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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색을 먹자
윤동혁 지음 / 거름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옆집 아저씨같이 수더분하고 넉넉한 인상의 저자가 막걸리 한잔 나누며 두런두런 담소하듯이 채소와 과일에 숨어 있는 천연 색소의 효능을 써내려갔다. 알팔파, 파프리카, 브로콜리, 파슬리 등 요즘 들어서야 존재감이 드러나고 있는 서양 채소도 있지만, 감자, 호박, 깻잎, 우엉 등 구수한 된장 냄새 풍기는 우리네 채소들이 주인공이라 더욱 더 푸근하다. 하지만, 꼼꼼히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암 걸리지 않으려면 채소나 과일 위주로 먹어라.'고 은근스레 저자가 협박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상 좋은 젊은이들 말만 믿고 공짜관광이라고 따라갔다가 어깨들 등쌀에 쓸 데 없는 약 한아름 사오시는 어리숙한 어르신이라도 된 느낌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식습관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철없을 때에는 물보다도 더 많이 마시던 콜라였지만, 간혹 치킨에 따라오는 콜라가 몇 달씩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기도 하고, 왜 먹는지 궁금하기만 하던 채소 샐러드나 겉저리가 이제는 나의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입이 원하는 음식에서 몸이 원하는 음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몸이 원하는 음식에 스스로 가까워지자 입도 그것을 원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나의 이러한 식습관의 변화에 다채로운 색깔을 추가함으로써 '몸이 원하는 음식은 눈은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박살내고 몸이 원하는 음식은 입도 원하고 눈도 원하게 된다고 역설한다. 매 쪽마다 삽입되어 있는 갖가지 색깔의 채소와 과일의 사진은 얼마나 식욕을 당기는지!
아쉬운 점이 조금 있다. 저자도 인정하듯이 암 예방에 너무 촛점을 맞추었다는 점. 책 제목에서 선명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던 주제의식이 채소나 과일의 백화점식 나열에 묻혀 색이 바랜 면이 있다는 점. 그러니까, 채소나 과일의 종류별로 설명하기 보다는, 특정 색소에 촛점을 맞춰 그 색소를 포함하는 식물과 그 효능에 대해 설명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우둔한 까닭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도 어떤 색소가 언급되었는지 전혀 정리가 되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는 이전보다 채소나 과일을 더욱 많이 먹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무척 고마운 책이다. 좀 오바를 하자면, 언젠가 '나를 살린 책들'에 이 책을 꼽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