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힌 동성애자는 분홍 삼각형 표식이 주어졌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에게 미국으로 갈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동성애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왜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일까요?


그리스 로마, 고대 성서시대와 기독교 시대,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동성애 혐오의 양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 과학과 의학, 이데올로기와 관료체제, 그리고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형태를 달리하며 교묘하게 권리를 제한하고 소외시키며 혐오를 조장하는 매커니즘이 다른 혐오들,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혐오 등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호모포비>는 동성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를 집요하게 부정하고 배격하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더욱이 여성과 아이, 약자로 흘러가는 매커니즘을 가진다. 특정 무언가를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혐오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진실임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서점인의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성애 혐오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호모포비]는 동성애에 관한 책이라기 보단 동성애 혐오에 관한 책이다. 차이와 차별을 온전히 구분하려는 나와 같은 이성애자에게 추천.

2017년 4월25일 대선 tv토론회.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군대에서 동성애가 심하다. 동성애는 국방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떠냐”라고 묻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홍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것이냐”고 재차 묻자 문 후보는 “그렇다. 반대한다”고 말했다....이에 홍 후보가 ‘민주당이 성소수자 보호를 포괄적으로 담은 차별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하자 문 후보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동성애) 합법하고 구분을 못 하냐”고 즉시 맞받아쳤다. 홍 후보는 거듭 “동성애 반대죠”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저는 (동성애를) 뭐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문 후보는 토론 말미에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발언을 수정했다.](이상 한겨레 기사 인용)


2017년 4월 27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7일 ‘동성애 발언’ 논란과 관련, “다만 그날 (토론회에서) 질문 받았던 것은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서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라며 “동성애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다. 허용하고 말고, 혹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지향이고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이라고 설명했다. 문 후보는 이어 “지금 성 소수자들이 요구하는 가치기준에 비춰보면 제가 말씀 드린 게 많이 부족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현실 정치인으로 지금 정치 상황 속에서 저의 입장 밝히는 것이다. 거기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간극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성 소수자 국민들이 아직 우리 사회적 차별에 고통을 겪고 있고, 성적인 지향 때문에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후보는 군대 내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문 후보는 “군대는 동성 간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많은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다.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동성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동성혼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역시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상 한국일보 인용)

위의 두 기사는 나름 진보적이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자 하는 합리적인, 지적인 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동성애에 관한 편집증과 분열증이 뒤죽박죽된 시선을 담고 있다. 기저에 단 하나의 견고한 가설을 유지하는 한 이 편집증과 분열증은 계속된다. 정상성. 이성애 정상성. 거기에 가부장제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다.

이런 분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동성애를 예로 들며 동성애가 인간 본능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분들은 당대에도 동성애는 발각되면 목숨을 잃는 행위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보건대 그리스 로마 사회는 동성애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동성애 전통이 본능인지 일탈인지 알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소년애이자,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 사회는 동성애, 이성애 개념이 없던 양성애 사회라 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가부장사회였기에 가족과 재산을 유지하게 위해 이성애가 요구되었다. 유대 기독교 사회로 접어들며 그리스 로마의 강력한 가부장제를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성애 강화와 강도 높은 동성애 배척의 길로 접어든다. 동성애가 본능인지, 이성애가 본능인지 어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동성애자의 권리 요구에 열린 마음을 가지더라도 동성애자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다.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성애자의 사생활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또한 자유주의적 동성애 혐오의 한 예다.
동성의 사랑은 인정하지만 그들이 가족을 구성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는 절대 반대라는 의견. 솔깃하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성애 이데올로기에 노출된다는 이야기이다. 동성애를 이데올로기라 몰아부친다. 이성애 정상성을 본능으로 보는 것이다. 이성애야말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사회화의 과정이자 재생산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또한 동성애에 관한 편집증적 시선이다.

실제 동성 커플의 양육에 관한 여러 연구들을 살펴 보면, 다양한 접근과 결과를 보여주지만 흔히 생각하듯 비정상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성애 정상성을 본능으로 보고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일단 화들짝 놀라는 건 당연하다. 여러 연구들이 밝히듯 기우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아이를 키우는 것은 이성애 커플이건 동성애 커플이든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다.

동성애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이 질문 자체가 동성애 혐오에 해당한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동성애 혐오에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아래의 책은 동성애에 관한 책이라기 보단 동성애 혐오에 관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껏 살면서, 내게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친구가 없었다. 그러니 나의 성소수자 감수성이란 고작 몇 편의 영화나 소설이 전부다. 때론 상투적인 재현 속에서 때론 인간성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들을 통해 피상적으로 만났을 뿐이다.


인간사엔 정해진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편이라 동성애나 성전환에 대해서 무심했다. 그것은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니엘 보릴로와 카로린 메카리가 쓴 <호모포비>는 바로 나의 그런 생각 속에 자리한 혐오의 흔적을 찾아낸다.

저자들 본인이 성소수자로서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 있기에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분명하다. 성적 지향에 따라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구분할 근거는 전혀 없다. 이는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정상/비정상의 논쟁이야말로 이성애를 정상이라 여기는 다수가 부추기는 이데올로기 조작에 속할 뿐이며 이 책의 주요 관심도 아니다.


책은 동성애보다 동성애 혐오가 일으키는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짚어보면서 그 혐오의 기원과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짧은 분량이지만 동성애라는 인간 행위를 모델로 삼은 인류 역사의 크로키로도 읽을 수 있다.

동성애가 규범 밖의 선택이 아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서 이성애, 동성애의 구분조차 없었던 그리스, 로마 시대였지만 유달리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이었던 사회, 철저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는 혐오와 차별의 배아가 싹틀 토양을 마련하고 기독교 세계를 맞아들인다. 유대, 기독교의 가부장적 남성 지배체제가 공고해지면서 본격적인 동성애 혐오의 시대로 들어선다. 종의 보전이라는 지상의 가치는 어느덧 신의 의지가 된다.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과학, 철학, 의학, 이데올로기, 정치와 권력이 동성애를 정교하게 문제 삼고 폭력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을 감지할 수 있다.


사생활과 공적 사회의 완벽한 이분법에 근거한 19세기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자유주의 담론은 동성애를 선택으로 간주하면서 사생활의 배타적 영역에 위치 시킨다. 다시 말해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개인의 신성한 영역임을 인정하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제도화된 이성애 외에 동성애가 외부의 공적 영역으로 표출되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는 언제나 소수의 침묵 속에 머물러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는 일부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고 모두 이 범주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성애자의 사적인 행위와 사생활이 보장된다는 면에서 우리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다. 자유는 단지 그 실존에 대한 존중 이외에 다른 것을 강제하지 않기에 국가 또한 사생활의 한계 안에서만 동성애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무관심이나 의도적인 논외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사생활, 특히 자신들의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보호와 인정, 안정을 구하기 위해 사생활 영역을 뛰어넘고, 국가는 제일 먼저, 이성애 커플의 부부, 가족으로서의 권리, 사회적 권리, 출산, 유산, 상속, 등의 유무형의 권리에 전적인 채무자가 된다. 그러나 동성의 결합은 사생활의 영역, 비밀의 영역에 남아있어야만 한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섹슈얼리티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이성애자인 나는 이성애라는 섹슈얼리티를 선택했기에 권리의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이성애를 선택했는가? 의문이다. 심지어 섹슈얼리티가 선택의 차원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 부여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섹슈얼리티를 선택하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모두에게 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하나의 선택이 권리 행사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하는 사회, 지금 현재 우리사회에 비추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 대목으로 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