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지
김안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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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책표지에 이끌렸다. 책도 꽤 두꺼운 편이라 뭔가 오랜만에 고전적 느낌의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 수 있겠구나란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만월지(滿月地)란, 보름달이 뜨는 매월 15일, 30일에 모습을 드러내는 연못이라해서 만월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책 속의 시대적 배경도 참 독특한데, 일단 22세기라는 시대적 설정에 신분사회가 존재한다. IT 가속화가 매일 진행되는 도시 태상과 피지배층들이 모여사는 천하로 나뉜다 태상은 또 왕남, 왕서, 왕동 세 곳으로 나뉘는데, 왕남은 양반, 왕서는 중인, 왕동은 상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월지는 바로 이 두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만월지의 역할은 (지금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 이 연못 속에 각 신분계층에 맡게 태상지역은 금화를 던지고, 천하지역은 구슬, 조개껍질, 조약돌 등을 던져서 자신이 원하는 소원, 즉 염원을 빌면 이뤄주는 곳이다. 단, 모든 사람들의 염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염원 3가지를 선택해서 들어주는데 그 선택을 하는 사람 역시 각 지역마다 둘씩 존재한다. 태상지원은 만월왕자, 천하지역은 천월왕자가 관장한다.

천민출신이지만 태상지역의 여느 과학자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과학자 벡터, 그리고 그의 연인 등불시인 매화가 소설 속 주축이 되어 등장한다. 매화는 태상지역의 양반출신이지만 가난한 양반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금화를 가져 본 적도 없고 때문에 만월지에 염원을 빌어본 적도 없다. 소설은 SF적 요소와 판타지적 요소의 경계선상에 있다 하지만, 솔직히 SF를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판타지적 요소로 치자면 작가의 상상력엔 어느 정도 표를 주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소설을 읽는 내내 조금 당혹스럽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했다. 여태껏 책을 읽으면서 처음 겪어본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경험이었달까?


무엇보다 소설 속에 의성어, 의태어, 감탄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각 캐릭터들의 멋진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성어, 의태어, 감탄사들의 잦은 등장은 책을 읽는 매 순간 흐름을 끊기게 하고, 캐릭터들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뭔가 굉장히 작위적인 오버액션 연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의 경우 책을 읽으면 책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굉장히 깊게 빠지는 편인데, (그래서 좀 힘들 때도 있다. ㅠ) 만월지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엔 쉬이 닿을 수가 없었다. 그냥 헛웃음만 나왔달까. 일례로 벡터와 매화가 연인으로 등장하는데, 모종의 이유로 벡터가 매화에게 화를 내고, 매화를 버리고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뭔가 애절하고 슬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네 본연이라 했다!!!!! 본연의!!! 양반의!!! 너의 사랑이!! 믿음이 그거야? 뭐가 부끄러운데!!! 너흰 하늘의 최상을 선택받은 지배층이다! 소녀여! 양반 소녀여!! 그깟 금화!!! 켁!!! 내가 내 능력으로!! 오로지 내 과학으로 다 거머쥐겠어!!! 양반들 니네!!!! 망해 버려!!!!"


"흑흑...벡터!..........군!!"  "꺼져!!! 비켜!!!"  "꺄아~~!!!"  "으헥~~!!!"  "앗....하핫!...네"


소설 속 대화체가 대부분 꺄악! 으헉! 으헛! 에엣? 이런식으로 나오니 뭔기 진중하게 집중할 수가 없다. 또한 캐릭터들이 어딘가로 이동할 때 꼭 문장 말미에 '다다다다닥' 이런 식의 걷는 소리까지 곁들이니 아주 죽을 맛이다. ~의라는 말도 너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본연의. 이 본연이란 말을 작가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연은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책의 표지도 좋고, 소재 자체도 참 좋았으나 이를 표현하기에 아직까지 작가의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식의 표현을 선호하는 것일지도?!  정말 참고 읽기가 너무 버거웠고 자괴감마저 느껴졌던 만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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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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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성의 <화곡>이라는 소설은 실제 지명인 화곡동에서 발생한 화재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화곡동의 '화'자가 '火'자는 아니지만 소설 전반의 주요 소재인 '불'도 연상케하는 중의적 느낌이라 작품의 제목으로써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변변한 직장은 없지만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고, 가진 것 없어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청년 형진은 그날도 화곡동 골목길을 자진해서 순찰하고 있었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손쓸 틈도 없이. 방화범에게 테러를 당한 형진은 온몸에 화상을 입고, 화곡동 일대를 불태운 화재는 동생 진아의 목숨마저 빼앗아 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진은 뒤틀린 괴물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화곡동 화재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신이 방화범을 잡고,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이 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고, 미친놈 마냥 소방차가 출동하는 날이면 뒤를 쫓았고, 경찰서, 방송국의 힘도 빌려 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좌절과 분노, 상처뿐이었다. 또한 일그러진 얼굴과 몸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신 앞을 지나가는 선량한 양떼들의 행복한 웃음을 이 손에 들린 라이터로 소멸해 버리고 싶었던가. 그렇게 형진의 내면은 예전의 선량한 자신과 화상 후 생긴 비열한 방화범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형진은 서서히 괴물이 되어갔고, 결국 술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잠식 당하도록 내버려 둔 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노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후드를 내리자 일그러진 살덩어리가 유리창에 비쳤다. 그를 보는 괴물과 마주 보며, 형진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가 정말로 잃은 것은 집도 가족도 아니었다. 방화범이 앗아간 것은 인간의 자격이었다. -34page

한때 신문사 에이스였던 기자 김정혜는 형진에 대한 정보에서 특종의 냄새를 맡고, 노숙자들을 상대로 그를 수소문한 끝에 형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형진은 그녀가 기자임을 알고 접근을 거부한다. 이에 질세라 정혜는 형진에게 술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끈질기게 그에게 다가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방화 사건이 발생하고, 형진은 본능적으로 '놈의 짓'임을 직감한다. 이 사건으로 형진과 정혜는 한 팀이 되어 활약하게 된다. 형진은 놈을 잡기 위해, 정혜는 특종을 낚기 위해. 서로의 목적은 다르지만, 이후 여러 차례 발생하는 화재 현장에서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놈을 따라 하는 또 다른 모방범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방화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어두운 정치세력과 이에 기생하는 조직폭력단이었던 것.

판이 점점 커진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형진은 방화범으로 몰리고, 정혜는 범인 은닉죄로 지명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낮에는 경찰에 쫓기고, 밤에는 조직폭력단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마는데... 형진과 정혜는 악의로 가득 찬 불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의 목적을 이루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들, 어두운 세력들을 단죄할 수 있을까?


윤재성의 <화곡>은 방화로 정신과 육체가 잠식당한 형진과 신문기자 정혜의 활약상과 캐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로에게 드세게 받아치는 대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싹트는 우정 어린 애정을 독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또한 방화, 불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한번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태워버리고 마는 뜨거운 불처럼.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몰입감을 가지고 읽어나간 소설 <화곡>이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있다. 형진의 불사조와도 같은 부활 능력이랄까? 뭐, 이는 소설 속 주인공이니 그렇다 처도 방화범이 너무 강력하게 그려진 반면, 경찰은 다소 무력하게 그려졌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결말부에선 (한국영화 대부분이 좀 그렇듯) 감성을 자극하는 신파적 요소로 마무리했다는 점?! 정도 ㅎㅎ


어째서 손을 멈췄던가. 차후 자문해봤으나 이유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술은 입에도 안 댔건만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손 때문이었나, 소나타 차창에 붙은 가족사진 탓이었나. 그 뒤로 한동안 번화가를 바라보며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소주병이 없는 날에도 라이터는 늘 주머니 속에 있었다. 사표를 챙겨 다니는 직장인처럼, 세상을 향해 장전된 그의 총탄이었다. -75page


"방화범을 잡고 동생의 원수를 갚은 다음에요. 하고 싶은 게 있어요?"

형진은 자기 잔을 내려다봤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놈을 쫓고 놈에게 분노하고, 놈과 맞서 싸우는 일만이 삶의 유일한 이유였으므로, 놈은 추방당한 세상에 그를 머물게 하는 족쇄였다. -167page


몸이 수십 갈래로 찍기는 기분이었다. 한쪽에는 철없이 선량했던 예전의 그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증오로 활활 타는 방화광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갈등하는 자신이 있었다. 산 몸도 죽은 시체도 아닌 채로, 8년 전의 적과 8년 동안의 적 중 누구를 태워야 할지 고뇌하면서. -2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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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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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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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강렬함을 선사하는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전 하나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운에 맞기는 남자, 조슈아 케인. 그는 전무후무한 연쇄살인범이자 변신의 귀재로서, 작가는 첫 장부터 범인의 정체와 잔학성을 공개한다. 그에게 있어 살인이란 ​단순한 유희가 아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명이자 소명이다. 책 서문의 문장 "악마의 가장 위대한 속임수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믿도록 한 거요."라는 말처럼 케인은 자신이 지은 죄를 목표로 할 희생양에게 덮어 씌움으로써 자신과 자신이 지은 죄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범죄의 완성을 위해 케인은 자신을 대신해 법의 심판대에 오른 희생양을 단죄하기 위해 배심원이 되는 것이다. 그 앞길에 방해가 되는 것은 냉혹하게 제거해서라도. 현재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주 정부 VS 로버트 솔로몬 형사재판은 할리우드 인기 배우인 바비(로버트 솔로몬)가 아내와 경호원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기소된 재판인데, 케인은 이 재판의 배심원이 되고자 한다.

%EC%83%89%EC%97%B0%ED%95%84무고한 사람들이 범죄로 기소되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그것에 기초하고 있다. 빌어먹게도 그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을 말할 때를 알아볼 수 있었다. 거짓말쟁이들은 갖지 못하는 표정이 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상실과 고통이 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도로 부당하는 느낌. 나는 이런 사건들을 아주 많이 겪어왔기에 그것이 눈 한구석에 드러난 불꽃처럼 춤추는 것을 거의 알아볼 수 있었다. (...) 바비 솔로몬에게는 그 표정이 있었다. -64Page

바비의 변호를 맡은 대형 로펌은 그가 무죄임을 주장하지만, 모든 정황과 증거들이 명백하게 바비가 유죄임을 가리킬 뿐 무죄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로펌은 에디 플린이라는 변호사를 차석 변호인으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에디는 한때 LA 뒷골목 사기꾼 출신 변호사로서 여느 변호사와는 달리 독특한 이력을 갖춘 인물이다. 단, 유죄가 분명해 보이는 의뢰인의 의뢰는 절대 맡지 않는다는 나름의 신념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유죄가 분명해 보이는 바비의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하지만, 바비를 직접 만난 후 그의 눈 속에 담긴 진실을 알아 본 에디는 결국 사건을 수락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대형 로펌은 바비의 사건에서 손을 떼고, 에디 홀로 남아 바비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 하나, 모두가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희생자들 주변에서 발견된 나비 모양의 지폐. 하퍼와 FBI의 도움을 받아 오래전 사건 속 희생자들에게도 나비 모양의 지폐가 발견되었었다는 걸 알게 된 에디는 이 사건이 연쇄살인사건임을 확신한다. 지폐 속 범인의 표식과 그 의미, 희생자들 사이의 연관성 등 사건을 추적해 갈수록 진실에 다가가는 에디 플린.

%EC%83%89%EC%97%B0%ED%95%84나는 씻고 면도하고 나서 옷을 차려입었다. 미국의 국새 생각뿐이었다. 달러의 표식들. 화살. 올리브 잎. 별. 달러당 세 개의 표식. 살인당 세 개의 표식. 그리고 칼의 입속 나비 지폐의 지문. 대체 경찰은 어떻게 그 지폐가 인쇄되기도 훨씬 전에 이미 죽어버린 리처드 페나의 DNA를 그 지폐에 심었을까? -222Page

 

 

이 모든 것들을 배심원석에서 지켜보는 한 남자 케인오랫동안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해 왔던 그의 완벽한 범죄행각은 늘 그래왔듯이 순풍에 돛 단듯 순항해 왔으나 에디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이 둘의 두뇌싸움은 더욱더 치열해진다.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은 법정 스릴러 소설인 만큼 검사 측과 변호인 측의 법정싸움을 지켜보는 재미, 희대의 연쇄살인마이자 치명적일 만큼 뛰어난 두뇌를 소유한 조슈아 케인이라는 인물과 독특한 이력의 사기꾼 출신 변호사 에디 플린의 두뇌싸움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케인에게 희생당한 희생자들의 죽음 직전의 그 두려움,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생각하느라 책을 읽는 내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힘들기도 했다. 그만큼 몰입감이 엄청나다는 것!!!! 다만 책의 번역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맥락들이 좀 있었던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그래서 별 하나를 뺐다. 다른 리뷰어들의 후기를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던 듯싶다. 번역이 조금 아쉬웠지만, 작품 자체는 정말 매력적이다. 전 세계 거장들이 극찬할 만큼!


%EC%83%89%EC%97%B0%ED%95%84나는 네 이름을 알아. 네가 한 짓을 알아.

잠깐 케인은 가면이 벗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이 이러한 생각들에 휩쓸렸을 때 그의 소극적인 표정, 개방적이고 중립적인 몸짓이 한순간 바뀌었다. 그는 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심원단에서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피고 측 변호인을 보았다. 플린 역시 알아차린 것 같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케인은 알았다.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과거사에 대한 기억이나 향수에서 오는 가벼운 기쁨의 전율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였다. 두려움. (...) 배심원 컨설턴트, 아널드가 케인을 열심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뭔가를 봤다. 그의 진짜 얼굴을 봤다. -281Page


%EC%83%89%EC%97%B0%ED%95%84동전을 던졌다. 삶과 죽음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운명 자체가 순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됐다. 케인은 동전이 어떤 면으로 내려앉건 신중할 것이다. 그 불확실성이 케인을 흥분시켰다. 뱃속 깊숙이 느낄 수 있었다. -341Page


%EC%83%89%EC%97%B0%ED%95%84나는 속이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여기에 패턴이 있었다. 기본 미끼와 스위치. 희생자들은 살해되었다. 다른 주에서 다른 수법으로. 달러가 심어졌다. 그리고 경찰은 놓쳤다. 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나비 지폐에서 그 표식을 보았고 뉴욕 경찰과 똑같이 그것들을 무시했다. 우리 모두 그랬다. 델라니만 빼고 모두가. -36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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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UP 트레이닝 틀린 그림 찾기 : 네이처 두뇌 UP 레시피 퍼즐북 12
달곰미디어 콘텐츠연구소 지음 / 달곰미디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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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두뇌 UP 트레이닝 틀린 그림 찾기 3종 세트 중 <네이처> 편을 만나 보았다. 총 50가지 동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틀린 그림을 찾는 재미도 있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틀린 그림 찾기는 평소 휴대폰 게임으로도 즐겨 했었는데, 장시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눈도 피로해지고, 뻑뻑해진다. 그러나 두뇌 UP 트레이닝 틀린 그림 찾기는 디지털 기기가 아닌 책으로 즐길 수 있기에 눈의 피로도가 훨씬 덜 하다. 역시 책이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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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우 그림을 비교해 가면서 총 15군데 틀린 그림을 찾는 것인데 깊이 빠져들다 보면 집중력도 향상되고 두뇌 힘도 키울 수 있겠다. 신랑과 함께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골라서 누가 먼저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지 내기도 했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오늘 설거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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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UP 트레이닝 틀린 그림 찾기의 큰 특징 틀린 그림만 찾는 것이 아니라, 각 페이지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식물에 대한 정보들이 하단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틀린 그림도 찾고, 위대한 자연 속 동식물들도 감상하고, 관련 정보도 알게 되는! 그야말로 일석삼조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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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페이지에는 틀린 그림 찾기에 대한 정답지가 수록되어 있다. 다 찾아보고 제대로 찾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고,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들은 정답을 통해 알아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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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는 좌, 우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틀린 그림을 찾았는데 신랑은 일명 사팔이(?!) = 매직아이를 시전해 틀린 그림을 찾았다. 나보다 확실히 찾는 속도가 빨랐다. 방법을 물어보니 매직아이 시전시 좌, 우 그림이 겹치면서 서로 어긋난 부분, 즉 틀린 그림들이 '반짝반짝'한다는 것이다. 나도 해봤는데 당최 눈만 아프지 안 되더라. 이것도 실력인가 보다. 시무룩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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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아이 시전 후 15개의 틀린 그림을 다 찾은 신랑. 다만 조금 헷갈리니 펜으로 표시를 해야겠단다. 나는 나중에 우리 아들이 크면 아들과 함께 할 거니~ 책을 더럽히지 말라 했더니 살짝 삐쳤는지, 그러면 카멜레온 이 페이지만 표시를 하겠단다. 결국 관대한 마음으로 허락 한 나! 이렇게 오늘 하루, 두뇌 UP 트레이닝 틀린 그림 찾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아이와 함께 누구와 하든 부담없이 즐길 수 있기에 강력 추천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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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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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비극은 그 화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하루카와 사촌 루시아는 함께 지내며 '피아니스트'라는 같은 꿈을 꾼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날, 하루카와 사촌 루시아는 별채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잠이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전 세계 누구라도 세상의 온갖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있다는 걸 아느냐? 그건 말이다, 이길 때까지 멈추지 않는 거다. (...) 대체로 계속 싸우다 보면 승기가 찾아오는 법이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서면 언젠가 반드시 이긴다. 아니, 이길 때까지 패배도 절대로 없지. 패배는 싸움을 멈췄을 때 오는 거란다. 그만두고 싶어 하는 스스로에게 졌을 때 온단다. 아니, 모든 싸움은 결국 나약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 (...) 그런데도 만약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으면.... 그때는 여기로 돌아오너라. 여기 할아비가 있단다.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 속에서 눈을 뜬 하루카. 온 집안은 이미 화마로 뒤덮였고 이날의 사고로 사랑했던 사람들, 할아버지와 사촌 루시아를 잃었다. 다행히 하루카 자신은 목숨은 건졌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은 처참히 망가졌다. 하루카에게 남은 것이라곤 신체 대부분의 피부이식과 고통스러운 재활훈련의 나날들뿐이었다. 그, 미사키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어쨌든, 충분히 애도할 틈도 없이 하루카에게 생전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막대한 유산이 남겨졌다는 사실을 하루카와 가족들은 변호사를 통해 듣게 된다. 단, 하루카가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갔을 때만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지만...

이후, 하루카는 미사키를 만나 다시, 처음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다. 제대로 굽어지지 않는 손가락, 내 마음과 달리 따로 노는 손가락. 사고가 나기 전엔 이 모든 일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너무나 벅차고 힘들다.

 

 

몸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 장애를 지닌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데도 못 본 척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반 도로가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얼마나 배려 없는 곳인지도. -159page

 

한때는 법조계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하루카의 피아노 레슨을 담당하고 있는 미사키. 하루카는 미사키를 통해 예전에 갖추었던 피아노 실력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더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암흑과도 같았던 터널 속 한 줄기 빛처럼, 음악의 광명으로 이끌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미사키였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절망은 옅어지고, 희망은 짙어져 간다. 그리고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 콩쿠르를 목표로 하루카는 연습에 더욱더 매진해 간다. 문득, 헬렌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내 삶에도 이런 스승 한 분쯤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뭐 그런 생각도 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그렇게 미사키와 하루카의 피아노 레슨이 거듭되는 가운데, 누군가 하루카를 노리는 듯한 사건이 잇다라 발생한다.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했던가? 화마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하루카에게 닥쳐온 잇단 사건, 사고들. 혹 누군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하루카를 노리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미사키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루카가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주고, 그 자신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안녕, 드뷔시>는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을 피아노를 매개로 극복하는 하루카의 모습과 가까이서 그녀를 돕는 미사키의 이야기가 큰 줄기가 된다. 당연히 그 속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타듯 책상 위를 굴러다녔다. 머릿속에서는 피아노 선율이 떠다녔고, 마치 콘서트홀에서 직접 음악을 듣고 있는 한 사람의 청중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의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와 타고난(?), 섬세한 묘사력이 바탕이 된 덕분일 것이다.

중간중간 책 읽기를 멈추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을 찾아서 듣기도 했다. 실로 독서와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녕, 드뷔시>는 리커버 개정판으로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책인데, 예전에도 이 작품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다. 다만 기회가 되지 않아 읽지를 못했다가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는데, 책 띠의 문구처럼 <반전의 제왕>이 선보이는...라는 말처럼 이 책의 반전이 무엇일까? 내내로 기대하며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에선 뭐야?라는 허탈감이 나올 만큼 허무했는데, 그게 반전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반전은 조금 후에 맛보게 되었는데, 정말 상상도 못한 반전이라 책을 덮는 순간까지 소름이 오소소!!


덧) 앞으로도 <미사키 요스케 음악 시리즈>는 죽~ 출간이 될 것 같은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어둠을 떨쳐라.

일어나 싸워라.

마음이 동한 이유는 그것이 미사키 씨 자신의 말이기 때문이다. 미사키 씨 자신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길 원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행이나 타고난 나약함 때문에 좌절하곤 한다. 그럴 때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해주는 건 바로 옆에서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자신처럼 나약하지만 의지의 힘으로 극복하려 발버둥 치는 인간의 뜨거운 손길이다. 미사키 씨의 음악이야말로 그 손길일지도 모른다. -288page

나는 무기를 내팽개치고 전쟁터에서 도망치려 한 패잔병이었다. 도망치는 건 확실히 편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편하게 지내면서 얻을 수 있는 건 게으름과 죽을 때까지의 시간밖에 없다. 모든 싸움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296page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공격에 노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이 비난하는 쪽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잔학함을 정의감으로 둔갑시켜 자기 내면에 있는 악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올바른 인간이라고 믿는 것,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악의가 아닌가. -3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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