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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검은 피 ㅣ 세계사 시인선 53
허연 지음 / 세계사 / 199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허연은 그렇게 널리 알려진 시인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그는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허연을 좋아한다. 그는 詩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통해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의 저항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비단,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나 '전쟁기념비'에서의 저항을 말하는 것을 넘어선다. 물론, 그 시들도 수작 이상이다. '죽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런 영화관엘 가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낮은 목소리는, 집회를 열어 큰 목소리로 자신의 요구조건을 주장하는 어느 사람들보다, 더 힘있고 설득력이 있다.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그의 알 수 없는 저항, 혹은 저항을 넘어선 목소리는 '悲歌'를 거쳐, 일련의 추모시들로 증폭된다. 익명의 K부터, 권진규·구상·손상기·오윤에 이르기까지, 그는 하나의 슬픈 울림을 만들어낸다. 차라리 낮은 절규, 읊조리는 혼잣말처럼. 이 일련의 詩들 중에서 난 개인적으로 '無伴奏'를 가장 좋아한다. 요절한 작곡가 에릭 사티에 대한 추모시인데, 거기에는 간결하게 절제된 그에 대한 위로가 보인다. 허연은 그렇게 자신의 슬픔을, 꼭꼭 담아눌러 낮게낮게 하지만 또렷하게 발음한다. 당신들이 그들에 대해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있냐고! 빛을 피해 걸어가며, 음지에서 울음을 삼켰던 예술가들에 대해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있냐고!
그래서 허연은 그렇게 권진규의 장례식을 그렸고, 손상기는 곱추가 아니라고 웅변한다. 그들은 비록 외로웠지만, 사람들을 사랑했으므로 그리고 가난했으므로.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에게 희망을 노래해준 그들에게, 우리는 손가락질을 결코 할 수 없다고. 그런 시인들을 따라 그의 세상도 천국이 아니다. 그는 힘들게 조금씩 세상을 포월해가고 있다. 기어서 넘어서, 저지대에 흐르는 희망이 되려고 한다. 마치 예술가 협회의 보이지 않는 노조위원장처럼, 허연은 쓸쓸하게 사라져간 예술가들을 반추해내며, 자신의 詩들을 조명해낸다. 그런 시인에게 내가 돌려줄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슬픔'을 기억하는 것일 뿐. 그래서 난 그의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쓴다. 허연은 언제나 急流처럼 되돌아온다 했기 때문에. 그 한마디로 난 당신의 시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