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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 시공 로고스 총서 23 ㅣ 시공 로고스 총서 23
로저 스크러턴 지음, 정창호 옮김 / 시공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스피노자는 근대, 그 안에서는 큰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물론, 그는 그 시대(17세기)를 주름잡았던 철학자였고,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드러낼 줄 알았던 용기있는 지성이었다. 그러나 그 혼란의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어려운 삶을, 그러나 고귀한 삶을 택했다. 그런 스피노자가 20세기 들어와서 68혁명 이후, 유럽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예컨데, 들뢰즈, 마트롱, 마슈레이, 발리바, 네그리를 비롯한 전위적인 학자들과, 게루 등의 전통적인 주석가들이 그러한 열정을 보여줬다. 실제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상당히 미래적이었으며, 니체와 함께 후기 구조주의의 경계 안밖에 존재론과 정치체 구성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되었다. 그 축은 내재성과 potentia 개념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영미권에서의 스피노자 접근은 좀 다르다. 여러 권의 판본이 나오면서 텍스트 정리 작업이 되었는데, 가장 권위있는 결정판은 이 책의 저자 스크러턴도 동의했듯이, 컬리의 1985년 프린스턴 대학의 판본이다. 그리고 컬리를 중심으로 요벨과 같은 철학자가 스피노자를 깊이있게 다루었다. 예루살렘 컨퍼런스도 그런 스피노자 연구에 한층 깊이를 더했다. 스크러턴의 이 책은 원래 1986년 옥스포드 대학에서 나왔던 것이기 때문에, 영미권의 최근의 스피노자 연구는 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체질적으로 유럽의 스피노자 연구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주석가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또다른 정통적인 접근을 얇은 책이지만, 조리있게 잘 보여주었다.
비록 중반 부분의 이론적인 측면의 스피노자는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입문자들에겐 어렵다. 그러나 이 부분은 스피노자 철학 자체의 어려움이기 때문에, 다른 개론서들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스피노자의 생애와 그의 사유를 전반적으로, 그것도 너무 전문적이거나 너무 대중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개론서가 바라는 평이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번 읽어본다면, 입문자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몇몇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스피노자를 공부한 사람도 재밌을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인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