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시계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관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작품임과 동시에 1기 마지막 작품이다. 1기 작품 중 네 번째 작품인 <인형관의 살인>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시계관의 살인>이 가장 재미있었고, 시리즈 중 평도 가장 좋고, 그래서인지 <일본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시계관의 살인> 역시 반복 교차되는 '이중구조'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각의 시간을 형상하는 12개의 방과 시계추 모양의 진자의 방이 있는 독특한 구조의 '구관'과 '신관'이라는 두 곳의 물리적 공간이 바로 서술의 중심축이다. '시계관' 역시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일본 전역에 지었다는 기괴하고도 독특한 건축물들 중 하나이며, 이곳의 주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계회사 '고가 정계사'의 전 회장인 '故 고가 미치노리(63)'였다. (지금은 그의 아들 '고가 유키야'(17)가 '시계관'의 현 주인이다.) 그는 자신의 딸 '故 고가 도와(14)'를 위해 시계관을 설계했는데, <관 시리즈>를 읽다 보면 도대체 왜 이런 독특하고 기괴한 건축물들을 지은 걸까?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다행히 작가는 '시마다 기요시'를 통해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 준다.


....

"내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지금 한 이야기와 같은 레벨 아닐까.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 딱히 거기서 무슨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가 지은 건물에는, 글쎄 뭐랄까, 이 사회의 압박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롭고 자 하는

어떤 장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런 기분이 들어.

거기에는 물론 설계를 의뢰한 '인간이 사육해 온 악몽'도 다분히 섞여 있을 것이고,

아니 오히려 그쪽이 메인인지도 모르지.

수차관의 주인이었던 후지누마 기이치, 미로관에 살고 있었던 그 선생의 경우에도, 말하자면 세이지는

그들의 '고독한 환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를

그런 관의 형태로 만든 것인지도 몰라.

그 점은 시계관을 지은 고가 미치노리도 예외는 아닐 거야.

.

.

<345page>


3년 전 <십각관의 살인>에서 대학생이었던 '가와미나미'가 이제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재등장 하는데, 무척 반가웠다. '카오스'라는 잡지를 펴내는 '희담사'의 신입 편집자로 재직 중인 그는 '시마다 기요시'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회사에 추리소설을 낸 것에 대하여 반가워하면서도 한 가지 부탁을 한다. '故 나카무라 세이지'가 지은 '시계관'에 소녀의 원혼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 진상 파악을 위해 교령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혹 시간이 되면 참석해 달라는 것이다. 희담사 직원들,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들, 초능력자 '고묘지 미코토'는 먼저 '시계관'을 방문하고 108개의 시계로 가득 찬 '구관'에서 교령회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날 밤 '가와미나미'는 진자의 방에서 '미코토'가 누군가와 다투는 소리를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다음 날, 구관의 출입열쇠를 가지고 있던 '미코토'가 사라진 것을 시작으로 밀실이 되어버린 구관에선 정체불명의 살인자에게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임을 당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시계관'에 합류하게 된 W대학 초자연 현상 연구회 회원 중 한 명인 '후타나시 료타'와 '시마다 기요시'(=시시야 가도미)는 '구관'으로 가지 않고 '신관'에 머물면서 관리자인 '사요코'를 통해 10년 전 '시계관'에서 연이어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신관에선 '시마다 기요시'가 10년 전 사건을 추적하는 한편, 구관에선 '가와미나미'가 밀실 속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결국 10년 전 발생한 사건은 현재 발생한 사건과 전혀 무관치 않은데, 어쨌든 한 곳은 죽음과 공포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고, 한 곳은 큰일 없이(약간의 수상쩍은 일들은 있지만) 돌아가는 일상의 장이 되어버린 이 극명한 상황이라니. 읽으면서 뒤늦게 합류한 '후타나시'가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 휴.............


<시계관의 살인>은 밀실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물리트릭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가장 충격적이고 큰 비중을 두었던 트릭은 이 '공간'이 아니다. 어쩌면 책의 제목에서도 그 암시하는 바를 충분히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눈에 보이는 실체만을 쫓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만을 쫓고, 그것을 현실이라 명명하며, 그 틀안에서 안심하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라는 어쩌면 관념적인 것조차도 '사물화'(=실체화) 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시계가 아닌가? 그리고 완벽하게 시간을 통제했다고, 통제하고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리석게도. 그래서일까? '故 고가 미치노리'의 딸에 대한 집착과 사랑으로 세워진 <시계바늘이 없는 시계탑>의 모습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유한함을 느낌과 동시에 애달프기까지 했다.

마지막, 침묵의 여신이 노래할 때 독자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펙터클한 장관이었다. 시간의 감옥에서 해방된 그녀의 영혼이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이루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니... 1기 전 시리즈들 보다 꽤 두꺼웠던 <시계관의 살인>이었지만, 흡입력 있게 잘 읽혔고, 무엇보다 '시마다 기요시'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았던 책이다. 덕분에 서평이 조금은 길어지겠지만, 그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아 아래 적어두도록 한다.



"시시야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이하생략)

"그렇지만, 주의주장이란 관점에서 마음속으로 전혀 믿지 않고 있을 거야.

물들어 있으니까 말이지.

이른바 과학적 사고란 것에 말이야. 하지만, 무조건 비과학적이라고 부정하는 것은

현대인의 구제받을 길 없는 교만이란 생각도 없는 것은 아니야.

.

.

<123page>




"우리들이 평소에 굳건하다고 믿는 이 현실이 실은 얼마나 위태롭고 빈약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는 것인지를 말이야.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현실은 절대로 견고한 실체가 아니야.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사회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아."

"환상이오?"


"현실이란 이름의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서 만인으로 하여금 분명한 실체라고 인정하게 하고,

또 믿도록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일이 이 사회의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들에게 안정이 공급되는 셈이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이 도식은 변함이 없어.

그러나 동시에 종종 그것이 일종의 지배 - 통제의 장치로 과잉되게 기능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

결과적으로, 그런 도식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라고 단언하면서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소인배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게 되었어.

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현실에 불만을 터뜨리는 자가 나타나면,

거의 신경질적으로 과민반응을 일으키지.

맹목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화를 내고, 그들을 배제하고, 매장시키려고 해.

그런 모습을 보고 웃는 것은 언제나 그들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그 거대한 지배 = 통제 장치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뽑아내려고 분주한 패들이지.

.

.


<343pag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