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시큼해져 간다면 발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시간의 섣부른 종종걸음에 치이다가 짜투리 시간에 쪼그리고 앉아 시금털털한 공간을 맛보며 상념에 젖는다. 혼자 채우고 앉아 아무런 물결도 일어나지 않는 휑한 공간.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무의미한 독존의 세계. 이런 곳에서 곰팡이처럼 우두커니 앉아 공간을 발효시킨다. 홀아비 냄새나는 퀘퀘한 묵은지로 변한 공간은 그래서 더욱 깊이 알싸하게 혀를 쏘아댄다.
싱그럽고 아삭아삭한 공기가 그립다. 마요네즈를 바르지 않아도 전혀 비리지 않은 파릇한 채소처럼 푸릇한 공간. 가까이 가기만 해도 청량한 풀내음이 코를 감싸고 돌아서 시냅스가 즐거운 전류를 찌릿찌릿 외쳐대는 건강한 마약,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그립다. 미묘한 감정의 편린들을 서로 나누며 포지티브 또는 네거티브 피드백을 공유하면서 풍요로와지는 '삶'.
그러나 이미 내 공간은 시큼해져 있다. 숙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봄나물처럼 활기어린 삶의 뜀박질은 없다. 고요하게 침잠할 뿐. 단전에서의 깊은 숨쉬는 소리만이 보다 더 깊은 숙성을 향한 느릿한 리듬을 이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