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범우 한국 문예 신서 79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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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정일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만한 여건이 안 되기도 할뿐더러, 솔직히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세간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이유에 대해서 내가 관심이 없었던 이유와도 같다. 그러나,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재미있다. 내가 학문을 하고, 서가에 책을 많이 꼽아놓고 있기 때문일까? 책을 수집하기 위해서 꼽아놓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거리가 같다는 점에서 장정일의 이 책은 나에게 흥미로웠다. 마치 우표를 모으길 좋아하는 사람이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또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그가 소장하고 있는 우표를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안 것이었지만, 장정일씨는 책을 주로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다)

나는 장정일씨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맞보았다. '아, 이런 책도 읽구나. 한 번 읽어봐야겠다', '어, 이 책 나도 읽었는데? 이렇게 이해하는게 아닌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특히 나 역시 장정일씨처럼 동사무소의 하급공무원이나 하면서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책이나 밤늦게까지 읽는 것이 꿈이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처럼 다른 저자의 책에 느낌표나 물음표 혹은 나름대로의 독자후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항상 책을 열심히 읽는 장정일씨의 부지런함을 나는 많이 배웠다.

물론, 철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장정일씨와 책에 대한 취향은 많이 달랐다. 그러나 같이 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만큼, 책이라면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기뻐했다. 마치 밤새도록 장정일씨와 책에 대한 토론을 하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의 견해는 나와 많이 달랐지만, 적어도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거리가 있었기에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적어도 세간에서 장정일 소설가가 어떤 의미나 가십거리로 이해되든지 간에 장정일씨는 참 재미있고 또한 실천적이고 열성적인 소설가였다. 나 역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었지만, 장정일씨처럼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적어도 이런 점은 분명히 장정일씨의 미덕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또한 그만큼 실천한다. 그 내용이 얼마나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 없어도 이 책을 읽으면 책읽는 즐거움을 맛보면서 저자의 책읽기의 부지런함에 대해서도 배운다. 장정일씨가 이 책에서 다룬 내용에 대해서 나는 할말이 많다. 그러나 장정일씨가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 언젠가 나 역시 이런 책을 한권 쓰면 그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 서로 취미가 같은 선배에게. 독자 여러분도 적어도 책에 상당한 관심이 있어 이곳을 검색하고 있을테니, 장정일씨의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많이 재미있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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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3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15
칼 맑스 지음, 김호균 옮김 / 백의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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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맑스를 좋아해서였다. 특히, 그의 철학적인 체계와 더불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탁월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알고 싶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독일 이데올로기'나, '경제학-철학 수고', 그리고 '공산당 선언' 등을 읽었는데, '자본론'을 읽기에는 그 경제학 개념을 잘 몰라서 선뜻 읽지 못했었다. 그런데, 포스트 맑시스트 중의 한 사람인 안토니오 네그리를 알면서 그가 '자본론'의 초고라고 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 대해서 주해를 달면서 격찬한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는 그 책을 통해 거꾸로 '요강'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자본론'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 1권에서는 자본에 있어서의 생산, 소비, 분배, 교환(유통)을 다루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을 통해 잉여가치의 창출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2권에서는 서서히 헤겔적인 용어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변증법'과 '지양'을 통해 자본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3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2, 3권으로 갈수록 맑스가 노트에 초고 형태로 적어놓은 글의 한계가 드러난다. 즉, 정리가 되지 않아 읽기가 무척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 무슨 암호 같이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자본론'에서 헤겔철학의 영향을 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론'에서는 그 경제학적 치밀함을 위해 거의 사라져버린 헤겔의 영향이 여기서는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어떻게 '자본론'의 탄생에 있어 매개 역할을 했는가? 이런 것은 훌륭한 연구주제이다. 물론 그 철학사적 고증 작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맑스에 대해서나 헤겔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가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독자들 가운데 전공자가 있다면 이런 주제를 비롯해 마르크스의 '요강'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철학이 철학사라고 말하던 헤겔에 따르면 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철학사를 고증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원전과 함께 읽는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어떤 뼈대를 통해 탄생되었는지 아주 흥미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치밀한 과학적 논증과 더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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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1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바로 여기 교실에서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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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한 연구 뿐만이 아니라, 여성학, 식민지 지식인론에 있어서 유명한 분이다.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면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즉 그녀는 보통의 여성과 달리 여느 남성 못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보통의 여성들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남성과 같은 권력층에 오르면 스스로를 남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조한혜정 교수는 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성을 생각하고, 여성을 위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녀와 같은 동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이견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좀더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논의의 주제가 우리 사회의 미시적인 삶읽기인 동시에, 탈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내가 배우기로는 조한혜정 교수를 비롯해서 흔히 회자되는 '성찰적 근대성'이라는 화두에서 성찰성은 독일의 니클라스 루만이 말하는 selbst referentielle라고 배웠는데, 쉽게 말하면 자기 언급하는 것이 성찰성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여기서 우리의 지식인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가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는 아주 미시적인 차원의 분석을 행한다. 그리고서 얻은 결론은 그들의 모습이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한혜정 교수의 이 세 권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의 구성이 아주 미시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이성은 책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도 많은 독자들(특히 대학생들)을 수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밀함은 2권과 3권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성공한 책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김영민 교수 등과 더불어 한국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처음 접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발상의 전환이라든가 대학생들과 마치 수업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포용력에 상당히 감탄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이후로 나온 조한혜정 교수 특유의 미시적인 분석이 더욱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책 이후로 그런 서술체계의 마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도 몇몇 계간지에서 '자유주의 논쟁'이나 '지식인론'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밑바탕에는 서구의 이론을 무조는 수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우리의 현실상을 논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이러한 작업이 선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다양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상당한 매력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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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4 -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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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4호에서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한국논단, 이성재 국회의원, 창작과 비평의 백낙청씨, 푸코 등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나는 몇 가지를 아주 관심있게 읽었다. 첫째는 김대중 주필에 관한 글이다. 이 글과 더불어 강준만 선생은 류근일 논설주간도 다루면서 조선일보의 사설이 가진 편향성에 대해서 강도높게 비판한다. 쉽게 말하면 그들의 글은 그럴듯한 논리와 합리성을 표면에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에 편향하고 여권(당시 김영삼 정부)에 아부하는 논리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즉, 그의 칼럼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에 합리성을 가장 했지만 주의해서 들여다보면 기만적인 논리들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김대중 주필의 글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아직 신문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사설과 칼럼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에게 감사한다. 더군다나 이 글들이 모여 지금의 '안티조선일보' 운동이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잘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비슷한 입장에서 '창작과 비평'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백낙청씨에 대해서도 좋게 읽었다. 백낙청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를 비판한 지식인이 거의 없었는데, 강준만 선생이 지식인의 이중의 논리를 해부한다는 점에 있어서 좋은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식인은 아는 만큼 편협하고 교활한 아집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은 토론의 장 바깥에서 그가 받을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토론을 활발하게 유도한다는 점에 있어서 존경스럽다. 이 책에서 유시민씨의 강준만 선생에 대한 비판과 강준만 선생의 재비판도 그런 공론영역을 위한 좋은 자리였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나는 장애인 국회의원인 이성재씨에 대한 글을 특히 주목해서 읽었다. 우리집에도 2급 장애인인 삼촌이 계시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그의 글은 통렬하다. 장애인의 권리가 거의 없었고, 장애인에 대한 의식 조차도 저열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이 그렇게 열심히 활동한다는 점에 있어서 많은 위안도 되었다. 예컨데, 어느 글에선가 중고등학생의 대부분은 '자신이 장애인이 된다면 어떻게 살겠느냐?'는 질문에 '그냥 죽어버리겠다'는 대답이 많았다고 하는데, 정말 경악할만한 충격이었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되면 정말 죽을 사람이 몇 명인가? 아니 더 문제는 죽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의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이 <인물과 사상>에서 이 사회의 복지영역에 대한 문제를 자주 다루고 있는 점은 적실하며 내용 또한 타당하다. 그의 글을 통해 사회의 많은 영역이 개방되고 공론화되고, 또한 정화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주장이 모두 옳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토론할 수 있는 영역을 그가 끊임없이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는 적어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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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 -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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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물과 사상>을 즐겨 읽는다. (월간 '인물과 사상'도 있지만 그것은 별로 읽지 못했다) 적어도 그것은 한겨례 신문과 여타의 중앙지가 가지는 관계의 의미 이상을 나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즉, 중앙지가 자본과 권력과의 관계 하에서 기사를 다뤄왔던 정도에 비해서 한겨례 신문은 훨씬 자유롭고자 했던 것과 같다. <인물과 사상>은 언론관계에 있어서 지식인들의 가면, 즉 자본과 권력의 숨은 논리를 따르는 지식인의 이중의 행동잣대를 비판하려고 한다.

물론, 강준만 선생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스스로를 개방하고 나의 논리가 옳은지, 당신에 대한 나의 비판이 옳은지를 발벗고 나서서 시험한다는 점에서 국내에 몇 안되는 용기있는 자유주의자이다. 앞서 신문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인물과 사상 3권에서 다뤄진 前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중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은 김중배로 불리며 한국 언론의 개혁을 외치는 손석춘 기자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정말 한국언론의 얼굴이다. 예컨데, <신문읽기의 혁명: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를 써낸 손석춘 기자는 그 글에서 권력과 자본에 흔들리는 우리의 언론사를 잘 보여줬다. 얼마전까지 있었던 신문사 '보도지침'은 유명하다.

다음으로, 이문열씨에 대한 연속된 비판 또한 통렬하다. 후에 강준만 선생은 <인물과 사상>에서 이인화 교수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이문열씨의 문화권력에 대한 비판 또한 그 맥락에서 정당하다. 몇해 전에 이 책들이 나왔을 때, 강준만 선생의 글들을 가지고 이문열 비판에 관한 리포트를 쓰던 대학생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지식인으로서 이문열씨의 가면은 없는지 나름대로 판단해 보는 것은 재미있다.

이 외에도 김용옥 선생이나 파스퇴르 유업 회장 최명재씨에 대한 기사, 장애인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저열한 시민의식, 그리고 김영민 교수의 기지촌 지식인론 등은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그냥 가십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알아왔던 사회의 기존 지식들에 대해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반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것이다. 예컨데, 이문열씨는 소설가로 더없이 좋은 작품들을 썼었다. 그러나, 그 소설 바깥에 그가 휘두르는 문화권력은 정당한지, 그때 그가 내세우는 논리들은 정당한지를 반성해보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나는 사회의 정의와 규범은 윤리학에서 정의주의(emotivism)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서로 합의될 수 있다. 모든 지식인이 우열이나 진위를 가름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럼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의 <인물과 사상>은 적잖은 성찰을 촉구한다. 스스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이 잘 이루어질 때, 사회는 최선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강준만 선생의 열정적인 집필들은 나름의 성과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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