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피에르 루이스의 저작인데 국내에 피에르 루이스 저작은 이 책 단 하나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애문학 작가에게 프랑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주었으니 얼마나 훌륭한 성애작가란 말인가. 훌륭한 성애와 관능을 보여주는 작가의 유일한 한국어판 도서. 이 책은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이 소설의 원제는 <여인과 꼭두각시>, 풀어보자면 여인과 그 여인에게 조종당하는 남자, 정도가 된다. 이를 원작으로 루이 브뉘엘이 역사에 남을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만들었다.

물론, 루이 브뉘엘 영화 외에도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들이 여러 편 있다. 대표적으로 1937년작 마를렌 디트리히 주연,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악마는 여자다>가 있다.

한 여자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일종의 페티쉬라 할 수 있는 영화(보기)의 속성, 특히 남성 감독(관객)과 여배우의 관계에서 잘 드러나는 영화 자체의 속성에 부합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루이 브뉘엘 영화가 역사에 남는 이유는 이 관습적인 이야기를 장르적 재현/ 영화의 관습에 가두지 않고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갔기에 가능했다. 한 인물(여주인공)을 두 명이 연기하는 것으로 이제 이 이야기는 영화가 지닌 페티쉬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자기반영적이면서도 온전히 남자에게 촛점을 맞추는 영화가 된다.

19세기 부르주아 남성의 내면과 욕망의 분명한 대상인 팜므파탈의 이야기는 루이 브뉘엘의 손을 거치면서 불분명하고 어두운 욕망으로 가득한 20세기 부르주아 남성이 진정 위험한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영화가 되었다.


문학평론가 도널드 와트는 피에르 루이스를 이렇게 묘사한다.

"express pagan sensuality with stylistic perfection"

조금 거칠게 옮겨보자면 "완벽한 문체(?)로 이교적 관능을 표현하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피에르 루이스 소설 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출판될 정도로 아주 얌전한 소설이라 할 만하다. 당시 30만부 이상을 판매한 그의 시집<빌리티스>, 파리 사람들이 식당이나 카페에 일단 모이면 누구나 시집 <빌리티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한다. 심지어 '플로베르 이후 완벽한 프랑스 산문의 등장'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피에르 루이스는 그 시집이 출간될 때 완벽하게 자신을 숨겼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내려오는 시들을 모았다고만 했던 것이다. 나중에 이래저래 결국 밝혀지긴 했지만, 이렇게 피에르 루이스는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글을 평생 써나갔지만 대중에게 발표하는 것에 회의적이기도 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사생활이었다. (19세기 벨에포크의 부르주아 시민 사회의 공적 영역/사생활의 완벽한 분리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사후에 출간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 Trois filles et leur mère>>, 그리고 <<어린 소녀들을 위한 가정 교육 지침서>>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르노그래피 작가로 추앙받게 된다. 수전 손택은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더불어 <<세 자매와 어머니>>를 성애문학의 빛나는 성과로 꼽고 있다.


피에르 루이스의 소설집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표제 소설 외에 3편의 짧은 이야기가 함께 묶여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즐거움>은 매혹적인 이야기다.

어느 날 저녁 시인에게 환영인 듯 실제인 듯 기묘한 복장의 아름다운 여인이 홀연히 나타난다. 아르테미스의 시녀이자, 제우스가 아르테미스로 변해 사랑을 나눌 정도로 아름다운 칼리스토가 시인의 작은 방에 방문한 것. 칼리스토는 무덤에서 나와 문명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다. 시인과 칼리스토는 푸른 새벽이 올 때까지 문명과 발전, 각자 자기 시대의 가치로 논쟁을 펼칩니다. 아주 짧고 간명하지만 또 미묘하게 육감적이다.

그 외에 사제가 고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금기와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 <X양의 고해>는 반전의 묘미가 있고요, 발자크가 등장하는 <가짜 에스더>는 소설의 인물이 실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의 광기가 번득인다. 감각과 스타일의 귀재 피에르 루이스의 현대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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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호모포비]는 동성애에 관한 책이라기 보단 동성애 혐오에 관한 책이다. 차이와 차별을 온전히 구분하려는 나와 같은 이성애자에게 추천.

2017년 4월25일 대선 tv토론회.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군대에서 동성애가 심하다.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떠냐”라고 묻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홍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것이냐”고 재차 묻자 문 후보는 “그렇다. 반대한다”고 말했다....이에 홍 후보가 ‘민주당이 성소수자 보호를 포괄적으로 담은 차별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하자 문 후보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동성애) 합법하고 구분을 못 하냐”고 즉시 맞받아쳤다. 홍 후보는 거듭 “동성애 반대죠”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저는 (동성애를) 뭐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문 후보는 토론 말미에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발언을 수정했다.](이상 한겨레 기사 인용)


2017년 4월 27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7일 ‘동성애 발언’ 논란과 관련, “다만 그날 (토론회에서) 질문 받았던 것은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서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라며 “동성애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다. 허용하고 말고, 혹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지향이고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이라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이어 “지금 성 소수자들이 요구하는 가치기준에 비춰보면 제가 말씀 드린 게 많이 부족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실 정치인으로 지금 정치 상황 속에서 저의 입장 밝히는 것이다. 거기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간극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성 소수자 국민들이 아직 우리 사회적 차별에 고통을 겪고 있고, 성적인 지향 때문에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는 군대 내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문 후보는 “군대는 동성 간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많은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다.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동성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동성혼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역시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상 한국일보 인용)

위의 두 기사는 나름 진보적이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자 하는 합리적인, 지적인 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동성애에 관한 편집증과 분열증이 뒤죽박죽된 시선을 담고 있다. 기저에 단 하나의 견고한 가설을 유지하는 한 이 편집증과 분열증은 계속된다. 정상성. 이성애 정상성. 거기에 가부장제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다.

이런 분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동성애를 예로 들며 동성애가 인간 본능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분들은 당대에도 동성애는 발각되면 목숨을 잃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건대 그리스 로마 사회는 동성애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동성애 전통이 본능인지 일탈인지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소년애이자,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 사회는 동성애, 이성애 개념이 없던 양성애 사회라 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가부장사회였기에 가족과 재산을 유지하게 위해 이성애가 요구되었다. 유대 기독교 사회로 접어들며 그리스 로마의 강력한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성애 강화와 강도 높은 동성애 배척의 길로 접어든다. 동성애가 본능인지, 이성애가 본능인지 어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동성애자의 권리 요구에 열린 마음을 가지더라도 동성애자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다.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성애자의 사생활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또한 자유주의적 동성애 혐오의 한 예다.
동성의 사랑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가족을 구성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절대 반대라는 의견. 솔깃하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성애 이데올로기에 노출된다는 이야기이다. 동성애를 이데올로기라 몰아부친다. 이성애 정상성을 본능으로 보는 것이다. 이성애야말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사회화의 과정이자 재생산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또한 동성애에 관한 편집증적 시선이다.

실제 동성 커플의 양육에 관한 여러 연구들을 살펴 보면, 다양한 접근과 결과를 보여주지만 흔히 생각하듯 비정상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성애 정상성을 본능으로 보고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일단 화들짝 놀라는 건 당연하다. 여러 연구들이 밝히듯 기우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성애 커플이건 동성애 커플이든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동성애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이 질문 자체가 동성애 혐오에 해당한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동성애 혐오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아래의 책은 동성애에 관한 책이라기 보단 동성애 혐오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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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의 그림을 본다. 심장 박동마저 포착하려는 집요함,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드러내려는 불가능한 시도에도 자기기만이나 연민 따윈 없다. 현재의 어둠을 알아버린 자만이 정확함을 추구한다. 예술은 환상이 아니라 상상으로 가능하다. 상상이란 곧 이성의 다른 이름이다.


펠릭스 발로통은 세 편의 소설과 여덟 편의 희곡을 썼다. 무대 세트 디자인, 사진, 그리고 다수의 조각 작품도 남겼다.

그의 소설 #유해한남자 (La vie meutrière)는 주변 사람들을 비극적인 사고로 죽게 만든 젊은 미술 평론가 자크 베르디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화 <L'Assassinat(살인)>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유머를 담은 삽화를 소설에 직접 그려 넣기도 했다.

발로통의 친구 뵈이야르(Vuillard)1893년에 [Théâtre de l’Œuvre]라는 극단을 설립했고, 그곳에서 발로통을 비롯한 '나비파'가 세트와 팜플렛 등을 디자인했다. 발로통 본인은 직접 희곡도 썼으며, 1904년에 그의 희곡 <매우 강한 남자>가 파리의 [Thétre de Grand Guignol]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1899년 코닥 카메라를 구입한 발로통은 여름휴가, 가정의 실내, 그리고 친구 방문 같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냅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작업실로 돌아와서는 이 사진들을 모티브로 현실의 기이하고 허구적인 버전의 회화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1904년에 몇몇 청동 누드를 제작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조각을 실험하기도 했다.


발로통의 이름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예술사의 그림자 속에 남아있지만, 그의 유산은 그의 명성 이상으로 더 광범위하다.

서사 서스펜스의 대가인 그는 1897-1899년의 부르주아 가정의 실내장면 시리즈에서 금지된 사랑과 상실이라는 사적인 세계 위에 관음적인 렌즈를 놓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발로통의 실내 장면에서 보여주는 서사적 이미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서사와 유사하다. <붉은 방><방문>처럼 입체감이 없는 실내 장면들은 에드워드 호퍼를 예고하듯 극도로 객관적인 거리두기의 방식(임상적 분리)으로 그려졌다.


연극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그의 '시각적/서사적(영화적) 스타일'은 심지어 알프레드히치콕 의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그의 독특한 색감은 웨스앤더슨 의 영화 세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이처럼 "지극히 독특한 발로통"의 흔적은 결국 20세기 예술과 문화의 전개 속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발로통의 그림을 보면 가장 안락한 공간 속 두 남녀의 다정한 포옹조차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전하고 있는, 일종의 수수께끼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발로통 그림은 우리 안의 탐정을 자극한다고 썼는데, 이 소설은 탐정의 돋보기 안경이나 마찬가지 일 듯하다. 발로통의 그림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


펠릭스 발로통의 소설 <유해한 남자>의 자크 베르디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살인자의 운명에 대항해 자기 삶의 종식을 기획한다. 그는 석양의 그림자 살인으로 다음 세기 전무후무한 정오의 태양 살인의 전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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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유해한 남자]는 화가 펠릭스 발로통의 소설이다. 40대에 쓴 소설이고 출간은 사후에 이루어졌다. 화가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엿볼 수 있지만 엄연히 소설이다. 자크 베르디에라는 젊은 미술 평론가의 어린 시절과 20대에 일어난 몇 가지의 주요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모두 자크 베르디에 주변인들의 죽음과 관련된다


친구의 뒤를 걷다 등 뒤로 지는 태양의 긴 그림자가 친구를 덮치자, 놀란 친구가 발을 헛딛고 난간 아래로 추락한다. 위층에 세든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게 편지를 전하며 그를 놀래키려고 뒤에서 그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날카로운 끌로 작업을 하던 아저씨가 그 소리에 놀라 끌이 손톱에 박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젊은 미모의 모델이 화실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높은 의자에서 내려오며 베르디에의 손을 잡다가 놓쳐서 시뻘건 난로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이와 같은 사고들이 잇따른다. 점점 침울한 외톨이가 되어가는 청년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책 표지는 펠릭스 발로통의 자화상 클로즈 업인데, 움푹 팬 눈 밑의 그림자가 이 청년의 삶을 말해준다. 이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이나 깊은 혜안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의도치 않은 사고 속에서 일찍이 삶의 어두운 면을 알아버린 소심한 남자의 치명적 방황이 있다. 그가 신의 저주를 받았는가? 그가 불운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가? 그건 모를 일이다. 펠릭스 발로통은 이런 죽음들이야말로 삶을 지배하는 일종의 조건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삶을 사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바로 현대적 삶의 조건이라는 듯.


발로통이 그려낸 인물은 말을 해야 할 때 침묵하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입을 연다. 기껏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되뇌다가 막상 발화의 순간이 오면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사랑(?)으로 타올라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조바심치다가 절망한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


발로통의 그림을 보면 가장 안락한 공간의 두 남녀의 다정한 포옹조차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전하고 있는, 일종의 수수께끼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발로통 그림은 우리 안의 탐정을 자극한다고 썼는데, 이 소설은 탐정의 돋보기 안경이나 마찬가지 일 듯하다. 발로통의 그림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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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루이스(Pierre Louis)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지막 철자 's'를 발음할 때면 분노에 휩싸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성을 갈아치우기로 한다. 그래서 루이스를 루이로만 발음하게끔 철자 i y로 바꾸고 그 위에 점까지 두 개를 찍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루이스라 부른다. (Pierre Louÿs)


피에르는 감각적인 사람이었는데 특별히 감각적이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사랑은 감각의 시'라 썼던 보들레르의 제자가 말라르메라면 말라르메의 제자는 피에르 루이스다. 그러나 루이스는 마치 감각이야말로 사랑의 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감각은 시적 상상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몸은 감각을 실현하는 감각기계가 되었다. 감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 중의 하나가 시가 되었고, 소설이 되었고, 익살과 풍자가 되었다. 거기엔 윤리나, 생의 의지 따위는 없다. 사랑이 윤리와 동의어인 세상에서 감각이라니. 관능의 감각이라니.


피에르 루이스는 관능의 삶을 살았다. 그는 색정광이었다. 독자들이 이 단어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지 궁금하다. 누군가가 색정광이라 알려지면 그 사람의 책을 선택할 확률이 높을 것인지 현저하게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성에 대한 상부구조와 토대가 극렬하게 불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드의 작품도,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도 다들 읽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대놓고 이 사람들을 색정광이라 칭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9세기 어느 색정광의 빛나는 소설', 이런 문구는 본 적이 없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원제는 여인과 꼭두각시)>은 피에르 루이스 사후에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발간된 세기의 걸작, 수잔 손탁이 포르노그라피의 예술적 성과라 평가한 <세 자매와 어머니>, 그리고 하드코어에 가까운 풍자집 <어린 소녀들의 가정교육 지침서> 와는 다르게 그의 생전에 매우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 출간되고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대표되는 소설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조금 더 비겁해진 느낌이다.


피에르 루이스 전문가 장 폴 구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피에르 루이스는 섹스의 끝이 어디인지 느끼고 싶었다. 인간의 성생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섹스에 몰두했다. 일상적인 성생활의 모든 측면과 깊이를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시와 사진으로 옮겼다. 상상력은 판타지와는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피에르 루이스의 상상력은 성적 판타지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환상과 상상은 분명 다른 것이다. 환상이 정서적인 측면이라면 상상은 다분히 이성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는 느끼고 상상한다. 자신의 글과 사진, 섹스는 차이가 없다. 상상력의 윤활유일 뿐이다. 그가 이른 나이에 거의 절필했던 이유가 아닐지 짐작해본다. 당시 35만 부라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고도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피했었다. 사생활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책 따위는 출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평생 읽고 썼다. 사람들은 피에르 루이스를 상상하는 인간이라 수식했다.


일종의 유희처럼, 말장난처럼, 특정한 분야의 감각에 집중되었으나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가 출현했다. 스타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물들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이라 했던 플로베르에 따르면 피에르는 플로베르의 후예다. 물론 발자크의 후예는 아니다. 자신의 단편 소설 <가짜 에스더>(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발자크를 등장시켰지만.


피에르는 중학교에서 만난 앙드레 지드의 첫 책에 서문을 썼고 두 번째 책에는 표지까지 만들어 줬다. 10대에 이미 수백 편의 시가 그의 노트를 채웠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프랑스 시인들, 말라르메나 베를렌느, 르 콩트 릴 등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청소년 피에르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드와 피에르 루이스는 몇 년 후 결별하게 되고 평생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앙드레의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피에르가 스무 살 즈음에 지드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오스카 와일드를 만난다. 오스카는 피에르를 무척 좋아했다. 연정을 품은 건 아니었다. 오스카가 자기 희곡 살로메를 피에르에게 헌정했지만 이년 후에 피에르는 오스카에게 엄청난 실망을 하고 떠나게 된다. 오스카의 호텔에 침대 하나에 배게 두 개, 그리고 앨프리드 더글러스가 있다는 것을 피에르는 용납하지 못했다. 오스카는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나는 단지 친구를 원할 뿐인데 참 어렵군, 그럼 나는 연인만 있을 팔자인가." 슬픈 이야기.

피에르 루이스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거참 자기는 사포를 그렇게 좋아하고 레즈비언 이야기를 시로 써서 당대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면서 말이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되고, 남자와 남자는 안 된다 이거지? 이게 아직 내게 남은 미스터리 중의 하나다.


한 가지 더, 피에르와 드뷔시 사이의 우정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그리스 레즈비언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시 <빌리티스의 노래> 3편에 드뷔시가 곡을 붙였다. 몇 년 후엔 이 둘의 관계도 끝나는데 이유는 드뷔시가 바람을 피워 부인과 이혼하고 젊은 여자에게 가버리자 피에르가 분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피에르의 보수적 기질은 당시의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프랑스를 완전히 양쪽으로 쪼갠 그때 반 드레퓌스 진영에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귀족의 혈통을 고집했다.


피에르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할 시기에 주변과 절연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그리스 고전문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중에 당대의 유명한 논쟁을 촉발한다. “몰리에르는 코르네유 최고의 걸작이라는 표절 논쟁. 시인이자 소설가, 고대 그리스 문학 전문가였고 10여 개의 외국어, 무려 중국어도 할 줄 알았던 이 르네상스인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는데, 그건 즐거움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고, 뭔가 대단히 올바른 주장을 펼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 성찰도 아니면서, 성장은 더욱 아니었고, 그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결코 아니었으며, 특별한 이유, 써야 할 이유가 있거나 혹은 그런 이유를 애써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느끼는 감각,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유일한 소망은 있었겠지만. 결국 쓰는 건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쓰는 게 삶이 되면 그런 삶은 참 가엾은 삶이 될 거라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본다.


그녀의 눈과 손가락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온몸이 하나의 얼굴처럼, 얼굴 그 이상으로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얼굴은 마치 쓸모없는 물건처럼 어깨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갈라진 엉덩이에 미소가, 물결치는 허리엔 두 뺨의 홍조가. 그녀의 가슴은 두 개의 커다랗고 검은 눈처럼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욕망의모호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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