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령의 수호자 ㅣ 수호자 시리즈 1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김옥희 옮김 / 스토리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
정령의 수호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환상적인 작화와 탄탄한 스토리로 구성된 <동양적인 세계관이 돋보이는 판타지 모험담>이었는데, 책으로 접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에하시 나호코의 수호자 시리즈는 총 12권으로 현재 제4권 '허공의 여행자'까지 출간되었다. <정령의 수호자>, <어둠의 수호자>, <꿈의 수호자>, <신의 수호자>는 '단창의 바르사'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30대의 여성무사가 주인공이며, <허공의 여행자>, <푸른 길의 여행자>는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가 주인공이다.

보통 판타지 문학이나 작품의 경우 10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령의 수호자 속 주인공인 무사 '바르사'는 30대 여성이다. 출간 당시 출판사 측에서도 난색을 표했다고 하는데, 작가 '우에하시 나호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인생 경험이 풍부하며, 어린 생명을 푸근히 감싸 안을 수 있는 모성애를 지닌 여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한다. 나 역시 당시 애니메이션을 접했을 때에도 그랬고, 책을 읽을 때에도 주인공이 나와 같은 30대 여성이어서 보다 친근감이 가고, 공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정령의 수호자 속 스토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주인공 '바르사'는 북방의 칸발 왕국 출신으로 어렸을 적 아버지가 궁중 암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게 되면서 아버지의 친구 '지그로'의 손에 무사로서 길러지게 된다. 이후 '지그로'마저 목숨을 잃게 되자 '바르사'는 고향인 칸발 왕국을 떠나 사람들을 경호하면서 번 돈으로 세상을 떠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사'는 우연한 계기로 신요고 황국의 제2황자 '챠그무'의 목숨을 구하면서 제2황비의 은밀한 부탁을 받게 된다. 바로 '챠그무'의 호위무사가 되어달라는 것. 알 수 없는 것의 알을 품은 제2황자 '챠그무'가 부황으로부터 몇 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아 왔고, 이번 사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르사'는 이를 받아들이고 '챠그무'의 몸속에 존재하는 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주술사 '토로가이'를 찾아가게 되고, 이는 '늉가로임의 알' 즉, 물정령의 알임과 동시에 '챠그무'가 이를 수호하는 '정령의 수호자'로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챠그무'가 품은 알은 나라의 가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어느 것이든 자기가 선택한 역할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정령의 수호자 늉가로차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자 묵직한,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느끼며 챠그무는 또다시 처음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왜 나일까?
왜 나일까? 수없이 자문해 보고 괴로워했지만, 이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챠그무'는 깨닫게 된다.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지금의 이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겠다고. '바르사'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객으로 온 친우들을 베어넘기며 살아남았던 '지그로', 당시에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 또한 '챠그무'를 구하고 지켜내면서 '지그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굴곡진 삶을 살아왔지만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는 '바르사'와 어리고 연약하지만 점차 강인한 성인으로 성장해 갈 '챠그무', 험난하지만 따뜻한 둘만의 여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왜냐고 물어도 알 수 없는 뭔가가 갑자기 주변 세계를 바꿔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커다란 손아귀 안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라 말하지만, 위 말처럼 아무런 후회가 없는 삶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언제나 뒤돌아보면 늘 후회로 남아있는 것이 누구나의 삶이다. 차그무의 삶과 선택도, 바르사의 삶과 선택도 돌아보면 후회 따윈 없는 삶이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삶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옳다고 생각한 믿음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은 담담한 듯 슬펐지만, 이 헤어짐이 결코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슬픔을 떨치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바르사, 나를 챠그무라고 불러줘. '안녕, 챠그무'라고 말해줘."
바르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안녕, 챠그무".
챠그무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마워. 안녕, 바르사, 탄다, 토로가이 님.....고마워."
탄탄한 세계관과 건국신화, 다양한 민족 문화에 대한 생생한 묘사, 여러 나라의 역사와 정치적 관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게 곁들여진 <수호자>시리즈. 이는 분명 여느 판타지 소설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부분이다. 특히 <정령의 수호자>라는 제목처럼 모든 만물에 소생하는 정령의 존재는 결코 황당한 것이 아닌 오히려 작품의 세계관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경의임을 알 수 있다. 그럼, 다음권 <어둠의 수호자>로의 여행을 떠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