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암소:미셸 푸코 연구 현대의 문학 이론 16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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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김현 선생님을 사숙한다.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철학을 전공하지만 그 분의 학문적 열의에 대해서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 단초가 바로 <시칠리아의 암소>였다. 이 책은 내가 보기에 당시 푸코 연구에 있어서 가장 잘 된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푸코는 철학자에 가깝기 때문에 프랑스 비평사 등 문학을 전공하신 김현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현 선생님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사상적인 부분을 거의 모두 이해하시면서 그의 문학비평·미술비평을 다룬다.

그 관심이 푸코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서였을까? 선생님은 <말과 사물>의 에피스테메 개념이나 푸코-데리다의 논쟁에 대한 논문을 쓰셨고, 그의 '계몽주의'에 대한 관점이나 '권력' 개념에 대해서도 연구하셨다. 그래서일까? 어떤 후학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프랑스 철학에 대한 연구는 포스트모던 논쟁에 다름아니며, 그 범위는 김현 선생님이 80년대 말에 연구했던 것들에 거의 다 포함된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푸코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분명 당시의 연구는 철학이나 사회학, 정치학 전공자의 연구에 미흡한 점이 있다. 그러나 김현 선생님의 연구는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가치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셸 푸코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그 후에 나온 많은 번역서와 연구·비평서를 읽었다. 그러나 김현 선생님의 글은 그 바깥의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 즉, 아직도 이 <시칠리아의 암소>는 푸코 연구에 있어서 필독서다. 특히 푸코에 있어서 레이몽 루셀이나 블랑쇼에 대한 관계 연구는 나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푸코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국내에도 이렇게 넓게 학문을 하는 학자가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감탄했었다. 선생님은 문학비평가로서 상당한 활동을 하고 계셨으면서도 푸코의 철학적인 저작들을 모두 불어로 읽으셨고, 심지어는 '푸코-데리다 논쟁'에 대한 논문을 위애서 데카르트의 <성찰>을 라틴어로 읽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푸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학문적인 태도와 열의에 있어서 많은 가르침을 준다. 학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를 다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본문의 내용이 푸코의 연보를 싣는 등 입문자를 위한 배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과 문학 양 측면에서 푸코와 그 주변에 대한 어느정도의 사전지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푸코의 저작과 여타의 입문서를 조금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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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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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현대 인류학의 가장 우수한 저작 가운데 하나이며, 소쉬르의 언어학과 결합되어 구조주의를 발생시킨 저작이다. 그만큼 레비 스트로스의 주요저작이다. 흔히 그의 <슬픈열대>에서 알려졌던 주요한 인류학적 성과는 '미개의 사고' 개념에 대한 해체이다. 그것은 레비-브륄이 미개인은 경제적·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하며, 따라서 비과학적·비논리적이다는 주장에 대한 명백한 반론이었다. 그것은 문명인이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폭력적인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야생의 사고>는 이러한 문명인의 환상에 대한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비판서이다. 나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깊이있는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 감탄이 나온다. 흔히 주술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았던 (혹은 그렇게 배운) 미개인에 대한 생각은 분명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여기서 미개인들의 다양한 표현 밑에 깔려 있는 인간사고의 유형을 드러냄으로서 그들의 사고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야생의 사고라는 용어는 이러저러한 미개인의 사고가 아니라 어떤 기호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공리의 체계이다. 그것은 신화적인 형태로 주로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문명인들은 미개인의 사고가 추상명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물을 객관화시키는 지적 작업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문명인과 미개인의 사고는 사물을 범주화하고 그것을 추상화하는 방법과 관심의 영역이 다를 뿐, 그들에게서도 추상화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문명인의 사고체계보다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 또한 질서를 통한 사고를 하고 있다. 단지 신화적 사고는 표상에 묶인 채 지각과 개념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표상 밖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주의적인 방법체계에 따르면 명백히 그들의 일반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화적 구조를 레비 스트로스는 토테미즘을 통해 재미있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명은 이제 인류학에서 거의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되었다. 그 구체적인 증명에 있어서는 인류학에 대한 다른 입문서를 참조해서 공부를 하여야 하겠지만, 이것은 나에게 상당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더군다나 그 내용 자체 또한 상당히 정치적이다. 마치 제3세계의 지식인들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줬던 프란츠 파농의 영향력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제3세계나 미개인들 모두 서구의 문명인들에 대해서는 하나의 '타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생의 사고>는 다소 전문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누가 그랬던가? 신학은 철학을 위한 예비작업이고, 철학은 인류학을 위한 예비작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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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달하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92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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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죽들에게 보내는 김소연 시인의 시는 아름답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詩語가 아릅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변죽이나 침윤과 같은 단어들을 비롯해 시인은 좋은 문장을 잘 구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이겠지만... 그 시어들을 통해 시인은 주변을 공략한다. 그러나 시인의 극단이 무엇인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진수씨가 해설에서 밝혀놓은 것과 달리 이 시집은 냉소주의나 허탈감은 아니라 하더라도 심리주의적인 분위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의 詩作 능력과 달리 아쉬운 점이 많은 시집이다. 내가 시를 잘 몰라서 그렇게 읽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시적 기법이나 모델을 극화한다 할지라도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그런 점에 있어서 시인은 '중심없는 바깥'에서 빼어난 이마쥬들을 보여주지만, 주변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보여주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시집을 많이 읽고 시를 쓰는 것 또한 좋아하지만, 김혜순 시인, 조정권 시인이나 김소연 시인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접근하기 힘든 점이 많았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곽재구 시인처럼 쉽고 간명하게 쓰여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통신의 온라인 상에서 김소연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물론, 그 동호회에서 시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묻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아직도 궁금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시인의 이 시집에 대해 욕망, 이마쥬, 상상력에 대한 모자이크가 한편으로는 뛰어난 소질로 그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소질이 시인의 시를 잡아먹고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아직 시인의 다음 작업을 살펴보지 못했지만, 그런 상상력에 분명 나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때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궁금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시인의 다음 작업에서 나의 궁금증이 어떤 방향으로 해소될 것인지를 기대하며 시인의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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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78
김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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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시인의 시는 그가 독실한 크리스챤이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별로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의 주목을 끌었다. 아마 크리스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었나보다. 오히려 김신영 시인의 시는 해설에서 김주연 선생이 '연민과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밝혔듯이 작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에 대해 기억하는 정갈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떤 분위기들이 투영되어 있는 그의 시는 읽는이를 淨化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그가 하느님에게 호소하듯이(「종이의 가장자리」)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그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시적현실은 무기력하다. 즉, 그의 정신세계는 현실과 대위법적인 구도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인은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다. 즉, 여타의 신앙인처럼 하느님의 건실함과 그 전능함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선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느님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그래서 다양한 매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그의 표현은 자유롭고 일상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 더군다나 그 인식이 우리의 인식의 폐부를 찌르며, 비관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어서 주목할만하다.

결국 그의 인식은 '자기 개인의 내면적인 의식에만 매달리거나 욕망의 표현에서 멋을 찾는 일, 혹은 정치·경제적 목적과 결부된 현실 개선의 목소리들'은 독을 품은 '화려한 망사버섯'에 다름 아니다. 시인의 부정적 자아인식은 그래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자기인식에 가깝다. 자신의 좌절과 부정적인 인식을 우회하여 신학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 글의 앞머리에서 밝혔듯이 이원론적인 크리스챤의 모습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부정적인 자기인식과 다양한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하는 시인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단지 신학적인 모습으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수에 대한 애틋한 연민은 균열된 현실세계를 지양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자기자신과 동일화하면서 예수와 자아의 거리를 서로의 이끌림으로 극복해보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는 시 속에 크리스챤의 모습을 글로 적었으면서도 결국엔 지우개로 지워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신학적 상상력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종교가 일반인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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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2
이영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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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은 90년대 음악에 있어서 하나의 코드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음악평론가는 90년대의 두 가지 주요한 키워드는 서태지와 정태춘이라고까지 했다. 서태지야 그 천재성과 대중성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정태춘을 아는 청소년이나 일반인은 생각보다 작다. 소위 학생때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까? 그러나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가요 사전심의제도 철폐'에 있어서 쓸쓸한 투쟁으로 그것을 쟁취한 영웅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그는 그 엄청난 일을 혼자서 일궈낸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책을 구입하였는데, 1권이 절판이라서 2권 밖에 구할 수 없었다.

내가 정태춘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때 자취방에서였다. 친구와 자취를 하였는데, 그 친구가 듣던 노래테잎이였다. 나는 그것을 무심결에 듣고 섬찟하였다. 마치 이 책에서 이장호 영화감독이 전라도 구례 가는 길에서 정태춘의 '나 살던 고향'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머릿결이 쭈뼛하게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그 기분을 잘 안다. 정태춘의 노래는 그만큼 절실하고 힘이 있다. 요즘 TV에서 하는 대중가수들의 사랑노래가 아니다. 그는 정말 자유를 노래했다. 하지만,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가요 사전심의제도 철폐'를 외쳤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나는 요즘의 TV 가요프로를 보면서 모두 똑같은 노래에 똑같은 의상, 똑같은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20대 안팎의 학생을 상대로 기획사가 그들을 조정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는 꼴이라고 할까? 아무튼 정태춘의 노래는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힘이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한곡쯤은 가슴 깊숙이 찔려오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아픔을 경험한 매니아들을 위한 책이다. 그의 사진과 주변이야기가 조금 실려 있고,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실려 있다. 그리고, 그의 노래와 악보들이 들어있다. 그의 음반에 감동을 받는 이에게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나에게 그랬듯이. 오늘은 비가 온다.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 우리가 보지 않고 애써 눈가리고 있는 세상의 현실에 대해 당당히 맞서기 위해,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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