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8.09 */

뜨거운 공기를 뚫고 산뜻할 정도의 기화열을 발산하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궤적에는 상쾌함이 남아서 한 여름밤의 열기를 달래 주었지만,

바지에서 여정을 마친 빗방울들은 그와는 반대로 축축하고 눅눅한 불쾌감만을 남길 뿐이었다.

 

우산을 접고 집으로 가는 퇴근버스에 올랐다.

회사의 퇴근버스는 대부분 45인승 관광버스로, 맨뒷자리를 제외하고는 좌우로 두 개씩의 좌석이 놓여 있다.

극도로 마른 체형이 아니고서야 관광버스의 좌석 하나의 크기가 1인분이 아니고 실제로는 0.8인분,

최대로 잡아봐야 0.9인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다리를 쭉 펴고 팔은 팔짱을 통해 몸 안쪽으로 우겨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옆자리에 다른 성인 남자가 앉게 되면 필히 신체의 어느 부분인가가 (대부분 팔이나 옆구리겠지만)

닿기 마련이다.

같은 회사에 다닐 뿐 전혀 모르는 남자와 신체 한 부위를 맞닿은 채로 30분 넘게 꼼짝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은

꽤 오랜 시간동안 겪어와서 무덤덤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버스에 올라타고는 먹이를 찾는 매처럼 직감적으로 빈 좌석을 찾아 보았다.

나에게는 내 나름대로의 빈 좌석을 찾는 알고리즘이 있다.

 

1. 연달아 두 좌석이 모두 비어 있는 자리를 찾는다.

   그 수효가 여럿이면 최대한 뒷자리를 찾는다. (단, 맨뒷자리는 우선순위에서 마지막으로 한다.)

2. 연달아 비어 있는 두 좌석이 없을 경우, 복도쪽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찾는다.

   복도쪽으로 비어 있는 자리 중 창쪽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남자인 쪽을 우선 선택한다.

3. 복도쪽으로 비어 있는 자리가 없는 경우 창쪽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찾는다.

   창쪽으로 비어 있는 자리 중 복도쪽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남자인 쪽을 우선 선택한다.

4. 창쪽으로도 비어 있는 자리가 없는 경우, 서서 간다.

 

어제는 2.에서 나의 알고리즘은 진행을 멈추었다. 사실, 3.이나 4.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리를 잡은 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우산을 대충 말아서 앞좌석에 달려 있는 그물망에 넣었다.

그 와중에 많은 양의 빗물이 내 바지를 적셨으며, 그물망에 넣어진 우산에서도 계속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다리에 막혀, 버스에 흔들릴 때마다 하늘거리는 젖은 우산을

나의 다리는 피할 수 없었다.

젖은 날, 끈적거리는 몸에 러닝셔츠가 딱 달라붙은 것이 느껴지는 상태로, 젖은 우산을 피해 다리를 벌릴 수 없는,

그러면서도 몸을 까딱거릴 수도 없는 이 난국이란...

 

이 때, 팔자 좋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대부분 창쪽 자리는 비워 놓고 복도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서,

나의 자리잡기 알고리즘에도 드러나듯이, 창쪽 빈 자리는 제일 나중에 채워진다는 사실에 득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다리는 적당히 편안한 각도로 벌려져 있고,

우산은 빈 자리의 그물망에, 또는 아예 빈 자리의 좌석위에 놓여 있었다.

꽉찬 좌석에서 벌어지는 '앉아있음'의 치열함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들에게는 부르주아의 기름낀 넉넉함이 넘쳤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좌석버스의 착석은 창쪽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에티켓 쯤은 모르겠다는 듯이

'창쪽 자리로 들어올테면 들어와 보시지'라는 표정을 한 채

통행세 징수원이라도 되는 양 다리를 바리케이트삼아 창쪽 자리를 가로막고는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들은 아마도 꼭 막히는 고속도로에서는 갓길 운전을 일삼을 것이며,

점심시간 길게 늘어서 있는 짬줄의 중간을 유유히 파고 들어가 새치기하곤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남의 불편은 나의 안락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좁은 이코노미 클래스의 고통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퍼스트 클래스의 안락함이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결국 작은 공간 버스는 이기주의자들의 천국이 된다.

 

아,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작은 공간 버스에서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다.

지구위나 천체 사이에서나 같은 우주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좁은 버스나 드넓은 세계나 같은 인간관계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주의자가 보통사람들보다 두 배나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통계물리학의 진리처럼 보편적인 현상이다.

단지, 버스에서의 이기주의자들이 세상에서는 처세에 능한 자들로 불리우는 것이 다른 점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다른 점은 또 있다.

나의 모든 불평에도 불구하고 버스안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공간이다.

버스안의 좌석점유가 포화상태에 이른 연후에야 비로소 못가진 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버스의 이기주의자들은 다른 빈 자리가 전혀 없을 경우에는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기주의자들은 못가진 자들이 넘쳐나고 있어도 자신의 빈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없다.

이것은 마치 버스 승객이 자신의 옆에 있는 빈 자리를 온몸으로 감싸 안으며

'이 자리는 내것이니 아무에게도 줄 수 없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세상의 이기주의자들은 서서 가는 승객으로 버스가 가득할 때조차

이상하게도 자신의 옆자리에 대한 소유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들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인다.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마저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이쯤되면 하나의 법칙이 도출될 수 있다.

버스나 세상이나 이기주의자들이 잉여를 갖게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버스의 통계역학에서는 포화이후에 결핍이 등장하는데 반하여

세상의 통계역학에서는 포화상태가 절대로 달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통계역학은 열평형상태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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