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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 -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1997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인물과 사상>을 즐겨 읽는다. (월간 '인물과 사상'도 있지만 그것은 별로 읽지 못했다) 적어도 그것은 한겨례 신문과 여타의 중앙지가 가지는 관계의 의미 이상을 나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즉, 중앙지가 자본과 권력과의 관계 하에서 기사를 다뤄왔던 정도에 비해서 한겨례 신문은 훨씬 자유롭고자 했던 것과 같다. <인물과 사상>은 언론관계에 있어서 지식인들의 가면, 즉 자본과 권력의 숨은 논리를 따르는 지식인의 이중의 행동잣대를 비판하려고 한다.
물론, 강준만 선생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스스로를 개방하고 나의 논리가 옳은지, 당신에 대한 나의 비판이 옳은지를 발벗고 나서서 시험한다는 점에서 국내에 몇 안되는 용기있는 자유주의자이다. 앞서 신문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인물과 사상 3권에서 다뤄진 前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중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은 김중배로 불리며 한국 언론의 개혁을 외치는 손석춘 기자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정말 한국언론의 얼굴이다. 예컨데, <신문읽기의 혁명: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를 써낸 손석춘 기자는 그 글에서 권력과 자본에 흔들리는 우리의 언론사를 잘 보여줬다. 얼마전까지 있었던 신문사 '보도지침'은 유명하다.
다음으로, 이문열씨에 대한 연속된 비판 또한 통렬하다. 후에 강준만 선생은 <인물과 사상>에서 이인화 교수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이문열씨의 문화권력에 대한 비판 또한 그 맥락에서 정당하다. 몇해 전에 이 책들이 나왔을 때, 강준만 선생의 글들을 가지고 이문열 비판에 관한 리포트를 쓰던 대학생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지식인으로서 이문열씨의 가면은 없는지 나름대로 판단해 보는 것은 재미있다.
이 외에도 김용옥 선생이나 파스퇴르 유업 회장 최명재씨에 대한 기사, 장애인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열한 시민의식, 그리고 김영민 교수의 기지촌 지식인론 등은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그냥 가십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왔던 사회의 기존 지식들에 대해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반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것이다. 예컨데, 이문열씨는 소설가로 더없이 좋은 작품들을 썼었다. 그러나, 그 소설 바깥에 그가 휘두르는 문화권력은 정당한지, 그때 그가 내세우는 논리들은 정당한지를 반성해보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나는 사회의 정의와 규범은 윤리학에서 정의주의(emotivism)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서로 합의될 수 있다. 모든 지식인이 우열이나 진위를 가름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의 <인물과 사상>은 적잖은 성찰을 촉구한다. 스스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이 잘 이루어질 때, 사회는 최선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의 열정적인 집필들은 나름의 성과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