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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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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점점 더 무뎌지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연인 간의 사랑으로 뜨겁고, 달콤하고, 설레고, 두근거리고, 애틋하고, 이별 후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고 그리운... 사랑이, 그런 사랑에만 머문다면 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우연히 스친 한 여자를 잊지 못해 밤새 그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랑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누가 머라 하건 사랑은 그냥 사랑인 것 같다. 미지근한 것도 사랑이고, 차가운 것도 사랑이다.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할 건 아니다. 우리 몸을 지나갈 것은 이미 다 지나가버렸다. 원하던 것을 가졌고, 가지지 못한 것들은 포기했다. 그리고 남은 것이, 희미한 재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56page> 더 이상 가슴 두근거릴 일도, 볼 빨개질 일도 없는 불혹의 시간을 기다리는 나이기에, 사랑은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처럼 까마득한 옛일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미지근한 것도 차가운 것도 사랑이라니. 나 아직 사랑을 하고 있는 거구나. 사랑의 온도만 조금 변했을 뿐, 사랑은 그냥 사랑으로 내 가슴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구나.
오래전 나는 오로지 한 사람, 하나의 사랑에만 함몰되어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었고, 우리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멈춰 있었다. 모든 노래의 가사는 내 얘기였고, 구슬픈 멜로디는 귓속에 스며들어 마음을 적시곤 했다. 눈물은 詩가 되고 손끝에서 피어난 문장들은 오롯이 그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에 숱한 밤을 잠 못 이루며 뒤척였고, 후에 찾아온 이별엔 몇 개의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곤 했던, 오래전 나의 뜨거웠던 사랑. 그때의 나는 뜨거웠지만, 하나의 사랑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랑은 보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사랑을 잃은 딸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엄마와 할머니. 나의 세계에 함몰되어 있던 나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그저 나의 세계 속에서 웅크린 채 하염없이 슬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다' 생각되면서도 그 시절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무모했기에, 어쩌면 순수했기에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믿고, 내 모든 것을 던졌던 사랑. 비록 상처로 끝나긴 했지만, 이 또한 사랑이었음을...
<헤어져야 할 때 헤어져야 하는 사랑. 헤어져야 할 때 헤어질 수 있는 사랑. 그것도 사랑. 그래야 사랑. 바다 앞 어느 여관 낡은 방에 쓸쓸히 누워 헤어짐을 결심하기 좋은 장소는 바다만 한 곳이 없지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스무 살 시절이 있었다. 192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