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 문학과지성 시인선 178
김신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4월
평점 :
품절


김신영 시인의 시는 그가 독실한 크리스챤이면서도 그런 분위기를 별로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의 주목을 끌었다. 아마 크리스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었나보다. 오히려 김신영 시인의 시는 해설에서 김주연 선생이 '연민과 소망'이라는 제목으로 밝혔듯이 작은 것들을 어루만지고 무의미한 존재의 슬픔에 대해 기억하는 정갈함이 있다. 그래서일까?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떤 분위기들이 투영되어 있는 그의 시는 읽는이를 淨化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그가 하느님에게 호소하듯이(「종이의 가장자리」)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는 그런 느낌을 자아냈다. 그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시적현실은 무기력하다. 즉, 그의 정신세계는 현실과 대위법적인 구도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인은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니다. 즉, 여타의 신앙인처럼 하느님의 건실함과 그 전능함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선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하느님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에는 그래서 다양한 매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그의 표현은 자유롭고 일상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 더군다나 그 인식이 우리의 인식의 폐부를 찌르며, 비관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어서 주목할만하다.

결국 그의 인식은 '자기 개인의 내면적인 의식에만 매달리거나 욕망의 표현에서 멋을 찾는 일, 혹은 정치·경제적 목적과 결부된 현실 개선의 목소리들'은 독을 품은 '화려한 망사버섯'에 다름 아니다. 시인의 부정적 자아인식은 그래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자기인식에 가깝다. 자신의 좌절과 부정적인 인식을 우회하여 신학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 글의 앞머리에서 밝혔듯이 이원론적인 크리스챤의 모습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부정적인 자기인식과 다양한 현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하는 시인의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단지 신학적인 모습으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수에 대한 애틋한 연민은 균열된 현실세계를 지양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자기자신과 동일화하면서 예수와 자아의 거리를 서로의 이끌림으로 극복해보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는 시 속에 크리스챤의 모습을 글로 적었으면서도 결국엔 지우개로 지워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신학적 상상력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다. 종교가 일반인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