴은 두려움으로 요동친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수많은 삶의 민낯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나는 그 인생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배심원도 아니고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다. 그들의 먼 미래를 바꿀 수는 없어도 눈앞에 닥친 상황에 작게나마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검사다. 삶과 죽음, 피해자와 피의자, 분노와 처절함으로 들끓는 인생의 도가니를 지켜보는 이 순간이 두렵지만, 그들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것 또한 검사라는 직업의 비애다. 인생은 나에게 삶의 기쁨보다는 상처를 먼저 가르치려 든다. 그런 인생 앞에 용기 내어 이렇게 맹세해본다. 지금부터 내가 부딪칠 순간들을 두려움 없이 대할 것이다. 그리고 내 눈앞의 인생에 귀를 기울이며 삶을 배워나가리라.

좋든 싫든 매 순간 타인의 인생을 들춰 봐야 하는 것이 검사라는 직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 위에 쌓여가는 사건 기록들, 아직도 해결되기 만을 기다리며 쌓여있는 캐비닛의 사건 기록들, 때론 하루라는 시간이 부족하여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서슴지 않는다. 위 사건처럼 양측이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지만, 누가 봐도 반드시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사건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 허투루 다룰 수가 없다. 어쩌면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일 수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눈앞에서 범인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검사나 판사가 과연 인과의 사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명확하게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네 의무라면,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명확성을 견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숙명일 것이다. 불명확성을 견디는 힘, 그러한 용기를 갖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야 가끔은 악마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고소제도라는 것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몰랐던 사실이다. 한국의 고소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정말 독특하다고 한다. 미국은 고소제도라고 볼 만한 제도가 없고, 일본은 고소장을 내도 수사할지 어떨지는 검사의 재량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모든 고소 사건을 수사해 수개월 내에 수사 결과를 내놔야 하고, 고소인은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항고, 재정신청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보면 된단다. 이 얘긴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검사만큼 사건이라는 업무에 쫓기고, 시달리는 검사가 없다는 얘기와 같다. 그래서일까? 일주일 내내 업무에 시달리고, 치이다 보니 자기 자신과 가정에 대해선 점점 소홀해져 갔고, 급기야 공황장애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한다.

무엇보다도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문제였다. 지적받지 않도록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일하는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지적을 받으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탈이 난 것이다. 그리고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업무 강도에 체력적인 한계를 느꼈음이 분명했다. 자존심이 강한 데다가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어느 때는 우월감을, 어느 때는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남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겉으로는 항상 괜찮은 척, 안 그런 척, 강한 척했다. 그러다 보니 신경 계통에 부조화가 왔을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사법시험 실패로 큰 좌절을 겪으면서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안종오 검사는 말한다. 어차피 아픔 없는 삶이란 없다. 역경 없이 살아낸 사람이 있을까? 공황장애의 경험을 자신의 앞길을 비추는 손전등으로 사용하려 한다. 나를 뒤로 잡아끄는 장애물이 아니라 갑자기 내게 온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야 내 삶도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겉모습만 보고 단순히 멋진 직업으로만 생각했던 검사라는 직업이 결코 녹록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피의자의 가족들이나, 관련자들에게 소홀히 대하지 않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안종오 검사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검사는 무섭고, 딱딱하다는 내 나름의 선입견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 이야기들과 더불어 안종오 검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든가, 1년의 유학생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이야기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홀히 대했던 나의 가족... 그랬기에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가 또 생각이 나서 책을 읽다가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다.

책의 마지막 장 <고맙다, 지금까지 버텨주어서>는 저자 안종오 검사님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글이자, 독자에게, 나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또 가슴이 뭉클, 눈물이 훌쩍 나기도 했다. 검사로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 그리고 그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 그 속에 피어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내가 얻은 것은 나 자신이다. <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너무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야. 너는 그냥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어떤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냐. 따라해 봐. '난 존재 자체로 빛난다.'


그동안 많이 아팠으니 이젠 그만 아프자. 넘어지는 연습 많이 했잖아. 그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을 이젠 떠나보내자. 안 아픈 척하느라 수고 많았어. 이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오늘 진심으로 이 한마디 하고 싶다. 정말 고맙다. 지금까지 힘껏 잘 버텨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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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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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관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임과 동시에 1기 마지막 작품이다. 1기 작품 중 네 번째 작품인 <인형관의 살인>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시계관의 살인>이 가장 재미있었고, 시리즈 중 평도 가장 좋고, 그래서인지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시계관의 살인> 역시 반복 교차되는 '이중구조'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각의 시간을 형상하는 12개의 방과 시계추 모양의 진자의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의 '구관'과 '신관'이라는 두 곳의 물리적 공간이 바로 서술의 중심축이다. '시계관' 역시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일본 전역에 지었다는 기괴하고도 독특한 건축물들 중 하나이며, 이곳의 주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계회사 '고가 정계사'의 전 회장인 '故 고가 미치노리(63)'였다. (지금은 그의 아들 '고가 유키야'(17)가 '시계관'의 현 주인이다.) 그는 자신의 딸 '故 고가 도와(14)'를 위해 시계관을 설계했는데, <관 시리즈>를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런 독특하고 기괴한 건축물들을 지은 걸까?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다행히 작가는 '시마다 기요시'를 통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 준다.


....

"내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지금 한 이야기와 같은 레벨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딱히 거기서 무슨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가 지은 건물에는, 글쎄 뭐랄까, 이 사회의 압박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 자 하는

어떤 장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런 기분이 들어.

거기에는 물론 설계를 의뢰한 '인간이 사육해 온 악몽'도 다분히 섞여 있을 것이고,

아니 오히려 그쪽이 메인인지도 모르지.

수차관의 주인이었던 후지누마 기이치, 미로관에 살고 있었던 그 선생의 경우에도, 말하자면 세이지는

그들의 '고독한 환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를

그런 관의 형태로 만든 것인지도 몰라.

그 점은 시계관을 지은 고가 미치노리도 예외는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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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page>


3년 전 <십각관의 살인>에서 대학생이었던 '가와미나미'가 이제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재등장 하는데, 무척 반가웠다. '카오스'라는 잡지를 펴내는 '희담사'의 신입 편집자로 재직 중인 그는 '시마다 기요시'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회사에 추리소설을 낸 것에 대하여 반가워하면서도 한 가지 부탁을 한다.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시계관'에 소녀의 원혼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 진상 파악을 위해 교령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혹 시간이 되면 참석해 달라는 것이다. 희담사 직원들,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들, 초능력자 '고묘지 미코토'는 먼저 '시계관'을 방문하고 108개의 시계로 가득 찬 '구관'에서 교령회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날 밤 '가와미나미'는 진자의 방에서 '미코토'가 누군가와 다투는 소리를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다음 날, 구관의 출입열쇠를 가지고 있던 '미코토'가 사라진 것을 시작으로 밀실이 되어버린 구관에선 정체불명의 살인자에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임을 당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시계관'에 합류하게 된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 중 한 명인 '후타나시 료타'와 '시마다 기요시'(=시시야 가도미)는 '구관'으로 가지 않고 '신관'에 머물면서 관리자인 '사요코'를 통해 10년 전 '시계관'에서 연이어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신관에선 '시마다 기요시'가 10년 전 사건을 추적하는 한편, 구관에선 '가와미나미'가 밀실 속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결국 10년 전 발생한 사건은 현재 발생한 사건과 전혀 무관치 않은데, 어쨌든 한 곳은 죽음과 공포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고, 한 곳은 큰일 없이(약간의 수상쩍은 일들은 있지만) 돌아가는 일상의 장이 되어버린 이 극명한 상황이라니. 읽으면서 뒤늦게 합류한 '후타나시'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휴.............


<시계관의 살인>은 밀실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물리트릭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가장 충격적이고 큰 비중을 두었던 트릭은 이 '공간'이 아니다. 어쩌면 책의 제목에서도 그 암시하는 바를 충분히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눈에 보이는 실체만을 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만을 쫓고, 그것을 현실이라 명명하며, 그 틀안에서 안심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라는 어쩌면 관념적인 것조차도 '사물화'(=실체화)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시계가 아닌가? 그리고 완벽하게 시간을 통제했다고, 통제하고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리석게도. 그래서일까? '故 고가 미치노리'의 딸에 대한 집착과 사랑으로 세워진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의 모습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유한함을 느낌과 동시에 애달프기까지 했다.

마지막, 침묵의 여신이 노래할 때 독자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펙터클한 장관이었다. 시간의 감옥에서 해방된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이루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니... 1기 전 시리즈들 보다 꽤 두꺼웠던 <시계관의 살인>이었지만, 흡입력 있게 잘 읽혔고, 무엇보다 '시마다 기요시'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았던 책이다. 덕분에 서평이 조금은 길어지겠지만, 그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아 아래 적어두도록 한다.



"시시야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이하생략)

"그렇지만, 주의주장이란 관점에서 마음속으로 전혀 믿지 않고 있을 거야.

물들어 있으니까 말이지.

이른바 과학적 사고란 것에 말이야. 하지만, 무조건 비과학적이라고 부정하는 것은

현대인의 구제받을 길 없는 교만이란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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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page>




"우리들이 평소에 굳건하다고 믿는 이 현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빈약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는 것인지를 말이야.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현실은 절대로 견고한 실체가 아니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아."

"환상이오?"


"현실이란 이름의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서 만인으로 하여금 분명한 실체라고 인정하게 하고,

또 믿도록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일이 이 사회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들에게 안정이 공급되는 셈이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이 도식은 변함이 없어.

그러나 동시에 종종 그것이 일종의 지배 - 통제의 장치로 과잉되게 기능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

결과적으로, 그런 도식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고 단언하면서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소인배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되었어.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는 자가 나타나면,

거의 신경질적으로 과민반응을 일으키지.

맹목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화를 내고, 그들을 배제하고, 매장시키려고 해.

그런 모습을 보고 웃는 것은 언제나 그들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그 거대한 지배 = 통제 장치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뽑아내려고 분주한 패들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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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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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수호자 수호자 시리즈 1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김옥희 옮김 / 스토리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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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령의 수호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환상적인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로 구성된 <동양적인 세계관이 돋보이는 판타지 모험담>이었는데, 책으로 접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에하시 나호코의 수호자 시리즈는 총 12권으로 현재 제4권 '허공의 여행자'까지 출간되었다. <정령의 수호자>,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신의 수호자>는 '단창의 바르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30대의 여성무사가 주인공이며, <허공의 여행자>, <푸른 길의 여행자>는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가 주인공이다.

 

보통 판타지 문학이나 작품의 경우 10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령의 수호자 속 주인공인 무사 '바르사'는 30대 여성이다. 출간 당시 출판사 측에서도 난색을 표했다고 하는데, 작가 '우에하시 나호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인생 경험이 풍부하며, 어린 생명을 푸근히 감싸 안을 수 있는 모성애를 지닌 여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한다. 나 역시 당시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에도 그랬고, 책을 읽을 때에도 주인공이 나와 같은 30대 여성이어서 보다 친근감이 가고, 공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정령의 수호자 속 스토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주인공 '바르사'는 북방의 칸발 왕국 출신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가 궁중 암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면서 아버지의 친구 '지그로'의 손에 무사로서 길러지게 된다. 이후 '지그로'마저 목숨을 잃게 되자 '바르사'는 고향인 칸발 왕국을  떠나 사람들을 경호하면서 번 돈으로 세상을 떠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사'는 우연한 계기로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의 목숨을 구하면서 제2황비의 은밀한 부탁을 받게 된다. 바로 '챠그무'의 호위무사가 되어달라는 것. 알 수 없는 것의 알을 품은 제2황자 '챠그무'가 부황으로부터 몇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아 왔고, 이번 사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르사'는 이를 받아들이고 '챠그무'의 몸속에 존재하는 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술사 '토로가이'를 찾아가게 되고, 이는 '늉가로임의 알' 즉, 물정령의 알임과 동시에 '챠그무'가 이를 수호하는 '정령의 수호자'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챠그무'가 품은 알은 나라의 가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느 것이든 자기가 선택한 역할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정령의 수호자 늉가로차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자 묵직한,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느끼며 챠그무는 또다시 처음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왜 나일까?


왜 나일까? 수없이 자문해 보고 괴로워했지만, 이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챠그무'는 깨닫게 된다.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지금의 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고. '바르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객으로 온 친우들을 베어넘기며 살아남았던 '지그로', 당시에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 또한 '챠그무'를 구하고 지켜내면서 '지그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굴곡진 삶을 살아왔지만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는 '바르사'와 어리고 연약하지만 점차 강인한 성인으로 성장해 갈 '챠그무', 험난하지만 따뜻한 둘만의 여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왜냐고 물어도 알 수 없는 뭔가가 갑자기 주변 세계를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커다란 손아귀 안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 말하지만, 위 말처럼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늘 후회로 남아있는 것이 누구나의 삶이다. 차그무의 삶과 선택도, 바르사의 삶과 선택도 돌아보면 후회 따윈 없는 삶이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한 믿음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담담한 듯 슬펐지만, 이 헤어짐이 결코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슬픔을 떨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바르사, 나를 챠그무라고 불러줘. '안녕, 챠그무'라고 말해줘."

바르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안녕, 챠그무".

챠그무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안녕, 바르사, 탄다, 토로가이 님.....고마워."

탄탄한 세계관과 건국신화, 다양한 민족 문화에 대한 생생한 묘사, 여러 나라의 역사와 정치적 관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게 곁들여진 <수호자>시리즈. 이는 분명 여느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부분이다. 특히 <정령의 수호자>라는 제목처럼 모든 만물에 소생하는 정령의 존재는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닌 오히려 작품의 세계관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경의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다음권 <어둠의 수호자>로의 여행을 떠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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