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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의 그림을 보는 일은 언제나 가고자 하는 곳에 닿지 못하면서도 지도를 유심히 살피는 것과 같다. 또는 분명 한 번은 와 본 곳이라는 확신 속에서도 입구를 지나치거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기도 하다. 좁은 화폭에서도 무수한 복선과 암시, 속임수가 지뢰처럼 화면 곳곳에 묻혀있다.


원색의 화려함으로 장식된 거실에서 손을 맞잡은 두 남녀의 모습이 사랑의 확인인지 파국의 전조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의 그림엔 언뜻 익숙한 이야기가 놓여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길을 잃고 망연히 서성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리를 뜰 수도 없는 것이 원색과 흑백의 모호한 서사, 이미지와 표제의 충돌이 우리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물론 그대로 머무는 것 또한 쉽지 않은데 그 모호함은 우리가 수없이 보고 겪어온 바로 그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논리적 일관성이나 명백한 감정과 관계가 흔들리는 세계에 대한 재현은 사실적인 이미지 속에 배치된 어두운 그림자의 기묘한 조화 속에서나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호함 속에 짧은 삶을 살아낸 청년의 이름은 자크 베르디에. 펠릭스 발로통이 쓴 소설 [유해한 남자]의 인물은 자신의 선의나 사소한 행위가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의식으로 어린 시절 일찍이 자신을 폐쇄한 청년이다. 자신의 단순한 행위들은 언제부터인가 타인에게는 모호한 행위, 치명적인 순간엔 유해한 행위가 되곤 했다. 그에게 세상은 명료한 그 무엇이 아니다. 무모한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혀 늘 자신을 번복하거나 포기하거나 혹은 다시 시작한다. 되풀이되는 자기 합리화, 그리고 부정과 추앙, 그 사이의 우연한 일탈은 마침내 사랑의 승리자가 되려는 순간 그 사랑을 죽음으로 인도한다. 그렇게 청년은 이해 불가의 세계에 던져진 태고의 저주가 된다.


그의 삶은 따뜻함이라곤 없던 고통의 연속이자 타인에게 다가서려 했으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밀어내버린 외롭고 메마른 삶이었다.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타인에게 이해받지도 못한 채 사랑의 갈망으로 삶을 마감한 청년의 삶에서 펠릭스 발로통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참고로 [유해한 남자]를 자전적 소설이라 썼지만, 자전적 소설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의견을 달리 할 수도 있겠다. 분명 [유해한 남자]는 펠릭스 발로통의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의 인물 묘사는 분명 젊은 발로통의 자화상 그대로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장면은 그의 초기 회화의 장면 속 이야기에 닿아 있다. 그리고 자크 베르디에가 젊은 미술평론가로서 내리는 홀바인과 앵그르에 대한 평가는 발로통의 그것과 정확히 같다. 그런 이유를 들어 자전적 소설이라 소개해도 될 만하다고 생각했던 점을 밝혀둔다.


“펠릭스 발로통은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는 "이념론자"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무기력하고 허영심 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흔히 그렇듯 이론들 속에서 영혼을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비관적이다. 그러나 이 비관주의는 공격적이지도 않고 독단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이 정확한 남자는 최선의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기대로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비관적이길 원치 않는다. 그는 매 순간 솔직함과 진실을 추구한다.”
-옥타브 미르보, 1910년 1월 10일에서 22일까지 파리 드루에 갤러리에서 열린 발로통 전시회 카탈로그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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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큐비즘의 창시자, 현대 미술의 새 지평을 연 조르주 브라크

 

예술과 인식의 심오한 탐구

 

<낮과 밤>은 조르주 브라크가 추구했던 예술적 사유와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독창적이고 예리한 통찰을 담은 브라크의 짧은 문장은 예술 그리고 삶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한다. 브라크 예술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브라크가 펼치는 빛과 어둠, 존재와 무, 삶과 죽음의 상징적 대비, 예술과 삶에 관한 깊은 성찰은 인간의 인식과 예술의 본질을 파고드는 치열한 기록이다. 또한 자연과 인간, 실재와 관념, 현실과 상상 등 우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대립 사이의 균형에 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성찰은 예술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다.

 

언제나 두 가지 생각, 하나를 무너뜨릴 또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

 

큐비즘의 화가 조르주 브라크가 추구했던 예술과 그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1917년부터 1952년까지 조르주 브라크의 수첩에 기록된 단상은 창작 행위와 예술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창작자로서의 맹렬한 자기 성찰, 그리고 예술가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기까지의 첨예한 사유를 담은 짧은 메모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하고 세계의 모순과 대립을 엄정한 지성으로 바라본다. 자연과 인간, 실재와 관념, 현실과 상상 등 우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대립 사이의 균형을 찾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성찰은 예술과 삶을 탐구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다.

 

특히 입체파의 중심 주제인 사물과 사물의 표현 사이의 복잡한 관계, 시공간 속에서 사물의 인식과 변형에 대한 문제를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예술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대립들로 다룬다. 그가 추구한 예술은 형태의 파괴와 재구성을 통해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으며, 이 노트는 그 치열한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격변과 입체파의 예술적 변화, 그리고 또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한 유럽을 마주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브라크의 내면적 여정처럼 보인다. 브라크는 이 노트를 통해 낮과 밤, 빛과 어둠, 예술과 과학, 진화와 진보, 이성과 영성, 희망과 이상, 믿음과 신념, 힘과 저항 등 세계를 구성하는 이중성과 대립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세계의 아름다움은 끊임없는 대립과 상호의존 사이의 불안한 균형에 있으며 황폐한 세계에서 이 대조는 희망과 절망, 명료함과 혼란 사이에서 요동치며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은유가 된다.

 

그는 사물의 이중성과 대비본질과 현상, 관념과 실재, 빛과 그림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탐구하며, 궁극적으로는 예술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브라크는 이러한 대립적인 개념들이 서로를 정의하고 보완한다고 주장하며,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은 모두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대립은 브라크의 예술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원리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브라크는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시적이고 철학적인 산문에서, 예술가는 깊은 주관성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찰나의 빛과 그림자의 순간적인 느낌,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포착하고 육화하는 존재다. 그는 이 감각들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아니라, 그 깊은 인식의 순간들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이런 대비가 예술적 표현에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외부의 변화와 내적 경험을 반영하는지를 보여준다.

 

<낮과 밤>은 단순히 미적 성찰을 넘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현실과 상상이 만나서 벌이는 끊임없는 인식의 게임을 보여준다. 브라크는 독자에게 세상을 구성하는 대립을 지각하고 탐구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브라크는 초기에 구상적 표현을 통해 현실을 묘사했지만, 점차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모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했다. 브라크의 예술은 언제나 과정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브라크의 예술적 성장과 변화의 과정 또한 이 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완성된 형태나 완벽한 미학을 추구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하는 선과 색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복잡성과 변화를 반영하려 했다. <낮과 밤>에서도 그의 사고는 같은 어휘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 혹은 맥락에 따라 서로 상충하거나 모순을 내포하지만, 이는 언어의 자의적인 사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의 생각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에게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실에는 그 어떤 상반도 모순도 반의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은 오직 그 자체로 절대적이다. 브라크의 메모는 바로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 본질, 즉 지속적인 변화와 진화하는 과정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이 수첩은 그가 끊임없이 자기 내면의 깊이를 탐색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노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브라크는 회화가 단순히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 이상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자,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심리적, 존재론적 진실을 탐구하는 수단이 된다.

 

그의 메모는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대립과 모순은 의미의 심도와 입체감을 더하며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낮과 밤으로 상징되는 이 대비는 우리 내면의 감정적 갈등이나 심리적 변화, 인식의 전환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이 대비는 언제나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서로를 정의한다.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것 역시 이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으며, 각각이 하나로 완성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을 통해 자아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려는 브라크의 의도가 이 노트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낮과 밤>은 예술적, 철학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존재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브라크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도 시적이고 은유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가 선택한 개념의 층위는 그가 단순한 미술가가 아닌 예술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매우 추상적이고, 때로는 자기만의 언어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전개하는 브라크의 메모는 그의 예술 세계의 이해와 지적 토론의 장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무엇보다 독자는 그의 간결하고 철학적인 메시지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을 일궈내고 눈을 뜨고, 감각을 자극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힘이 예술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는 하나의 창이 되길 바란다.

 

[화가 조르주 브라크에 관하여]

 

브라크는 1882513일 프랑스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축 도장 사업가이자 화가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르 아브르의 미술 아카데미 야간반에서 수학하다 중도에 그만두고 파리로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파리의 움베르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마리 로랑신과 프란시스 피카비아를 만난다.

 

초기의 브라크는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렝 등 야수파(Fauvism)의 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1907년 여름 마티스가 "큐비즘"이라고 명명한 큐브 모양의 집이 있는 에스타크(l'Estaque)의 풍경을 담은 그림, 특히 [에스타크의 집Maisons a l'Estaquel'Estaque]을 통해 새로운 길로 접어들며 브라크의 작품은 더욱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변한다. 1906년부터 폴 세잔의 윤곽선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더불어 고전적 시각과의 단절을 통해 본격적으로 입체주의라 불리는 시기(1911-1914)로 들어선다.

 

브라크와 피카소: 입체주의의 탄생

 

입체주의란 무엇인가? 당연히 브라크-피카소 화파다.” 1911년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만남으로 예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두 예술가는 1907년에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후 함께 큐비즘이라는 혁신적인 예술 운동을 창시했다. 규비즘은 전통적인 원근법과 사물의 재현 방식을 거부하고, 다각적인 시점을 통해 형태와 구성을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전쟁과 이후의 변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브라크는 프랑스 군에 자원입대했고, 전투 중에 심한 부상을 입는다. 전쟁 이후, 브라크는 형태의 분해와 해체에서 벗어나, 단순화된 선과 색을 사용하여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점차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를 담게 되었다.

 

입체주의의 진정한 사상가로서 그는 원근법과 색상의 법칙을 다시 세운다. 정물화에 집중하며 색상, , 질감을 통해 사물을 기하학적인 형태의 변형과 다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정물화에 기하학적 모양을 사용하고 그림에 스텐실 문자를 도입하거나 광고전단의 조각을 캔버스에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활용하고 안료를 모래와 섞는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하여 평면적 이미지에서 공간 속의 촉각적인 감각까지 끌어내는 새로운 발견은 20세기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여러 예술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브라크의 예술은 단지 기법적인 혁신에 그치지 않고, 예술의 본질과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예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끊임없는 실험과 탐구를 통해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중요한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브라크의 창작 철학과 예술적 접근

 

브라크에게 예술이란 과정과 탐구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작품을 완성된 결과물로 보기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그에게 예술은 불완전함과 실험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그의 스케치북과 개인적인 메모에서 잘 드러난다. 브라크는 완벽하게 정리된 그림보다는, 그가 작업하는 과정에서의 감정과 사유를 중시했다.

 

브라크의 미술은 단순히 시각적인 작품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형상과 색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변화를 드러내고자 했다. 형상과 색의 언어를 사용하여,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깊이를 전달하는 그의 예술은 인간 존재의 복잡한 심리적, 철학적 상태, 즉 인간의 내면세계와 세상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려 했다. 형태의 해체와 색의 변화를 통해, 존재의 본질과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예술을 보편적인 진리로 승화시키려고 했던 그의 미학적 입장은 그의 창작노트인 <낮과 밤>에서 짧고 간결하게 표현된다. 브라크의 예술이 단지 시각적인 재현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내면을 탐구하는 중요한 철학적 여정이라는 점이 그의 노트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브라크의 작품은 당대의 미술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현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미술의 형식을 넘어서 미술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며,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창조했다. 그가 사용한 기법과 아이디어는 오늘날 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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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선 작가는 양극성장애, 불안증, 수면장애, 메니에르를 겪는 일상에서 질병을 수긍하고 자기 몸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인식하고 하루를 보내는 지 등 다양한 단상을 산문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불안을 달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딱히 질환이 아니어도 말이죠. 또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심리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무척 공감하고 배울 부분이 많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정선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스미는 목소리>가 첫 단독 저서입니다. 이전에 공저로 참여했던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출간 소회를 들려주신다면.


아무래도 무게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 작품들이 하나는 일상 에세이이고 하나는 칼럼이었다는 점에서 분위기는 달랐지만, 함께 작업하는 작가님들이 있어서 제 개인적인 어려움, 이를테면 갑자기 공황장애와 울증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없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너무나 죄송하면서도 너무나 감사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해야 할 일로 가슴은 무거운데 시체처럼 있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어려운 무기력에서 헤매일 때, 죄책감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제가 해내야 할 일이었어요. 다행히도 출판사에서 오래 기다려 주고 묵묵히 함께해 주셨어요. 제 느린 호흡과 느닷없는 박자감을 맞춰주셨고, 괜찮다 해주셨어요. 돌이켜 보면 무게감에 허덕였는데 그걸 출판사 쪽에서 같이, 아니 더 많이 짊어지고 함께 버텨주신 거라,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신다면.


사연을 모두 밝힐 수 없는 일들로 완전히 무너지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십여 일을 수면 속에서 허덕이며 인간의 존엄은 완전히 무너지기도 했어요, 잠시 5시간 정도 깨어나 먹고 다시 잠들어버리는 시간 동안 씻지도 못하고 치우지도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았어요. 어느 겨울엔 50시간 가까이 위가 멈춰서,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고 약도 먹지 못해서 잠도 잘 수 없던 시간을 버텨내던 시절이 뒤섞여 있어요. 잠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 먹는 것도, 잠만 자고 겨우 아무것이나 먹고 다시 잠만 자던 시절 모두 공포였죠. 때로는 약물 부작용으로 쓰려졌다 이틀 만에 깨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공황장애로 눈, , 입이 모두 젖은 종이로 덥힌 듯한 환각 속에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이 무작위로 찾아왔어요. 조각이 나면 기워서 다시 형상을 만들 수 있는데 가루가 되면 기워낼 수도 없어요. 완전히 가루가 된 시간이었어요. 해서... 다시 빚어야 했어요, 내가 나를 빚어내어야 하던 시절이었어요. 울면서 빚었던 것 같고 당위로 빚었던 것 같아요. 그게 글이 됐어요.

 

질병 당사자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어떤 면에서 좀 다를까요?


아무래도 이해받지 못하다는 점이 서글프죠. 가령 공황이 찾아와도 매번 설명할 수도 없고 그때 곁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너덜너덜해져서 어떻게든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데 타인은 모르는 영역이잖아요. 자주 아프고 자주 허물어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타인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럴 수도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나라엔 아직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하곤 해요. 이런 건 노동자의 환경과도 연결돼 있어서 씁쓸해요. 아픈 건 미안한 게 아닌데, 그게 죄인처럼 만드는 환경. 치밀한 신자유주의 사회인 이곳에선 질병인들은 짐이 되고 나쁜 존재가 돼요. 지독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면, 조금만 더 노동 친화적인 사회였다면, 한 사람의 몫이란 것이 조금 헐거운 사회였다면,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지독한 자멸감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지금까지 작가님은 어떤 삶의 지향으로 살아오셨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착하게 살자.”(웃음)가 진심으로 삶의 지향점이에요. 착하고 싶어요. 바르고 맑고 착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일상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부분에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상은 정치적이고 모든 정치는 일상에 맞닿아 있어요. 거기 바로 그 지점에서 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다행히 제 주변엔 그런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아서 아, 이게 바로 복 받은 거라는구나 해요. 그들의 선함과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꾸준함과 그들의 다정함을, 가진 사람이 저도 되고 싶어요.

 

자신의 일상을 글로 옮기려는 분들이 아주 많은데요, 일상에서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 있다면.


일상적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운데요. 그냥 매일 혹은 자주 쓰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 각 잡고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적어도 한 주에 한 편은 완성도 있는 글을 써보려 애쓰는 것. 하지만 평소에 아무 말인 것 같아도 단 몇 줄이라도 글을 써보는 게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매일 긴 글을 쓰기는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너덧 줄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은 덜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단어만 던져지던 글이, 이어지는 글로 되고 어느덧 하나의 완성된 문단이 되는 걸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은 조금 쉬워져요. 그때까지 뻔뻔하게, 좀 창피해도 막 쓰는 거죠. 저처럼요.

 

이 책의 독자 중에 작가님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이 책의 독자 후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혀 괜찮지 않을 텐데도. 잘 버티셨어요.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저는 이 말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들의 주변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손가락이 다친 것과 발가락이 다친 것이 다르고 심장병에 걸린 것과 신장 질환이 있는 것이 다르듯, 정병도 다 다르고 사람마다 증상도 다 달라요. 그러니 정병 하나로만 분류하여 보통과 다른 존재로 구별하고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채로운데 소위 정상성에 묶여서 그 수많은 층위의 사람을 다 쳐낸다면, 낙오된 그들보다 낙오해 온 사회가 낡고 혐오스러운 것 아니겠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사회는 그래서 낙인찍는 사회는, 내쳐진 존재들에겐 삶을 저버리는 것밖에 결론 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에요. 낙인찍지 말고 다정해졌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앞으로 계획, 삶이나 글쓰기, 등등 세워두신 계획이 있는지.


큰 계획은 없어요. 혼자 책 제목하나 만들어 두고 후후 혼자 웃고 있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어요. , 기회가 닿는다면 현재 쓰고 있는 칼럼을 묶어서 출간해 보고 싶은 욕망은 있어요. 욕망이요. 이런 게 없던 세월이 길었는데요, 불란서책방 덕분에 책에 대한 욕망이 생겼어요. 기쁘고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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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출간된 단편 「흐린 날(Jour gris)」은 콜레트가 연인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폭풍우치는 하루를 배경으로 한다.

바람과 추위, 그리고 바다의 비릿한 냄새에 신경이 곤두서고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채, 작가는 갑작스러운 향수에 휩싸인다.

그것은 마치 환각처럼 찾아든 고향 시골에 대한 갈망이다.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단편 중 하나인 「흐린 날(Jour gris)」에서,

콜레트는 상반된 열정들로 변화무쌍 날뛰는 마음이 해안 풍경에 투영되어,

그 풍경조차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연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흐린 날의 황금빛 끝을 향해 달려가자.”

그리고 “파도가 가져다 준, 당신 고향의 꽃들을 해변에서 따자”고 속삭인다.

이 이야기 속에는 모성과 양육의 존재이자

동시에 기만과 몽상의 존재로서의 여성상이 수수께끼처럼 등장한다.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마틸드 드 모니(Mathilde de Morny),

일명 ‘미시(Missy)’에게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들로,

『슬픔의 긍지(원제Les Vrilles de la vigne)』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집은 콜레트의 문체와 삶의 방식 모두에

새로운 자유를 선포한 첫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정교하고 섬세한 독서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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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스미는 목소리 247쪽)




#한정선 작가는 제주도에서 타인과 사회를 지원하는 활동가이자 작가이기도 하지만, #조울증#불안장애, #수면장애 #메니에르 등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질병인으로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는 일상의 어려움과 즐거움, 소소한 기쁨과 외로움 등을 풀어냅니다. 일상에 침투해 들어오는 사소하지만 날카로운 순간의 경험, 하루의 절망과 하루의 희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신만의 감정과 호흡, 의식 세계에 깊이 몰입하는 작가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산문으로 자기 탐색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는 이야기는 《#스미는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불안을 달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딱히 질환이 아니어도 말이죠. 또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심리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배울 부분이 많은 책입니다.


"자신에게만 침잠하고 골몰하며 바라본 세상을 써내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에서 수합되는 사건들을 살피고 고민하고 드러낸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골몰하는 나도 관찰하는 나도 모두 세상과 내가 관통하는 순간에 이뤄진 고통과 기적의 순간이었다. 관통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관통한 틈으로 캄캄한 어둠이 밀려 나오고 나면 비로소 거기에 빛이 스며든다. 바로 기적의 순간이 있다. 캄캄한 어둠이 반짝이는 그 틈을 헤집고 벌리고 바라본다. 이 책은 이런 기록을 담아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성에 차지 않고 어떨 때는 누군가의 온정에 기대어 버텨온 세월 내내정말로 나는, 망가지고 엉망인 모습인 그대로 최선이었다."


"두려웠다. 흩어져 있던 글을 묶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과정은 여전히 낯설고 이상한 감각을 길어 올렸다. 이 글이 너무 사적이지 않나, 내 병증을 지나치게 드러낸 건 아닌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F코드-정신과 코드- 낙인이 찍힌 채, 어떤 행동이나 무엇을 해도 이 병증 때문이라고 재단 당하고 비난받거나 동정받게 되지 않을까, 나아가 현재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을까 하는 구체적 두려움이 가슴을 파고들어 헤집어 놓았다.

용기를 내어보아도,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내겠다고 덜컥 약속했는지 자신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날이 섰을 때, 내 글에 자신이 다시 상처받아서 웅크리고 할퀴기만 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때바닥에 쏟아진 물처럼 주워 담지 못할 것 같은 상태에서, 마치 물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일어나 작업을 이어갔다. 울어도 눈물이 티가 나지 않아 다행인 물 인형으로 다시금 글을 마주할 수 있었다."



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 -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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