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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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은 무엇인가? 왜 <천의 고원>이란 책에 대한 해설서(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규정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차적으로는 해설서가 맞다.)의 이름이 <노마디즘>인가? 그 힌트는 '천의 고원을 넘나드는 유쾌한 철학적 유목' 이란 부제에 있다. 즉, <천의 고원>에서 펼쳐지는 여러 철학적 고원들을 '유목주의(노마디즘이란 말은 번역하면 유목주의에 해당한다)'적인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적 고원'은 뭐고, '유목주의'는 또 뭔가? 그에 대하여 들뢰즈와 저자 이진경이 의도했던 충분한 대답을 하기에는 '이 글의 여백이 너무 모자란다' 또는 '내 능력이 충분치 않다'.

책을 읽고 나면 동의할 것이다. 이 책은 낯설고 심오하며 괴이하기까지 한 무수한 개념들의 '리좀'임을. ('리좀'이 뭐냐고? @_@) '탈지층화', '추상기계', '기관 없는 신체', '탈영토화', '일관성의 구도', '지각-불가능하게-되기', '리토르넬로', '전쟁기계', '포획장치', '매끄러운 공간 및 홈 패인 공간' 등등... 들뢰즈와 가타리가 우리를 한가운데에 던져 놓는 여러 고원에는 이처럼 묘한 개념들이 외계 행성의 동물원처럼 기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개념들의 홍수에 매몰될 걱정은 그리 많이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지은이가 1500여 페이지에 걸쳐 그 하나하나를 세심하고도 다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수 차례 거듭되는 복습을 통해서, 때로는 '동사사독'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통해서...

이 책은 '수유 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에서 열린 '노마디즘 세미나'에서 지은이가 직접 강의했던 내용을 두 권으로 편집해 펴 낸 것이다. 그런 만큼, 지은이가 바로 앞에서 설명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고 구어체에 가까운 쉬운 문체가 특색이다. 하지만 지그재그를 그리며 술술 아래로 내려가던 시선이 가끔 암초를 만난 듯 지리하게 한 곳에 멈추어 버릴 때가 있는데, 다름아니라 <천의 고원>을 인용할 때이다. 무척 짜증날 만큼 난해한 원전의 단락에 걸려서 한참을 힘겹게 사유하다가, 이해하기를 포기하거나 이해를 잠시 보류한 후에 지은이의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새 머리속의 고정관념들과 톱니가 어긋난 채로 이질적으로 존재하던 들뢰즈의 언어가 '매끈한' 도가니에서 창조적인 '클리나멘'을 유지한 채로 섞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이해인지 지은이의 솜씨좋은 최면술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지적인 감응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분명히 유쾌한 일이다.

<노마디즘>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전자인간은 <천의 고원>에의 도전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는 만용을 얻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전자인간같은 독자를 들뢰즈의 세계로,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세계로 한 발 디디게 한 것은 그 자체로도 비싼 값(정가로는 두 권 합쳐서 56000원)에 값하고도 남는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그러나 지은이가 밝혔듯이, 읽는 사람들의 사유방식, 행동방식에 근원적인 감응을 불러 일으키는 '책-기계'로 작용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쓰임새다. 특히 그는 12장과 13장 등 정치적인 함의가 농후한 고원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등의 책을 통해 맑스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전도사 역할을 해 왔던 지은이의 이력에서 볼 때 당연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이다. 90년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을 거치면서 현실적 한계를 드러낸 맑스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코뮨주의 (commune-ism)'에의 돌파구 중 하나를 그는 들뢰즈에서 찾은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모든 고원들은 그 하나하나가 '리좀'의 일부로서 '탈주'를 자극하는 고원-기계로 볼 수 있겠지만, '운동권 출신' 저자의 속내와 아마도 들뢰즈, 가타리의 의도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향한 '잰쟁기계'를 생성하는 창조적 감응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천의 고원>의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자본주의와 분열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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