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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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기누가사 사치오'와 한자는 틀리지만, 동일한 이름을 갖고 있는 남자 '기누가사 사치오'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자신의 이름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 있든,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사치오 그 자신이 아닌 야구선수 '기누가사 사치오'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야구선수가 된다면 끊임없이 야구선수인 '기누가사 사치오'와 비교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결국 사치오는 야구선수라는 꿈은 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소설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사치오와 대학 동창이었으나 재학시절 큰 교류도 없었고, 도중에 중퇴한 다나카 나쓰코. 어느 날 미용실을 방문한 사치오는 그곳에서 나쓰코와 재회하게 된다. 머리를 감겨주는 나쓰코의 손길이 기분 좋았던 사치오. 그러면서도 그녀의 이름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 스친 어떤 빛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좍 끼치는 느낌과 함께 사치오는 나쓰코, 그녀에게 함락되고 만다.

부부가 된 사치오와 나쓰코 두 사람. 사치오는 '기누가사 사치오'라는 이름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그 자신 안에 내재되어 왔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소설가로서 이런 자신의 본명을 버리고, 쓰무라 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사치오. 그 필명 뒤에 숨어서 조악하고 유치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감추고 허세도 부려보지만, 실제 자신의 삶과 소설가로서의 삶의 간극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아내인 나쓰코는 미용실을 계속 운영하면서 남편인 사치오가 소설가로서 유명세를 탈 때에도, 그렇지 못할 때에도 그저 묵묵히 독립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리고 사치오의 이런 모습들을 비난하지도, 추켜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지켜만 볼 뿐이다. 그 어떤 의존도 허락하지 않은 채. 이렇듯, 자신과 달리 늘 한결같은 아내의 모습은 사치오, 그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비굴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반항 심리 때문일까? 급기야 사치오는 외도까지 하게 되고, 아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도 악의로 되받아 친다. 남편에 대해 점점 싸늘해지는 나쓰코.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했을 사치오와 나쓰코였겠지만, 결국 서로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바랐는지 묻고, 얘기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그들의 결혼생활은 끝나고 만다.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친구인 오미야 유키와 나쓰코가 버스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깊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 이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잃는 것과는 슬픔의 정도가 비교도 안 되겠지만, 후자가 빠질 실의의 늪 또한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61page> 아내의 장례식 날 사치오는 울지 않았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죽은 아내의 얼굴을 본 지 스무 시간 뒤에는 벌써 그 백골을 줍고 있었다. 화로 문이 열리고 안에서 재가 된 유골이 나오자, 나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동요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평평한 받침대 위에 널린 그것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몇 번을 봐서 알고 있는 '인간의 유골'일 뿐 나쓰코다운 점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65page>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잃은, 오미야 유키의 남편인 오미야 요이치. 그를 장례식장에서 만났고, 이후 있을 또 다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사치오는 생업으로 바쁜 요이치를 대신해, 그의 남겨진 두 아이들 신페이, 아카리를 돌보게 된다. 이 기묘한 동거 아닌 동거로, 그동안 자신을 잃은 채 살아왔던 사치오의 인생에 작지만 큰 변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자신 안에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사랑이었다. 또한 그 자신 사치오가 아내인 나쓰코와 누렸어야 할 행복이기도 했다.


아내가 죽었다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니시카와 미와의 <아주 긴 변명>은 아내를 잃은 두 남자 사치오와 요이치의 애도의 과정을 담담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사치오가 요이치의 아이들인 아카리와 신페이를 돌보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사랑과 삶의 의미를 슬프지만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한 남자, 사치오의 아내에 대한 고백이자, 아주 긴 변명 끝에 힘겨운 자각과 견뎌냄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뒤늦게 흘린 그의 눈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누가사 사치오는 처음으로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울었다. 329page>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았을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는지, 당신과 헤어지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고,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살아 있는 동안에는 노력이 중요하겠지.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걸, 사람은 후회하는 생물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건 어째서일까. 사랑해야 할 날들에 사랑하기를 게을리한 대가가 작지 않군 <..........> 마음속으로 사과한다 한들 용서해주는 당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그쪽에서 당신이 나를 얼마나 욕하고 동정하든, 그 목소리 역시 내게는 들리지 않고, 인간은 죽으면 그뿐이지. 우리는 둘 다 살아 있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어....

<책속 밑줄>


인간은 '참담한 일을 당했지만 그걸 극복해냈다.'하는 타인의 스토리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개개인이 직면한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원기 회복제로? 아니면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심심풀이로? 어느 쪽이든 사치오가 만들어내는 허구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면 몰라도, 자신의 인생 자체가 그 재료가 될 수 있다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 73page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프로그램 사회자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려 스위치를 끄는 순간 딸꾹질이 났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울고 싶지 않다. 왜 간혹 이러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이 기분 상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불행을 겪지 않은 그들의 태평함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그저 유쾌한 남일뿐이다. 그들이 생활 속에서 '불행을 겪고 있지 않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 100page


'엄마가 없을 때'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없을 때'라는 건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잖아. '없어졌을 때'를 '없을 때'라고는 하지 않잖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잖아. - 118page


석 달 전까지는 이렇게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던 오누이가 이토록 야무지게 생활하려 애쓰는 건 그전의 습관이나 교육의 성과라기보다는 엄마가 고집스럽게 구축해놓은 성실한 생활의 기억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그것들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엄마와 살았던 기억을. - 15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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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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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절반이 뒤덮이고, 하얀 나체 위에 붉은색의 강렬한 천으로 뒤덮인 여인의 모습은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기고자 함인지... 김희재 작가님의 <소실점>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색상처럼 강렬한 시선으로 나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처음 책의 제목인 <소실점>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위의 그림인데,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는 이번에 정확히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마인데르트 호베마'의 대표작인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라는 작품이다. 가로수길, 저 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시선을 잡아끄는 중앙에 배치된 '하나의 강렬한 소실점'때문에, 이 단어를 보자마자 오래전 내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던 이 그림이 그렇게 떠올랐나 보다. 소실점이란, 2차원의 평면에 원근법과 입체감이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기준이 되는 선을 그리는 방법을 말하며, 이 단어를 중고등학교 때 미술시간 외엔 크게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오래전 내가 알고 있는 소실점이라는 정의 혹은 의미를, 작품 <소실점>은 어떻게 표현하고, 그려냈을지 궁금했기에 책을 펼쳐 들었다.


뉴스에 실종 사건이 특종으로 보도된다.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은 KBS 9시 뉴스 여자 앵커 최선우다. 지명도로 치면 대통령과 유재석 다음으로 유명했고, 남편은 외교관, 시아버지는 재벌 총수, 친정 또한 이에 못지않은, 그야말로 '노블레스의 표상'이랄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외딴 집 거실에서 기이하게 목이 꺾인 채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강력부의 유능한 검사 강주희가 사건을 수사 담당하게 된다. 용의자로 검거된 사람은 이 집의 주인인 화가이자 미술교사인 서인하로 검거 후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하나 검찰청 조사실, 강주희와의 첫 대면에선 돌연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나는 최선우 섹스 파트너였어! SM! 사도마조히즘 커플이었다고, 우리가!"


그동안 대중들에게 비쳤던 최선우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상반된 충격적인 이야기였으나, 최선우가 타살이라는 명백한 증거도 없고, 시종일관 일관된 서인하의 이야기 속 논리와 이를 입증하는 증거 사이엔 괴리가 없고, 오류가 없는 것이 강주희를 당혹게 하고, 수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최선우의 남편 박무현이 강주희를 찾아온다.


"나만 알고 있는 내 아내에 관한 '사실'을 확인시켜드리죠."


최선우의 남편 박무현과 함께 한때, 그들이 살았던 집을 방문한 강주희는 서인하가 주장하는 모습과는 다른, 최선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고전적이고, 현모양처에 정숙하기 이를 데 없는. 살아생전에 만났다면 지루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 그래서일까? 강주희, 자신을 향해 나지막이 내뱉은 박무현의 "모욕당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한마디는 그녀로 하여금 왠지 모를 다행스러움을 안겨준다. 최선우, 당신 진짜 모습이 뭐야? 아니 진짜 모습이란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강주희 그녀 자신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저 붉은 베일을 벗겨내고 싶었다. 그러면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된 증거 하나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선배 검사가 맡고 있던 연쇄살인방화사건의 증거물들이 서인하의 집에서 발견된 것이다. 최선우 살해 후 시신방치, 또 다른 연쇄방화살인까지. 결국, 두 사건의 연결고리 선상에 놓이게 된 서인하는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했고, 판사는 검사의 구형을 그대로 언도한다.

"사형."

최선우, 그녀를 잊고 서인하, 그를 잊고 이제는 진심으로 이 사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강주희 검사. 실로 며칠 만에 모습을 드러낸 햇살이 빛을 더하는 예쁜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청송교도소장입니다. 5892번, 그러니까 서인하가 검사님을 좀 뵙고 싶다고 합니다."


다시 서인하와 대면하게 된 강주희 검사. 또다시 그의 입을 통해 나온 '이 한마디'는 모든 사건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고, 그 진실은 슬프다기 보다 서늘했다. 마치 불꽃처럼 붉은색으로 타올랐다가 점차 더 거센 온도로 타오르면서 푸른빛이 되는 파란 불꽃처럼.

​ps.

서인하, 그가 내뱉은 '어떤 한마디' 뒤에 담담히 들려준 <소실점>에 대한 아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은 들으면서 든 생각은 결국,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이 그림 속 <소실점> 밖 저 끝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서인하' 그 자신뿐이 길 바란 것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겐 이 그림이 <소실점> 안의 '보이는 그대로의 그림'으로 남길 영원히,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나 또한 그의 바람대로 해주고자 한다. 달의 뒷면, 그림 속 <소실점> 밖의 그림은 서인하, 당신이 모두 안고 가는 것으로... 

"저는 최선우를 똑바로 보기 위해 매 순간 새로운 소실점을 찍고, 제 위치를 바꿔가며 그녀를 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있는 자리에서 결코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한 번 찍은 소실점에 변동 없이, 그 구도 안에 선우를 밀어 넣은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 모습을, 저는 그래서 볼 수 있었고, 저는 그래서……." 28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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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 소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배우다
무무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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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과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위안과 위로를 준다. 나 또한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쩌면 아직 치유되지 않은, 못한 감정의 더께들을 책을 통해 털어내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은 제목도 참 좋았고, 감성을 자극하는 핑크빛의 책 표지도 그 자체로 좋았다. 각 테마별로 8장까지 68개의 꽤 많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개별적인 이야기들을 한 꼭지씩 읽을 수 있어 부담도 없다. 작가 무무는 필명으로, 국내에선 필명 외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데, 그래서일까? 화자가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선, '아 이제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나 보다'라며 읽다가 그 작중 화자가 '여성'임을 알게 되고 '아 무무 작가님은 여성인가 보다' 혼자 생각하다가, 다음 꼭지를 읽는데 거기선 '나'라는 화자가 '남성'으로 등장한다. 잠시 머릿속의 혼란을 수습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즉,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 작가 본인이 직접 체험했거나 경험했던 이야기들은 거의 없고,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일상 속에서 느낀 어떤 깨달음이나 소소한 감정들을 나는 듣고 싶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들이, 나에겐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고,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책 속 68개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들을 읽는 재미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나름대로 즐겁게 읽었고, 좋은 문장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몇몇 이야기들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거나,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꽤 많았다. 내가 '작위적이다'라고 느낀 것은 오롯이 내 문제다. 나라는 사람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초연할 수 있다거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거나 등등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초인적인 이야기들은 교훈은 될지 언정 오히려 약간의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뭐랄까? 너무 멀게 느껴져서 정말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작가의, 혹은 사람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어떤 환상이나 이상향은 아닐까? 정말 실화인지, 어떤 감동을 주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이런 불편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부분이었다. 요즘과 같은 시대의 인스턴트식 사랑, 너무 쉬운 이혼 등 작가님께서 비판하고,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는데, 그 주제에 포함된 몇 개의 이야기들은 나를 당혹게 했다. 젊었을 적 자식과 아내에게 난폭하게 굴다가, 나중에 늙어서 치매가 든 후에 비로소 아내를 위해 하는 여러 행동들이 이해도 안 가고, 전혀 감동스럽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런 남편이 죽고, 남편을 위해 우는 여자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 일화를 예로, 참고 인내하는 사랑이라며 요즘과 같은 시대의 사랑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그럴 거면 평소에 좀 잘하지, 왜 꼭 치매가 걸린 후에 아내를 위하는 척하느냔 말이다. 한 일화는 여자의 생일날 남자가 곰인형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선물이 마뜩지 않았던 여자는 하루 종일 뾰로통하다가, 술 마시고 차 안에 토하고, 심지어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다가 이를 알아챈 남자가 대신 몸을 날려 목숨을 잃게 된다. 후에 곰인형 속에 프러포즈 반지가 있음을 알게 된 여자가 대성통곡하면서 뒤늦게 남자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우리는 때로 경솔하고 침착하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조금이라도 남자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난 이 이야기 속의 남자가 이해가 안 되어서 너무 답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보잘 것 없는 선물이라도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를 말이다.


<행복이 머무는 순간들> 분명, 읽을거리도 풍부하고 소소하게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와 좋은 문장들도 많다. 책 중간중간엔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도 배치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다만 내 마음이 아직은 강팍한 것인지, 아직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인진 몰라도 읽는내내 왜?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고, (사실 굉장히 눈물이 많은 편인데) 눈물 한 번 흘리지 않고 무표정에, 무감각하게 읽어나간 페이지들도 꽤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나라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평이다. 사람마다 느낀는 바가 다 다를 것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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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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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 아버지의 실험실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호프 자런에게, 실험실이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안전함을 제공해 준 것이 과학이었다. 아버지에게 과학자라는 것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정체성이자 신분이었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과학자란 다른 꿈을 꿀 수 없는 뿌리 깊은 본능이자 유일한 꿈이었다. 과학은 그녀에게 무엇을 발견하는 데서 느끼는 행복과 존재했지만 이제 존재하지 않는 모든 중요한 것을 주의 깊게 적어두는 것이야말로 망각에 대한 유일한 방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랩걸은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하나의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성장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마찬가지로 호프 자런, 그녀 자신이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한차례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마침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되는 성장의 과정들이 식물의 삶과 그녀의 삶으로 교차되며 이야기된다.


<뿌리와 이파리>

숲을 걷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무가 만들어 낸 숲의 신비한 기운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거진 나무의 우듬지를 찬탄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발아래는 잘 쳐다보지 않는다. 땅속에 나무를 꿈꾸는 수많은 씨앗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모두 그다지 가망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절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기회를 기다린다.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아버지의 영향, 어머니와 함께 꾸몄던 정원, 병원 일에 대한 환멸감 그리고 과학자로서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가 된 빌과의 만남 등을 통해 호프 자런의 삶은 단단한 땅에 더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녀 인생의 첫 실험실에서, 과학자로서 첫 발견을 했을 때 벅차오르던 감정들, 그러나 연이어 행한 실험에선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맛봐야만 했던 그녀.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이방인의 입장이 아닌,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입장. 결국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 인생에, 더 많은 잎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 가루가 오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이 우주에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작고 부족한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바로 이날을 위해 일하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 큰 만족감에도 그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소한 일 혹은 엄청나게 재미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는 작은 발견에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이 창피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훔쳤다. 창밖을 보니 캠퍼스가 떠오르는 태양의 첫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다른 어느 누가 나처럼 숨이 멎을 듯한 이 아름다운 여명을 맞고 있을까 생각했다.

<나무와 옹이>

인류가 태동하기 훨씬 전, 이 지구 상의 오랜 주인은 식물들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적(곤충, 곰팡이 등) 과의 전투와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더 진보된 형태로 진화하여 왔다. 그러나 인간이 먹이 사슬 맨 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들의 삶은 황폐화되고 생태계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즉, 살지 않아야 할 곳에 사는 식물들이 생겨난 것이다. 바로 살지 않아야 할 곳에 번창하는 식물, 잡초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건강한 숲을 헤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창밖을 내다보면, 빈약한 나무 몇 그루가 있을 뿐,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도로는 자가증식하는 균처럼 뻗어나가며, 식물들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 인간은 결코 이들과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없다. 그 결과로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각종 자연재해와 질병 외에 더 나은 것이 있단 말인가? 나라에서도 환경과학 분야에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눈앞의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별로 인기가 없는 분야에 대해선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예산을 동결하기까지 하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호프 자런, 그녀도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고, 초조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연구의 걸림돌이 되는 재정적 문제가 늘 그녀를 괴로움에 시달리게 했다. 심지어 연구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그녀 스스로를 잠식시키고, 급기야 극에 달한 광기는 몸과 마음, 정신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그녀 인생의 소울 메이트인 빌이 그녀와 함께 했다. 초라한 실험실에서도, 수많은 곳을 떠돌며 현장실습을 나갈 때에도, 지속적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 자신의 열정도 있었을 테지만, 빌 그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절대 연구 기금을 못 따게 되면? 내가 능력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되면 어떡하지?" 나는 흥분해서 횡설수설했다.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그런 말은 집어치워. 그런 말 해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빌이 소리쳤다. "연구 기금을 못 따면 어떡하냐고?"

여기 들어올 수 있는 열쇠가 우리 손에 있잖아. 내일 가서 그 열쇠들, 복사해둘게. <....> 이 거지 같은 실험실, 한 번 만들어본 걸 두 번 못 만들라는 법은 없어. 아니면 모든 걸 집어치우고 야반도주해버릴 수도 있지. 옆 타운에서 넌 손풍금을 치고 나는 모자 들고 동전을 거두면 되잖아." 

그의 훈계에 위로를 받고 나는 희미하게 웃기 시작했다.

<꽃과 열매>

대부분의 꽃들은 자가 수정으로 씨를 맺고,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키지만 어떤 종이 계속 대를 잇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타가 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꽃가루는 30센티미터, 혹은 3미터, 혹은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씨방에 성공적으로 도착해야 한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꽃가루 단 한 톨이다. 이렇듯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후손을 남긴다. 과학자로서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이파리를 길러내고, 크고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기 위해 한 차례 크나큰 성장통을 겪은 그녀도, 사랑하는 남자 클린트를 만나 여성으로서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품게 된다. 그러나 임심 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소우주인 자궁 속을 꽉 채우고 있는 사랑의 결실로 행복해야 함을 알면서도, 인생의 일부분이 끝날 것 같은 상실감에 오랫동안 깊이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믿었다. 눈물로 뿌린 씨는 기쁨으로 거두듯, 어쩌면 자신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나와 아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답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제는 내 사랑이 아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큰 건 아닐까 걱정한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알 필요가 있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풍요로운 사랑을 모두 표현할 능력이 없어 무력감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렸던 기다림의 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아이는 불가능한 동시에 불가피했다는 것을 깨닫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단 한 번의 기회가 한 번 내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절이 생각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땅속에서 움트길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 그 자신이 썩어져 새싹을 틔워내고 잎이 무성한 나무로 성장하여,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찬란한 고통이 만들어 낸, 기적과도 같은 자연의 선물, 나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인류 문명은 4억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단 세 가지로, 즉 식량, 의약품, 목재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버렸다. 우리의 끊임없고 점점 더 거세지는 집착으로 인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황폐의 규모는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재해가 끼친 피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1990년 이후 매년 우리는 8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서 그루터기만 남기고 있다. 이런 속도로 건강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계속하면 지금부터 6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지구 상의 모든 나무들이 그루터기만 남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 엄청난 비극에 대해 누군가는 걱정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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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눈 여겨 보고 있는 책입니다. 역시 가까이 있는 분이 리뷰를 써주시니까 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

별해무 2017-03-14 17:12   좋아요 0 | URL
네 :) 처음엔 실험얘기들이 잘 몰라서 이해가 안 가고, 이해할 수도 없을 뿐더러 ㅋ
읽기에 조금 어려운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주욱~ 읽어나가다 보니 적응도 되고, 좋은 내용들도 많더라고요 :)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

 최근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피고인> 속 주인공도 검사이다. 비단 <피고인>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검사의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TV 속 검사의 모습은 때론 정의롭게, 때론 권력욕에 취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깔끔한 정장에 지적인 이미지와 어딘지 근엄해 보이는 모습은 좌중을 압도하는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적어도 내 눈에 검사의 모습은 이런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신랑한테 "나중에 우리 자식이 검사가 되면 진짜 대박이겠다. 그치? 완전 좋다, 정말 멋지다!" 이런 실없는(?) 소리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환상 속의 검사;) 그런데 16년 차 부장검사로 재직했던 저자 안종오의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라는 에세이를 읽고 이런 이미지를 한 꺼풀 벗게 되었다. 검사라는 직업도 평범한 샐러리맨들처럼 늘 업무에 시달리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직장 내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걸. 적어도 책 속 안종오 저자의 모습은 그랬다. 사실 가족이나 친인척 중 검사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본인이 피의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고선 검사를 직접 대면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라는 직업이 알게 모르게 미화된 것도 같다. 이런 의미에서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라는 에세이는 검사, 그들이 사는 세상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 책이자, 검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진중한 고백록이기도 하다.


뉴스를 보면 각종 사건들이 많이 보도된다. 대부분이 안 좋은 소식들이다. 사기, 살인, 절도, 폭행 등 보고 있으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러고선 한 마디 내뱉는다. 아휴, 저것들 왜 저렇게 사냐?, 천벌을 받아야지 등 그들의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나 스스로 심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TV를 통해 보도되는 그들의 범죄행위는 대부분 단편적이고, 행해진 결과만을 보여준다.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니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관한 사연들은 잘, 말하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고, 법정에 세우고 하는 것은 변호사나 검사의 역할이다. 그러다 보면 사건 하나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책의 제목처럼,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안종오 저자의 초임 검사 시절, 공판검사 업무를 맡았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실수로 어린아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인데, 당시 피고인은 말기 암의 어머니를 둔 24살의 젊은 여성이었다. 깊은 참회 속에서, 법정 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피고인의 가족은 딸의 인생을 위해 울고, 피해자의 가족은 사라져버린 아이의 인생을 위해 울었다. 이 상황에서 당시 안종오 검사는 그저 먹먹해져 앉아 있었다 한다.


검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삶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았으련만. 누구라도 좀 가르쳐주었으면 좋으련만. 생각지도 못한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사회 초년생인 나의 가슴은 두려움으로 요동친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수많은 삶의 민낯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나는 그 인생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배심원도 아니고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다. 그들의 먼 미래를 바꿀 수는 없어도 눈앞에 닥친 상황에 작게나마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검사다. 삶과 죽음, 피해자와 피의자, 분노와 처절함으로 들끓는 인생의 도가니를 지켜보는 이 순간이 두렵지만, 그들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것 또한 검사라는 직업의 비애다. 인생은 나에게 삶의 기쁨보다는 상처를 먼저 가르치려 든다. 그런 인생 앞에 용기 내어 이렇게 맹세해본다. 지금부터 내가 부딪칠 순간들을 두려움 없이 대할 것이다. 그리고 내 눈앞의 인생에 귀를 기울이며 삶을 배워나가리라.

좋든 싫든 매 순간 타인의 인생을 들춰 봐야 하는 것이 검사라는 직업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 위에 쌓여가는 사건 기록들, 아직도 해결되기 만을 기다리며 쌓여있는 캐비닛의 사건 기록들, 때론 하루라는 시간이 부족하여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서슴지 않는다. 위 사건처럼 양측이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지만, 누가 봐도 반드시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사건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 허투루 다룰 수가 없다. 어쩌면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일 수 있다. 한순간의 실수로 눈앞에서 범인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검사나 판사가 과연 인과의 사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명확하게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네 의무라면,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명확성을 견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숙명일 것이다. 불명확성을 견디는 힘, 그러한 용기를 갖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야 가끔은 악마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고소제도라는 것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몰랐던 사실이다. 한국의 고소제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정말 독특하다고 한다. 미국은 고소제도라고 볼 만한 제도가 없고, 일본은 고소장을 내도 수사할지 어떨지는 검사의 재량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검사가 모든 고소 사건을 수사해 수개월 내에 수사 결과를 내놔야 하고, 고소인은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항고, 재정신청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보면 된단다. 이 얘긴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검사만큼 사건이라는 업무에 쫓기고, 시달리는 검사가 없다는 얘기와 같다. 그래서일까? 일주일 내내 업무에 시달리고, 치이다 보니 자기 자신과 가정에 대해선 점점 소홀해져 갔고, 급기야 공황장애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한다.

무엇보다도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문제였다. 지적받지 않도록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일하는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지적을 받으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탈이 난 것이다. 그리고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업무 강도에 체력적인 한계를 느꼈음이 분명했다. 자존심이 강한 데다가 나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어느 때는 우월감을, 어느 때는 열등감을 느끼곤 했다. 남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갈구하면서도 겉으로는 항상 괜찮은 척, 안 그런 척, 강한 척했다. 그러다 보니 신경 계통에 부조화가 왔을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사법시험 실패로 큰 좌절을 겪으면서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안종오 검사는 말한다. 어차피 아픔 없는 삶이란 없다. 역경 없이 살아낸 사람이 있을까? 공황장애의 경험을 자신의 앞길을 비추는 손전등으로 사용하려 한다. 나를 뒤로 잡아끄는 장애물이 아니라 갑자기 내게 온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야 내 삶도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겉모습만 보고 단순히 멋진 직업으로만 생각했던 검사라는 직업이 결코 녹록지 않은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아오는 피의자의 가족들이나, 관련자들에게 소홀히 대하지 않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안종오 검사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검사는 무섭고, 딱딱하다는 내 나름의 선입견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건 이야기들과 더불어 안종오 검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든가, 1년의 유학생활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 이야기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늘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홀히 대했던 나의 가족... 그랬기에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가 또 생각이 나서 책을 읽다가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다.

책의 마지막 장 <고맙다, 지금까지 버텨주어서>는 저자 안종오 검사님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글이자, 독자에게, 나에게 보내는 글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또 가슴이 뭉클, 눈물이 훌쩍 나기도 했다. 검사로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 그리고 그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 그 속에 피어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내가 얻은 것은 나 자신이다. <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너무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야. 너는 그냥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어떤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냐. 따라해 봐. '난 존재 자체로 빛난다.'


그동안 많이 아팠으니 이젠 그만 아프자. 넘어지는 연습 많이 했잖아. 그 수많은 마음의 상처들을 이젠 떠나보내자. 안 아픈 척하느라 수고 많았어. 이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자. <.......>오늘 진심으로 이 한마디 하고 싶다. 정말 고맙다. 지금까지 힘껏 잘 버텨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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