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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기와 삶 읽기 1 -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바로 여기 교실에서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1995년 10월
평점 :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의 가부장제에 대한 연구 뿐만이 아니라, 여성학, 식민지 지식인론에 있어서 유명한 분이다. 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면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즉 그녀는 보통의 여성과 달리 여느 남성 못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보통의 여성들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남성과 같은 권력층에 오르면 스스로를 남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조한혜정 교수는 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성을 생각하고, 여성을 위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그녀와 같은 동인들에게 있어서는 이견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런 이견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좀더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논의의 주제가 우리 사회의 미시적인 삶읽기인 동시에, 탈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내가 배우기로는 조한혜정 교수를 비롯해서 흔히 회자되는 '성찰적 근대성'이라는 화두에서 성찰성은 독일의 니클라스 루만이 말하는 selbst referentielle라고 배웠는데, 쉽게 말하면 자기 언급하는 것이 성찰성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여기서 우리의 지식인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가에 대해 조한혜정 교수는 아주 미시적인 차원의 분석을 행한다. 그리고서 얻은 결론은 그들의 모습이 식민지 지식인의 모습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한혜정 교수의 이 세 권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책의 구성이 아주 미시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이성은 책을 전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도 많은 독자들(특히 대학생들)을 수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밀함은 2권과 3권으로 나아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성공한 책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김영민 교수 등과 더불어 한국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처음 접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발상의 전환이라든가 대학생들과 마치 수업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포용력에 상당히 감탄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 이 이후로 나온 조한혜정 교수 특유의 미시적인 분석이 더욱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책 이후로 그런 서술체계의 마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도 몇몇 계간지에서 '자유주의 논쟁'이나 '지식인론'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밑바탕에는 서구의 이론을 무조는 수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우리의 현실상을 논하는 조한혜정 교수의 이러한 작업이 선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다양한 문화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상당한 매력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