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인 연합 http://www.scieng.net 에서...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지난 5월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의 업적을 축하하는 논평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의 윤리적 논란과 관련하여 논평을 취소하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으나 과학적 업적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뒤늦게 터진 윤리 논란에 의해 취소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언론과 대중의 지나친 관심과 장미빛 기대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가 그동안 이루어 낸 과학적 발전은 순수 및 기초과학의 체력이 허약한 우리나라에서 단연 돋보이는 세계적 업적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먼저, 연구에 정진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의 전국가적, 심지어 세계적 논란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사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황우석 교수에게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위한 경쟁에는 국경이 없으며 과학기술이야말로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이 통용되는 분야이다. 온 국민을 들뜨게 만든 황우석 교수의 쾌거도 science지라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가 주목한 업적이라는 평가 덕분이었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경로와 연구환경은 국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구미 선진국에 비해 쉽게 다량의 난자를 구하고, 국민적 지지 속에 현행법과 정부 정책에 반하지 않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후발추격국으로서 우리나라의 국가혁신체계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발전경로와 연구환경이 국가간에 다를 수 있다고 하여, 연구활동과 경쟁의 규칙, 과학기술과 사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의 상호관계, 인류의 복리 증진을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불문율까지 다른 것은 아니다. 이는 전세계 과학기술인의 마음과 정신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며, 언론에 회자되는 '헬싱키 선언'과 같이 굳이 성문화되어 있어야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연구 성과를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구활동의 과정과 수단, 그리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논점에 있어서도 전세계 연구자들의 공감대와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 과학기술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필수적이며, 하물며 생명윤리와 관련한 수많은 논란이 존재하고 일부 선진국에서는 연구 자체를 금기시하는 인간 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수행할 때에는 더더욱 일말의 티끌도 없도록 했어야 한다. 아니, 일부러 노력하여 윤리적 하자가 없는 연구 수행을 한다기보다, 세계 일등의 연구팀으로서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당연히 체화되어 있었어야 하는 '기본'인 것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와 난자 관련 사태의 본질은 서구 윤리와 동양 윤리의 충돌도 아니고, 미국과 한국의 줄기세포 헤게모니 싸움도 아니고, 종교적 믿음의 문제도, 연구원 착취의 문제도 아니다. 바로 현대화, 선진화되지 못한 채 걸음마만 떼고 바로 달려나가려는 우리나라 연구현장과 연구문화의 문제가 사태의 본질이다. 이에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이번 사태로 인한 논란이 길지 않기를 바라되, 이를 계기로 연구현장, 연구문화의 선진화의 기틀을 잡아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덧붙여,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몇 가지 쟁점에 대해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첫째,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에 대한 것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와 관련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그것이 연구 과정이나 관련된 주변 상황에 대한 것일지라도 용납될 수 없다. 과학자가 신뢰를 잃는다면 그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황교수는 여러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이미 모든 국민과 전세계의 동료 과학기술인들을 기만하였으며, 여성 연구원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기인연합은 과학자로서 그의 거짓말, 또 그러한 거짓말을 이끌어낸 상황에 대해 황교수에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연구원의 난자 기증에 대한 것이다. 전술했듯이, 헬싱키 선언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믿음을 모아 표현한 것으로, 황교수가 헬싱키 선언을 인지했는지 여부는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성과 위주의 연구 문화, 대학원생이 연구의 주체로 여겨지지 않고 일개 '일손'으로 여겨지는 집단주의식 연구실 문화,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로서 수단을 불문하고 개인의 영웅적 희생을 강요하는 풍토가 연구원의 난자 기증이라는 상상키 어려운 사건을 만든 것이다. 과기인연합은 난자를 기증한 연구원 개개인을 욕할 의도는 없으나, 연구원의 난자 기증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사건으로 규정한다.

셋째, 매매된 난자의 사용에 대한 것이다. 매매된 난자의 사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국내 의료계 일부의, 여성과 환자의 인권에 대한 후진적 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또한 낙태 문제를 비롯하여 장기매매, 난자매매 등의 보건 분야에서 유독 법과 제도가 미비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는 해당 연구의 총책임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난자를 제공-기증 또는 매매-한 여성들에게 수차례 감사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했고, 또 매매된 난자의 사용에 대한 최종적 책임을 지겠다는 대국민 사과를 했으므로, 과학기술인들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것이다.


과기인연합은 이번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오히려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게 윤리 문제에 대한 백신을 투여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연구 과정의 투명성과 수준 높은 연구문화를 몸소 정착시키는 선구 연구진이 되기를 기원한다. 특히, 그동안 언론과 대중의 지나친 관심과 정관계의 애정공세로 인해 뛰어난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력을 잠식한 면이 없지 않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각종 겸직에서 사퇴하는만큼, 새로운 각오로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과 대중도 이번 일을 계기로 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냉철하고 합리적인 태도를 학습하여, 과학기술 연구가 몹시 복합적이고 장기적이라는 점과, 단순한 기술 수용자가 아닌 과학기술과 상호작용하는 시민사회로서의 책임의식을 지니게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감정적 대응이나 무조건적 지지, 지나친 기대는 삼가야 한다. 일각의 난자 기증 운동은 사회적 수용성을 검증하기까지 자중하기를 촉구한다. PD수첩 광고 철회 운동이나 촛불시위 등 국민들의 과학기술발전에 대한 염원이 비이성적 군중행동으로 변질하는 것을 보며 과학기술인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만으로는 과학기술 발전을 이룰 수 없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황교수 연구팀의 성과와 정진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연구는 실용화를 예단할 수 없는 단계임을 인식해야 하며, 과학기술인을 비롯한 사회각계의 어느 의견도 배척되지 않는 성숙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기인연합은 이번 사태가 과학기술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왜곡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과학기술 발전과 과학기술인의 기본권에 반하는 어떠한 행동도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또한 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 이번 사태로 국내 줄기세포 연구가 위축되어선 안되며, 오히려 줄기세포의 제어와 적용에 대한 연구의 저변이 확대되고, 줄기세포 분야 이외에는 아직 척박한 국내 생명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이 견인되기를 기원한다. 사회와 윤리에 대한 고려가 과학기술 연구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만천하가 인지하게 된 만큼, 향후 법적 제도적 정비와 정책적 지원이 성과 도출 중심의 밀어붙이기식이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잡는 방향으로 형성되기를 바라며,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현장 과학기술인의 모임으로서 견제 또는 지원, 그리고 참여를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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