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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몽상
이진경 / 푸른숲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마디로 난 수학을 못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렇게 규정지어 버린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난 누구보다 수학적인 사고를 좋아하지만, 수학문제를 잘 풀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은 항상 나를 괴롭혔고, 어떤 인지적 조화를 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나에게 하나의 후원자가 되어준 책이 '수학의 몽상'이었다.
이진경씨는, 내가 그의 저작들을 꽤 읽어본 것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결코 수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수학에 대한 새로운 서술방식은 무척 흥미롭다. 예컨데, 표면적은 무한대지만, 부피는 9인 멩거의 스폰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는 독자에게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새롭게 가져보라고 권유하는 방식으로, 수학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가 독자들에게 주어졌을 때, 이 책을 적어도 자신의 의지로 구입한 독자라면 생각해보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학이 하나의 과정으로서,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당대의 패러다임으로서 그 계산가능한 공간이 변형되는 것을 수학사를 통해 명쾌하게 보여주는 방식은 수학과 학생들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수학을 매우 잘하는 수학과 학생도 이러한 미적분의 역사나 이중긍정의 논리(139쪽)에 대해서 쉽게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기하학에서 대수학으로 발전되는 수학의 방향, 그리고 그 둘이 각각 보편수학과 해석학으로 갈라졌지만, 보편수학은 수학의 담론에 편입되지 못한 상황들을 알면서 지적인 쾌락을 느꼈다. 특히 이중긍정의 논리를 통해 데카르트의 악신의 가설을 풀어보려는 저자의 시도는 특히 흥미로웠다. 철학에 관한한 전문가인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는 단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책이 고등학교 교재로 쓰인다면 어떨까?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수학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많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적어도, 수학을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대학입시를 위해 배워야 하는 도구로서만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나의 바램이 실현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많은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 나와 같이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빨리 접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