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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사색 - 빛과 어둠의 경계에 서서
강원상 지음 / 지금이책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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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누군가에게는 그저 어제처럼 이날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제와는 다른, 너무도 다른 날이었다. 수많은 어린 영혼들이 미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그 깊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수장되어버린 날. 바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날이다. <TV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앞에 놓인 점심식사를 마저 하고 있더라고요. 한참이 지나 그릇이 깨끗이 비워진 걸 깨달았어요. '아, 인간은 참 잔인하구나......'> 강원상 작가님은 이때의 깨달음을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오로지 잊지 않기위해. 그리고 이 책을 펼친 당신들이 잊지 않으려는 자들로 남아주길 바라는 애절한 마음으로. 작가님과 그리고 잊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늘도 움직였을까? 2017년 3월 23일(비록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드디어 세월호 인양이 시작되었고, 하늘엔 노란 리본 모양의 구름이 드높게 그려졌다.

강원상 작가님의 <공감사색>은 '관객과 죄수', '부르주아의 국가', '다시 한번 희망을'이란 소제목으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소제목 속엔 작가님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세월호 사건부터 국정농단 사태까지, 우리 국민 모두가 겪어야 했던 현시대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강원상 작가님의 비판적 시각아래 하나씩 하나씩 풀어져 있다. 또한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따뜻한 후원과 관심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공감사색>을 한 꼭지씩 읽어가면서 내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고, 이미 알고 있었으나 잊어버렸던 것들은 다시금 부끄러운 반성과 함께 기억하게 하고, 편협했던 나의 생각에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해주고,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 자화상을 바라보며 내 가슴에 울분을 느끼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광장으로 달려가 촛불을 든 희망의 불씨인 우리 국민들이 있다는 것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
1791년 영국의 뛰어난 건축자 겸 개혁자였던 벤담은 최소의 비용과 감시로 최대 효과가 가능한 감옥을 설계한다. 바로 '모두 본다'(pan+opticon)는 뜻의 판옵티콘이란 원형 감옥이다. 아래 그림처럼 중앙에 감시탑이 있으며 그 주변을 죄수의 방들로 채운다. 중앙의 감시탑은 늘 어둡게 하고 죄수의 방은 밝게 하여 감시탑에서 언제나 죄수의 방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어두운 감시탑을 보지 못한다. 그 결과 죄수들은 24시간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며 스스로 규율을 지키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무서운 것은 권력자들은 언제나 하늘에서 땅을 지켜보는 신처럼 <판옵티콘>을 꿈꾼다는 것이다.

반대로 시놉티콘은 '함께 본다' (syn + opticon)는 뜻이다. 즉 감시에 대한 역감시이다.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감시하는 양상이랄 수 있다. 아래 그림처럼 관중으로 둘러싸인 중앙 무대에서는 배우도 관객을 볼 수 있지만 주로 관객이 배우를 지켜본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선택해야 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감시하는 다수의 힘없는 죄수로 남을 것인지, 소수의 권력자들을 원형의 무대에 세워 역감시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놉티콘의 사회를 구현할 것인지. 그동안의 대한민국은 판옵티콘의 양상을 보여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6년 12월 9일 234표로 탄핵안이 가결되었고, 광장으로 달려나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치켜든 촛불의 힘은 2017년 3월 10일 8:0으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이끌었다. 이는 헌정사상 첫 탄핵이자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너무도 명백한 진리를 실현한 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진보와 보수는 자주 대립한다. 그러나 진보를 표현하는 단어가 좌익(左翼) 즉, 왼쪽 날개를 뜻하고, 보수를 뜻하는 우익(右翼)은 오른쪽 날개를 뜻한다. 세상 어떤 새도 한쪽 날개로만 하늘을 날 순 없다. 두 날개가 몸에 붙어 있어야 드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진보와 보수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으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로서 균형을 필요로 한다. 잊지 말자.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것을.
뉴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4년간 12억 원가량 재산이 증가했다 한다.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국정농단 등, 전 국민을 슬픔에 젖게 하고 두려움과 울분, 분노에 빠뜨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포함 정치인들은 자기들 밥그릇 채우기에 급급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연평균 50회가 넘는 출장을 가는데 대부분의 명목은 쓸데없는 것들이다. 그들이 해외출장비로만 일 년에 약 4천만 원을 사용하며, 국민 혈세에 대해선 그 어떤 사용 검증도 하지 않는다. 2015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OECD국가 가운데 1인당 GDP대비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수 수준은 3위로 상당히 높은 편이고 스웨덴은 24위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보수 대비 의회의 효율성은 스웨덴이 2위, 우리나라는 26위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그저 비탄과 울분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가슴 아픈 사건들이 너무도 많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운동화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해야 했던 가난한 여고생들의 이야기까지... 너무도 대비되고, 모순되는 이 상황 속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 역시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했던 방관자는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비통하고 답답하여 그저 속절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러라고 그들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닌데, 힘을 준 것이 아닌데, 언제까지 우리는 국가의 무차별적인 폭력 앞에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대한민국 18세 청년들은 OECD 3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선거권이 없다고 한다. 촛불집회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들의 작은 목소리를 내기위해 모인 청년들을 보았다. 한창 공부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쪼개 광장으로 모인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어린 학생들이 아니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이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만약 이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면 유권자가 60만 명으로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청년을 위한 교육 및 노동정책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한다. 하루빨리 청년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2017년은 대한민국 건국 69주년이 아닌 98주년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언제 탄생했을까. 1919년 4월 10일 독립지사 29명이 국호 논의를 위해 모였고, 결국 표결 끝에 '대한민국' 국호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를 건국 60주년으로 하겠다." 발표했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이라 언급했다. 즉, 대한민국의 시작이 1948년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1919년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것은 독립군과 독립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즉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하게 되면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제 하의 모든 친일 활동이 정당화되며, 당시 행위에 대한 어떤 책임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타국까지 넘어가 목숨 걸고 투쟁한 항일 독립투사들의 죽음과 눈물의 가치를 축소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57Page
건국 98주년이 되는 2017년도는 대선이 있는 해이기도 하다. 썩은 뿌리는 잘라내고, 다시금 씨를 뿌려 새로운 싹을 틔워야 한다. 미국의 문예평론가 조지 진 나단의 말처럼 "나쁜 관리들은 투표하지 아니한 좋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것"이라는 말처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고, 두 번 다시 "최순실과 그 무리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강원상 작가님의 <공감사색>은 곁에 두고 여러 번 곱씹어 읽어 볼 것이다. 이 책 <공감사색>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된 것이며, 회색빛으로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는 나라이지만,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다시 한번 희망을 꿈꿔 볼,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다. 잊지 말자. 나도,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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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어지고 수면 위에 슬픔이 떠오른다.
비는 점점 짙어지고 별은 휘청거린다.
꽃잎은 모두 져버리고 흙탕물에 버무려졌다.
봄은 다시 왔건만 우리 아이들은 언제 돌아오려나.
꽃은 다시 활짝 피겠지만 웃음꽃은 오직 사진뿐이구나.
바람아 불지마라, 밤에라도 편히 잠들도록.
구름아 달을 가리어라, 떨군 내 슬픔 감추도록.
밝혀라 촛불아, 진실을 인양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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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탄생과 죽음은 필연이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존은 국가와 어른들의 몫이다. 어른들이 무시한 안전과 어른들의 잘못된 구조와 어른들의 소홀한 대처로 우리 아이들이 너무 빨리 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난 그날의 아픔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날의 어른들은 너무 무능했고, 너무 무신경했고, 너무 뻔뻔했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말은 뼈와 심장이 없는 소리일 뿐 절대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책 속 한 방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