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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평점 :
언젠가부터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의 뉘앙스를 품는 말이 되었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이자 가장 부강한 자본주의 국가가 된 후, 미국의 그 주체하기 힘든 힘이 거들먹거림 또는 횡포로 변질되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였을 것이다. 나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인간 욕망의 게걸스러우면서 추악한 극단에 대한 상징이다. 무한한 황금과 권력에 대한 꿈. 제러미 리프킨은 이런 아메리칸 드림의 부정적인 측면을 '죽음 본능'이라는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압축하여 보여준다.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 죽음 본능에 갇혀 있다. 미국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들은 과도하게 소비하며, 모든 욕구를 채우려 하고, 지구의 자원을 낭비한다. 미국인들은 무제한적 경제 성장을 중시하며, 강한 자에게 혜택을 주고, 약한 자에게 불리함을 준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자신이 원하고 또 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선택받은 국민'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지구의 자원을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서글프게도 미국인들의 개인적인 이익 추구는 점차 순전한 이기심으로 변해 가고 있다. 미국이 어느덧 죽음의 문화가 된 것이다."
미국인인 지은이는 추악한 괴물이 된 아메리칸 드림을 대체할 새로운 인류의 꿈을 유러피언 드림이라 칭하며, 놀랍게도 이미 한물 간 땅이라 생각하기 쉬운 유럽을 그 꿈이 자라고 영그는 가나안 땅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미주의 기술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한 책임급 엔지니어는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마치 돈키호테라도 보는 듯 시대를 착오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싼 돈주고 책을 읽고 있는 나역시, 초반부를 읽으며 이 책에 대해 마찬가지 느낌에 빠졌으니 오죽하랴.
그러나 60년대 피끓는 운동권이었던 지은이와 68혁명때의 신좌파의 꿈에 공감하고 그 꿈이 이뤄지기를 갈망하는 나에게, 신좌파적인 진보 의제가 가장 앞서 실천되어 가고 있는 땅인 유럽에 희망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 이유는 유럽이 EU 회원국 가입을 위해 "사형 제도 폐지를 필수 요건으로 내걸"고 있고, "돼지 사육 농민들에게 모든 돼지를 하루 20초씩 손으로 만져 주고, 서로 싸우지 않도록 두세 개의 장난감을 우리에 넣어 주도록 권장"하는 정부(독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EU가 "지구 환경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정치적 비전의 핵심으로 강조하는 최초의 정치 체제"인 동시에, "과학과 기술의 혁신, 그리고 시장, 사회, 환경에 신상품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규제 수단으로 '예방 원칙'을 사용한다는 법령을 채택"한 최초의 정치 체제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유럽 정치의 진보적 측면의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이 책은 이와 같이 유럽 정치의 진보성을 나타내는 무수한 예들로 가득하다. 나름 우리나라에서는 꽤 진보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생소하게 여겨지는 개념들, 이를테면 보편적 인권 개념의 확장으로서의 '자연의 권리'처럼,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개념들이 심심챦게 등장한다. 리프킨은 이렇듯 유럽 정치의 진보성을 풍부하게 예시하면서, 이것이 인류를 바람직한 미래로 이끄는 차세대 꿈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문제는 가능성이다. 2006년 현재의 세계를 둘러 보자. 미국은 '죽음 본능'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정권을 잡고 세계를 상대로 아메리칸 악몽의 유희를 벌이고 있다. 중국은 초기 자본주의화되어 가고 있으며, 일본은 최악의 극우 총리가 정권을 잡았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내전과 굶주림의 나락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며, 유럽마저 우익이 점차로 목소리를 높여 간다. 세계적인 우향우의 흐름을 힘겹게 홀로 되돌리고 있는 남미는 아쉽게도 힘이 별로 없으며, 너무 민족주의적이다. 진보의 꿈으로서의 유러피언 드림은 확산이 아니라 고사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래서 유러피언 '드림'인가?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 세력은 언제나 지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어찌보면 꿈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응시가 있었기에 인류는 이 책에서 선보인 바와 같은 진보의 신천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리프킨은 예언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같지만, 그 희망이 지평선 너머의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그 희망어린 시선은 예언과도 같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꽂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6년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 보자. 우리는 지금 아메리칸 드림으로, '죽음 본능'으로 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러피언 드림을 주장한다면 돈키호테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하늘을 나르고,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이 점점 작아지기만 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하게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