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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여 안녕, Ave Materia』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의 동작이다. 파괴된 것을 밀어내지 않고, 그 위에 손을 얹는 것. 무너져가는 집, 곰팡이 슨 그림, 죽은 화가의 작업, 실패한 삶의 시도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고쳐서 원래대로 돌려놓는" 대신, 그 상처와 흔적을 재료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물질에는 영혼이 있다. 낡은 나무의 결, 흙, 바닷물은 소재가 아니라 대화 상대다. 파리의 낡은 집 지하실에서 14년째 방치된 채 곰팡이가 슬어 있던,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복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지문으로 그 위에 이어 그렸다. 물질 자체가 기억과 영혼을 품고 있기에 그와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이어 간다. 물질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그리하여 “망해버린 그림에도 이유가 따른다”는 현재를 살아내게 하는 주술처럼 가볍지만 무겁게 울린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들 앞에서 독자는 곧 이 책의 두 번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완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완성은 끝이 아니다. 부다페스트에서 24시간 동안 그린 그림은 완성되자마자 땅에 묻혔고, 두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다시 꺼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그림은 노르망디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완성 = 소유”라는 통념을 뒤집는 이 행위들 속에서, 작품은 태어나고 흙과 물에 의해 변형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 순환의 과정 전체가 작품이 된다.


고통은 지워지지 않아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물질이나 예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통과한 시간이다. 초월은 고통의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의 공존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좌절과 방황, 그가 “죽는소리”라 부르던 시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구덩이에서 덩굴이 자라듯, 지금의 창작이 거기서 자라났다. 이것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상처를 이겨내고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곁에 둔 채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곰팡이 슨 캔버스, 땅에 묻힌 그림, 바다로 떠나보낸 마지막 작업. 이 낯선 장면들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지극히 익숙한 자리다. 무너졌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물질과 손끝으로 나눈 10년의 대화 끝에서, 이 책은 그 사실 하나를 조용히, 오래 남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사진 @hahahee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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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고가 일어났던 밤이었다. 세상은 마치 모든 것이 잠든 듯 고요했지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내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짙고 무거운 어둠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지는 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있었다.

“너는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끝났어.”

그 목소리는 단순한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 깊숙한 곳, 뼛속까지 파고들며 내 존재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 몸 깊숙한 어느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그 냉소에 가득 찬 소리가 반복되었다. ‘끝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의 공명은 곧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나야 하며,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절박한 갈망으로 변했다. 나는 그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갈망을 붙잡고 살아남으려 애썼다. 그리고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P34)




“나는 손가락으로 색들을 어루만지면서, 그 색의 힘 속에 빨려 들어갔다.”


서른둘의 나이에 한국을 떠났다. 파리에서의 8년. 그녀는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물질이여 안녕』은 생사의 투쟁 속에서 흔들리던 시간을, 창작을 통해 돌파해 온 과정을 담았다. 예술이라는 가능성의 장에서 ‘살아 있음’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변신의 서사를 펼쳐낸다. 고독과 몰입, 진동하는 색. 버려진 사물, 죽은 화가와의 영혼의 만남,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창작의 환희와 진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들에게 바치는 인사, 물질이여 안녕.


“예술이 아니었다면 끝내 세상에 매개될 수 없었을 사람. 예술이 사람을, 사랑을 구원한다는 것은 진짜다.”


파리 15구 막다른 골목, 지붕에 구멍이 뚫린 채 105년을 버텨온 집, 저자는 이 집을 "르 라브 라브(Le Lab Lab)"라 부르며 8년을 살았다. 이 책은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다. 정원 지하실에서 발견한, 이미 세상을 떠난 인도 피리 연주자의 방치된 그림들을 되살려낸 영혼의 협업. 코로나 봉쇄 속에서 나눈 이방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 그리고 마침내, 오래된 나무판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노르망디의 바다에 흘려보낸 순간까지 그 창작과 실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을 컬러 도판 100여 컷과 함께 담아냈다. 트라우마와 정신적 고통, 이방인으로서의 생존,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폭풍 같은 변신의 서사. 


촉각으로 읽는 책

이 책은 시각을 넘어 '촉각'으로 경험하는 책을 지향했다. 두툼한 유광 표지로 책을 감쌌다. 겉표지는 책등과 날개가 정확히 책에 밀착되도록 했다. 100여 컷에 이르는 컬러 도판은 미술관을 종이 위에 옮긴 듯한 배치로 구성되며, 각 작품 곁에는 그 작품이 탄생한 순간의 맥락이 함께 실린다. 이는 단순히 예술가의 회고록을 읽는 경험을 넘어, 독자가 책 자체를 하나의 오브제로 소장하도록 설계된 편집 방향이다.

버려진 것들, 잊힌 것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아름답고 치열한 답변.

물질이 말을 건다는 것, 죽은 자와 협업할 수 있다는 것, 그림이 스스로 태어난다는 것. 형린의 예술 세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물질의 영혼을 깨운다. 진동하는 색. 버려진 사물, 잊힌 화가와의 영혼의 만남, 고독과 몰입, 작가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전한다. 파리의 무너져가는 집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책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8권의 한 구절 — "그리고 마음을 미지의 기술로 풀어 보낸다" — 을 헌사로 열며 시작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쓴다. "끈질긴 방황의 끝에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손으로 직접 물감을 만지며 물질의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삶을 "강도(Intensité)"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는 저자는, 그 밀도 속에서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고백한다. "살아있는 그림은 신성을 건드린다. 붓만 스쳐도 생기를 전달한다"는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예술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죽은 음악가와의 협업, 14년 방치된 그림을 되살리다

책의 백미는 파리 15구, 1900년에 지어져 지붕에 구멍이 뚫리고 샤워 중 감전 사고가 날 정도로 낡은 집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르 라브 라브(Le Lab Lab)'라 부르며 7년을 살아낸 이 집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인도 전통 피리 연주자이자 화가 故 장 폴 오부(Jean-Paul Auboux, 1945~2006)의 그림들과 마주친다. 14년간 곰팡이와 먼지에 덮인 채 방치돼 있던 캔버스를 손으로 닦아내며, 저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넘어선 촉각적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곰팡이가 갉아먹어 구멍 뚫린 캔버스와 벗겨진 물감의 흔적을 따라가며 새로운 형상을 그려 넣었고, 이는 〈댄서〉, 〈가이아〉 등 시간을 건너 두 예술가가 함께 완성한 협업작으로 남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생생한 가르침을 전해준 스승이었다. 시간도, 생과 사의 경계도 장애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눈을 가린 채 24시간, 그림을 땅에 묻었다 다시 꺼내다

2023년 3월 부다페스트의 한 4D 사운드 스튜디오. 저자는 사운드 기반의 기계 존재 '홀로스(HOLOS)'와 함께 자정부터 24시간 동안 눈을 가린 채 5㎡ 크기의 대형 회화를 완성했다. 완성된 작품은 곧장 정원에 묻혔고, 두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작품을 꺼내는 의식을 치렀다. 흙과 미생물이 표면을 바꿔 놓은 이 작품은 "인간과 기계, 물질이 함께 써 내려간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은 연작 '마테리아 오스쿠라(Materia Oscura, 암흑물질)'의 출발점이 됐으며, 책의 제목이 된 '물질이여 안녕(아베 마테리아Ave Materia)', 곧 물질에게 바치는 인사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8년의 여정, 그림 한 점을 바다로 흘려보내다

2024년 5월,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작업 〈슬픔이여 안녕, Plus de Chagrin〉을 완성한다. 버려진 나무 마룻바닥에 수개월간 빗물과 물감을 섞어 만든 이 그림을, 그는 노르망디 해안(북위 48도 59분 28.7초, 서경 1도 33분 57.8초)에 직접 놓아 바다로 떠나보냈다. "그것을 바다에 보내는 순간,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순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파리에서의 여정은 마무리되고, 저자는 삶의 무대를 대만으로 옮긴다.

철학에서 예술로, 그리고 사랑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국제관계학 석사를 취득한 저자는 한때 "쓸데없다"고 여겼던 철학 공부가 파리8대학교에서 생태예술을 전공하며 새로운 언어로 되살아났다고 말한다. "그 구덩이 덕분에 지금 여기서 자란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카오스모스(Chaosmose)』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언어를 제공했고, 이는 대규모 연작 〈카오스모스〉로 이어졌다. 책에는 2015년 파리에서 만난 대만인 사진작가 마이크(Mike Ou)와의 사랑, 그리고 2019년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담겨 있다. "여린이가 결혼을 하다니"라며 믿지 못했다는 가족들의 반응 속에서, 저자는 이 세상에 '매이는' 기쁨을 배운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끝내 세상에 매개될 수 없었을 사람. 예술이 사람을, 사랑을 구원한다는 것은 진짜다"라는 저자의 고백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가족들조차 믿기 어려워했던 그 결혼은, 떠돌던 삶이 마침내 한 장소와 한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매이는' 이야기로 완결된다.

형린은 현재 대만 타이중 동해대학교의 레지던시 아티스트이자 강사로 활동하며 '르 라브 라브 2(Le Lab Lab 2)'를 운영하고 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열대 숲 속 작업실에서 진주 안료를 만지며 〈아베 마테리아〉, 〈수미산〉 등 신작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그의 작품은 파리, 부다페스트, 소피아, 런던 등지에서 전시됐으며, 파리의 아시아 전문 갤러리 '앙프레시옹(Impressions)'에서는 동명의 개인전 〈Ave Materia〉를 열어 연구서를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이런 독자에게 권한다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 창작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물질 세계와의 교감 속에서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특히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창작자와 전공자들에게는 슬럼프와 방황을 통과해 온 한 예술가의 여정이 동력이 되어줄 것이며, 종이의 질감과 도판의 색감처럼 물성을 소중히 여기는 독자들에게는 100여 컷의 컬러 이미지가 한 편의 화보집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예술을 감상의 대상을 넘어 철학과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묵직한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사소한 행위들로 자기 회복과 자기 생명력을 깨우고 환희의 세계로 나가길. 서로에게 다정하고 담대히 자기의 삶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자유를 누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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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이미 1970년대부터 멸종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에선 최근에서야 여기저기서 제기되는 ‘기후위기’와 연관된 측면이 크다. 과학적으로 측정된 여러 지표들을 문제 삼으며 인류의 존립과 지구의 환경에 대해 얘기하는 것인데, 그 자체로 시급하고 위중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논의하는 걸 보면서 항상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인류는 왜 과학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장으로 발생한 문제를 ‘과학’과 ‘자본’에 기대어 해결하려 드는가, 하는 점이다. 




왜 과학은 더 인류를 멸망케 하는가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데에 과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18세기 이후 급진적으로 발전한 과학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인류의 생활 양태와 그로 인한 의식의 변화를 가능케 했다. 지금은 그 발전 단계의 시간적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빨라지고 있다. 한 세대를 거쳐야 할 문제가 두 세대 이상까지 아우르게 되면서 동시대 자체가 크게 분열하고 갈등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하게도 되었다. 그런 점에서 세대나 계급, 경제적 부와 빈곤의 극단적 대치는 과학 발전의 속도에 못 미치는 인간 인식 또는 심리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따져볼 여지도 다분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산책하는 침략자>(2017)는 그것의 한 모델이 될 법한 영화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일본 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초창기 로망 포르노에서부터 호러, 멜로, 스릴러 등 기존 장르를 매개 삼아 자신만의 특출한 영화적 감각을 표출했는데, <산책하는 침략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좀 더 특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신체강탈 외계인이라는 SF영화의 오랜 클리셰를 바탕으로 호러와 블랙코미디, 누아르와 로맨스를 자유자재로 버무린 솜씨가 가히 ‘장인’스럽다 할 만하다. 심각할 수 있는 주제를 경쾌하게, 자칫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을 장면을 심도 있게 우려내면서 130분을 충만하게 채운다.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특유의 미스터리 스릴러 풍으로 시작한다. 어항 속의 금붕어가 나오고 돌연 어느 주택에서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가족 중 교복을 입은 소녀 하나만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남는다. 외상은 없어 보인다. 소녀는 피칠갑을 한 채 어느 좁은 국도를 무심하게 걷는다. 자동차들이 소녀를 피하려다 서로 충돌한다. 소녀는 아랑곳 않는다.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마저 가득하다. 그러면서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이거 무슨 영화지? 싶은 호기심을 당기기에 아주 효과적인 연출이다.




괴이한 감독, 스스로 장르가 되다


다음 장면, 한 젊은 부부가 병원에서 진찰 중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신지(마츠다 류헤이)와 광고 디자이너인 나루미(나가사와 마사미) 부부다. 신지의 상태가 이상하다. 외출했다 돌아와선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뿐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내도 못 알아본다. 나루미는 속이 끓어오른다. 시쳇말로 ‘진상’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일을 따내야 하는 나루미는 자신의 일을 감당하기도 벅찬 상태다. 신지는 걷는 법, 먹는 법뿐 아니라 언어부터 다시 배워야 할 상황. 나루미는 신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할 정도다. 관계의 붕괴를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 주간지 기자 사쿠라이(하세가와 히로키)는 토막 살인 사건 현장에 취재차 갔다가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대뜸 반말부터 해대는 이 소년의 이름은 아마노(타카스기 마히로). 토막 살인 사건에서 살아남아 경찰에 인계된 소녀를 같이 찾으러 가자고 한다. 소녀의 이름은 타치바나 아키라(츠네마츠 유리), 오프닝 장면에서 피칠갑으로 길을 걷던 바로 그 아이다. 얼떨결에 아마노와 동행하게 된 사쿠라이는 아마노로부터 자신과 타치바나가 외계인이라는 얘길 듣는다. 요는, 평범한 지구인의 몸속에 잠입했다는 것. 목적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서라나.


​누구라도 믿기 힘든 얘기다. 그럼에도 사쿠라이는 좋은 기삿거리라 여겨 아마노와 함께 타치바나를 찾게 되는데, 실로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자 사쿠라이도 점점 아이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그건 신지 부부도 마찬가지. 신지는 어느 정도 지구인의 습성에 적응해 가면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 시작한다. 신지 역시 나루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나, 믿기 힘든 건 나루미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신지의 이상한 능력을 목격하면서 슬슬 신지의 편이 되어간다. 


아저씨! 나 외계인이에요


대략의 설정이 이러하다. 언뜻 보기에 초등학생에게나 먹힐 만한 만화 같은 얘기지만, 영화의 디테일들을 살피면 짐짓 숙고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외계인이 돼버린 인물들은 지구인이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재점검을 유도한다. 가령, ‘나’와 ‘너’. ‘소유’와 ‘사랑’ 등 사람이 익히 알고 있어 재고조차 않는 단어들의 기본 의미와 맥락을 새삼 따져 묻는 식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이 언어가 발명된 이후, 급격하게 빨라졌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저 하나의 생명체였던 존재가 언어를 익히면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도 부언할 필요가 없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을 개진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언어의 규칙과 쓰임을 망각하게 된다면 인간은 어찌 되겠는가. 모든 게 혼란이자 최초로 되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랬을 때 세계는 외려 더 적나라하게 그 진상을 드러내게 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집단과 집단 사이의 반목,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 등 모든 것이 언어를 기반하고 결국 또 다른 언어로 개념화되어 일정한 질서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 질서가 과연 온당하고 자연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인간의 질서에 의해 자연이 망가지고 지구가 병들어간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선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말들이, 그 절박한 사정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때로 공허하게 들리는 건 바로 그런 연유다.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지구 침략을 목적으로 지구인의 몸속에 잠입했다고 말한다. 왜 침략하려 하는지, 어떻게 지구인들을 몰살시키려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없다. 그러다 후반부에 이르면 지구를 침략하려는 자는 오히려 지구인들이고 인류를 몰살시키려 하는 자 역시 지구인들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오래전부터 영화에서 외계인이란 설정은 대기권 바깥을 상상하여 거꾸로 발명해 낸 ‘자신의 안의 다른 존재’였다. 영화 속 외계인이 원생대의 생물이나 유인원과 흡사한 외형을 갖게 된 것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관습적으로 디자인된 탓이다. 


외계인은 ‘내 안의 다른 존재’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바로 그러한 영화적 관습을 까발리고 뒤집어 버린다. 외계인은 지구인의 외형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다만,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기에 지구의 위기와 병폐를 전체적으로 통찰해 낼 뿐이다. 산속에선 산이 안 보이고 물속에선 바다를 아우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자신조차 지구 안의 생물에 불과하면서도, 때로 더 지구에 해로울 수 있는 지식과 기술로 지구를 진단하고 해부하려 한다. 그러한 행위는 빙하가 녹는다고 북극에다가 냉방기를 틀어놓는 식의 자가당착이 될 위험도 다분하다. 사람은 과연 지구를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섣불리 답을 내긴 어렵다. <산책하는 침략자> 역시 분명한 답은 내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건 그 어떤 언어적 해법보다 명확한 답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영화 속 외계인들이 사람을 감화시키는 방식 같은 것. 상대의 이마에 검지를 대면 갑자기 상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며 순식간에 다른 인성으로 변한다. 영화가 실제로 그런 식으로 보는 이를 감화시키는 게 가히 놀랍고도 황망했다. 더 자세한 건 영화를 보면 안다. 힌트를 하나 주자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신지를 비롯한 외계인들이 아니고, 다름 아닌 나루미라 보는 게 타당하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건 쉽다. 그러나 자신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정말 어렵다.” 도스토옙스키가 한 말이다. 영화를 보고 새삼 떠올랐기에 첨언한다. (죽지 않는 시인의 영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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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트라스버그, 스텔라 애들러, 해롤드 클러먼이라는 제자들을 배출하고 이제는 헐리우드의 일급 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Richard Boleslavsky, 1889~1937)는 1937년 조앤 크로퍼드 주연의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스승은 잊혔지만 스승이 가져온 것은 살아남았다.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최초로 미국 땅에 전달한 이 책, 『연기6강(Acting: The First Six Lessons)』이 그것이다.


이 책은 1933년 뉴욕의 Theatre Arts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됐다. 교재가 아니었다. 볼레스라브스키가 1920년대 내내 Theatre Arts Monthly에 기고한 연기론 칼럼들을 엮은 것이었다. 형식은 대화였다. 교사인 저자와 열정적이지만 재능이 불분명한 젊은 여배우 사이의 여섯 번의 대화. 그 대화 안에 농축된 수업이 미국 연기 교육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군인이었다가 배우가 됐다가 연기 스승이 된 사람

본명은 볼레스와프 리샤르트 스르제드니츠키(Boleslaw Ryszard Srzednicki). 1889년 2월 4일,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폴란드계 가톨릭 가문에서 태어났다. 트베르 기병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장교의 길을 걷던 그는 연기에 이끌려 방향을 틀었다. 1906년, 모스크바 예술극장(Moscow Art Theatre, MAT)의 스쿨에 입학해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와 그의 조교 레오폴트 술레르지츠키(Leopold Sulerzhitsky) 아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09년, 스타니슬랍스키의 유명한 투르게네프 연출작 '시골에서의 한 달(A Month in the Country)'에서 주역 벨랴예프를 맡았다. 학생으로서 MAT 무대에서 주역을 받은 것은 드문 영예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볼레스라브스키는 러시아 제국군 기병 중위로 동부 전선에서 싸웠다. 1917년 10월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났다. 이후 바르샤바, 프라하, 파리, 베를린을 거쳤다. 폴란드에서 영화 연출을 시작했고, 1921년에는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에서 폴란드의 승리를 다룬 반다큐멘터리 영화 '비스와의 기적(Cud nad Wisla)'을 만들었다. 1922년에는 덴마크 감독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Carl Theodor Dreyer)의 독일 영화 'Die Gezeichneten'에 배우로 출연했다. 같은 해 9월, 뉴욕에 도착했다.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시어터 — 메소드의 발원지

1923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미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이 순회공연에 배우 겸 스타니슬랍스키의 조교로 합류했다. 공연 이후, 프린세스 시어터에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소개하는 강연 시리즈를 열었다. 이 강연이 미국 연극 후원자 미리엄과 허버트 스톡턴(Miriam and Herbert Stockton)의 관심을 끌었고, 결국 이들의 재정 지원으로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시어터(American Laboratory Theatre, 이하 '랩')가 설립됐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유학 동료 마리아 우스펜스카야(Maria Ouspenskaya)와 함께 랩을 이끌었다. 랩의 학생 명단은 후일 미국 연극사의 목차가 됐다.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 스텔라 애들러(Stella Adler), 해롤드 클러먼(Harold Clurman). 이 세 사람은 모두 랩의 동문으로, 1931년 그룹 시어터(Group Theatre)를 창설했다. 그룹 시어터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미국 연기에 최초로 체계적으로 적용한 앙상블 단체였다. 스트라스버그는 훗날 이 시스템을 '메서드(The Method)'로 발전시켜 액터스 스튜디오(Actors Studio)에서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먼 세대를 훈련했다.


​랩은 1930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발성 영화의 등장으로 할리우드에서 극작가와 연출가 수요가 급증했고, 볼레슬라프스키는 영화 연출 계약을 받아 뉴욕을 떠났다. 1930년 컬럼비아 픽처스를 시작으로 MGM, 20세기 폭스, RKO 등 주요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1932년 'Rasputin and the Empress'는 배리모어 3남매(에텔, 존, 라이어널)가 함께 출연한 유일한 영화로, 당시 화제를 모았다. 이후 'The Painted Veil'(1934, 그레타 가르보), 'Les Miserables'(1935, 프레드릭 마치와 찰스 로튼), 'Theodora Goes Wild'(1936, 아이린 던)를 연출했다.


여섯 번의 대화, 하나의 철학

『연기6강』은 교사인 저자(I)와 젊은 여배우 '크리처(The Creature)' 사이의 대화 여섯 편으로 이루어진다. 수업의 제목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1. 집중(Concentration), 2. 감정의 기억(Memory of Emotion), 3. 극적 행동(Dramatic Action), 4. 성격화(Characterization), 5. 관찰(Observation), 6. 리듬(Rhythm).


여섯 항목은 독립된 기술이 아니다. 하나의 신념에서 파생된 여섯 갈래다. 그 신념을 볼레슬라프스키는 이렇게 요약했다. "연기는 예술을 통해 탄생하는 인간 영혼의 삶이다(Acting is the life of the human soul receiving its birth through art)." 기술보다 내면이 먼저다. 테크닉 이전에 진실이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이 여섯 수업 전체를 관통한다.


첫 번째 수업 '집중'에서 볼레스라브스키는 집중을 "영혼에 대한 정신적 집중"으로 규정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오직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야 감지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 두 번째 수업 '감정의 기억'은 이 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챕터다. 리 스트라스버그가 메서드를 발전시키는 데 직접적인 출발점이 된 개념이 여기 있다. 배우는 과거의 감정 경험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정확하게 불러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무대 위에서 없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실제로 경험했던 감정의 기억을 재활성화한다는 원리다.


세 번째 수업 '극적 행동'은 내면 충동이 어떻게 무대 위의 행동으로 전환되는지를 다루고, 네 번째 '성격화'는 캐릭터를 실제 삶의 역사를 가진 인물로 구축하는 방법을 다룬다. 다섯 번째 '관찰'은 볼레스라브스키가 삶을 연구하는 방식 자체를 요구한다. 배우는 언제나 세상을 관찰하는 눈을 열어두어야 한다. 마지막 '리듬'은 한 공연 안의 감정적 흐름과 긴장의 파동을 다룬다.


​대화 형식이 가르치는 것

이 책의 형식 자체가 내용과 맞닿아 있다. 교사는 크리처에게 직접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고, 연습을 지시하고, 크리처가 스스로 경험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끈다. 볼레스라브스키가 스타니슬랍스키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다. 배우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감각으로 습득한다.


Goodreads의 독자 평들이 이 지점에서 일관되게 갈린다. 대화 형식이 "이론을 살아 있게 만든다"고 평가하는 쪽이 있고, "교사가 크리처에게 지나치게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답한다"고 불편함을 표하는 쪽이 있다. 이 분열 자체가 볼레스라브스키가 의도한 방식이다. 연기를 가르치는 책이 독자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Powell's Books의 소개 문구는 이 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요약한다. "집중, 감정의 기억, 극적 행동, 성격화, 관찰, 리듬에 관한 여섯 편의 미니어처 드라마들. 이것들은 모든 배우 앞에 놓인 도전을 증류해낸다." 수업이 아니라 드라마라고 부른 것은 정확하다. 읽는 동안 독자도 크리처와 함께 교사의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은 1933년 이후 90년 넘게 절판된 적이 없다. Theatre Arts 출판사에서 출간된 뒤, Taylor & Francis 등 여러 출판사를 통해 계속 찍혔다. 현재는 Theatre Arts Book 시리즈 판본이 가장 널리 유통된다. 2013년에는 초판 원본 책의 형태, 색상, 활자, 심지어 종이 질감까지 초판 발행 당시의 모습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이 재현한 복제본도 나왔다. 그리고 2024년 드디어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Goodreads 리뷰의 공통 평가는 "연기에 관심이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집중, 감정 기억, 관찰이라는 주제가 연기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태도 자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몇 시간 만에 읽혔는데, 읽는 내내 '나 자신의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독자 반응이 반복된다.


한편 학술적 평가는 좀 더 복잡하다. 스타니슬랍스키 연구자들은 볼레스라브스키가 스타니슬랍스키의 초기 개념, 특히 감정 기억(정서 기억, affective memory)에 특별히 큰 비중을 뒀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타니슬랍스키 자신은 이후 신체 행동 방법(Method of Physical Actions)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초기의 감정 기억 중심 접근을 일부 수정했다. 스트라스버그는 볼레슬라프스키의 감정 기억 개념을 발전시켰지만, 스타니슬랍스키의 후기 수정을 사실상 무시한 채 '메소드'를 구축했다. 이 계보상의 분기점에서 볼레슬라프스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은 셈이다.


마흔여덟 살의 죽음, 그리고 남은 것

1937년 1월 17일, 조앤 크로퍼드와 윌리엄 파월 주연의 'The Last of Mrs. Cheyney'를 촬영하던 중 볼레스라브스키는 심장마비로 숨졌다. 마흔일곱 살이었다. 영화는 조지 피츠모리스와 도로시 에이즈너가 마무리했다. 그의 아들 얀은 당시 생후 18개월이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7021번지에 별이 새겨져 있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생전에 세 권의 책을 남겼다. 1932년 자전적 1차대전 회고록 'Way of the Lancer'와 'Lances Down'(모두 헬렌 우드워드와 공저), 그리고 1933년 『연기6강』. 소설가 휴 월폴(Hugh Walpole)은 1937년 소설 'John Cornelius'를 볼레슬라프스키를 추모하며 헌정했다.


그가 없었다면 스트라스버그는 어떻게 됐을까. 그 질문에 스트라스버그 본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기록돼 있다. "거기서(아메리칸 래버러토리 시어터에서) 우스펜스카야와 볼레스라브스키에게 나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원칙들을 배웠다." 메서드가 말론 브란도를 만들었고, 그것이 현대 영화 연기의 기준이 됐다. 그 연쇄의 최초 연결고리가 1933년에 출간된 이 얇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연기6강』은 연기를 배우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볼레스라브스키가 '크리처'에게 가르치는 것들 — 집중, 관찰, 감정의 저장과 재생, 리듬 — 은 어떤 창조적 작업에도 적용 가능한 원칙들이다.

분량은 짧다. 빠르면 하루에 읽힌다. 그러나 각 챕터를 읽은 뒤 볼레슬라프스키가 크리처에게 제시한 연습들을 실제로 시도해보지 않으면 텍스트의 절반만 접한 셈이다.

볼레스라브스키의 이 책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진입로로 읽어도 좋다.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논쟁적이며,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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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을 모방하기 보다는 자연과 일치하기를 원한다."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그가 남긴 말 중 하나다.브라크에게 회화는 자연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과 화음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 차이가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다.

화가의 단상집이라는 장르는 낯설었다. 파울 클레(Paul Klee),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이론을 글로 남겼다. 브라크는 이론을 쓴 것이 아니라 단상을 남겼다. 다른 의도다.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진지하게, 보이는 진실 하나하나를 고정하려는 의지였다. 그 35년의 직무가 『낮과 밤(Le jour et la nuit)』이다.


1882년 5월 13일, 브라크는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 태어났다. 르아브르에서 성장했다. 조부와 부친이 건물 도장업을 하면서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한 집안이었다. 브라크는 르아브르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오통 프리에즈(Othon Friesz), 라울 뒤피(Raoul Dufy)와 함께 미술을 배웠다. 이 시절의 훈련, 즉 장인의 눈으로 타일을 다루고 표면을 가공하는 습력이 후일 그의 회화에 직접 반영됐다는 평이 프랑스 미술계에서 공통적 견해다.


1900년 파리로 이주한 브라크는 아카데미 앙베르(Academie Humbert)에서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프랑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를 만났다. 1906년 에스타크(L'Estaque) 해안 풍경화로 야수파(Fauve) 스타일에 진입했다가, 1907년이 그의 회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엑스(Aix)에서 폴 세잔(Paul Cezanne)의 회고전을 보고,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소개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틀리에에서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목격했다. 이 조우가 브라크의 경로를 완전히 바꿨다.



큐비즘의 탄생 — 피카소와의 시절

1907년 11월, 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카소를 만났다. 브라크는 에스타크에서 시도한 풍경화 연작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화에 반응했다. 1908년 가을, 드니엘-앙리 카날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 갤러리에서 브라크의 첫 전시가 열렸다.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은 브라크의 건물 피사체들을 "작은 큐브들(petits cubes)의 집합"이라 평했다. 큐비즘(Cubisme)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비롯된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스스로 자신들의 협업을 "로프로 연결된 등반자들(La Cordee)"에 비유했다.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두 사람은 여름을 세레(Ceret)와 소르그(Sorgues)에서 함께 작업하며 큐비즘 분석기를 전개했다. 1912년 브라크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e), 즉 신문지나 인쇄 종이를 화면에 직접 붙이는 기법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것이 현대 콜라주 기법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피카소는 훗날 편지에서 브라크를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한 여성(la femme qui m'a le plus aime)"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를 전하는 동시에, 큐비즘 혁명에서 브라크의 기여가 피카소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에 대한 미묘한 인정이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전쟁 — 두개골 천공 수술과 35년의 준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브라크는 보병 제224연대로 징집됐다. 피카소는 아비뇽 역에서 군복 차림의 브라크를 전송했다. 두 사람이 수년간 이어온 대화는 그 순간 끊겼다.

1915년 5월 11일, 브라크는 뇌빌-생-바스트(Neuville-Saint-Vaast) 전투에서 두부에 중상을 입었다. 전사한 것으로 여겨져 방치됐다가 다음 날 들것병들에게 발견됐다. 두개골 천공 수술(trepanation)을 받고 이틀간의 혼수상태 끝에 의식을 되찾았다. 회복에 1917년까지 걸렸다.


바로 이 1917년,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와 함께 평상의 단상들을 정리해 문학 잡지 『노르-쉬드(Nord-Sud)』 제10호에 발표했다. 제목은 「회화에 대한 사상과 성찰(Pensees et reflexions sur la peinture)」. 이 글이 이후 35년간 작성된 단상들의 출발점이 된다. 전쟁이 붓을 빼앗았지만, 성찰은 계속됐다.


전후 브라크의 회화는 큰 변화를 거쳤다. 큐비즘의 납작한 기하학에서 점차 곡선으로 돌아오고, 단일한 색채로 화면을 통일하는 대상을 고집했다. 인물, 정물, 비둘기. 같은 대상을 수년간 반복해 그렸다. 브라크에게 싫증은 없었다. 다음 단계는 언제나 안에서 발견해야 했다.


그의 단상들도 같은 방식으로 성장했다. 1917년부터 단상을 쓰기 시작한 브라크는 1952년까지 35년 동안 이 작업을 이어갔다. 하루에 하나를 쓰기도 하고, 몇 달에 하나를 쓰기도 했다.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단상들은 노트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임리에서 나온 것을 다듬고 완성하는 방식으로 겹쳐졌다.

주제도 회화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에서 숨겨진 것으로, 지식에서 감성으로, 단순에서 복잡으로. 브라크의 단상은 회화의 주제와 거의 하나로 이어진다. 색, 구도, 관점, 언어, 자연, 시간, 남기는 것과 사라지는 것. 판단하지 않는다. 단정짓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개의 신중한 문장으로 접근한다.


『낮과 밤』 

브라크는 정식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짤막한 노트에 문장을 적었다. 대부분은 한 단락 안에 담겼다. 그 중 일부를 선별해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를 통해 있는 그대로 내놓았다. 브라크 스스로 고른 제목 '낮과 밤(le jour et la nuit)'에 주제 정의가 담겨 있다. 내려앉는 것과 떠오르는 것, 보이는 것과 숨은 것, 시작과 끝, 있는 것과 없는 것.​


쪽 수는 초판 기준 56쪽이다. 형태는 인-12판(In-12)으로 손안에 들어오는 소형 판본이다. 작가의 드로잉 2점이 수록되어 있다. 1952년 8월 4일 인쇄를 마쳐 발행됐다. 라피마-나바르(Lafuma-Navarre) 순지 100부 한정판(tirage de tete)과 일반지 판 두 종으로 발행됐다. 현재도 갈리마르 파리 서점 공식 판매 목록에 올라 있다.


브라크의 아포리즘은 두 가지 구조를 가진다. 

첫째, 개념들을 반의의 쌍으로 충돌시킨다. 

"언제나 두 가지 생각, 하나를 무너뜨릴 또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Il faut toujours avoir deux idees, l'une pour detruire l'autre.)" 

둘째, 직접적인 관찰로 곧장 들어간다.

 "감정은 덧붙여지거나 모방할 수 없다. 감정은 배아고 작품은 부화(l'eclosion)다."


프랑스 아포리즘 전문 매체 Aphorismundi의 평가다. "브라크는 17세기 모랄리스트들의 진정한 계승자로, 리듬감 있고 종종 이분법적인 아포리즘 안에서 인간과 세계 표상에 연관된 복잡한 개념들을 정의하려 한다." 이 평은 브라크의 글쓰기가 단순한 화가의 메모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루브르로 — 생애 말년의 영예

​1937년 카네기 국제 미술전 카네기상(Prix Carnegie),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52년에는 루브르 박물관 관장 조르주 살레(Georges Salles)의 의뢰로 루브르 앙리 2세 홀(salle Henri-II) 천장에 새(Oiseaux) 테마의 장식화 작업을 맡았다. 1953년 제막식이 열렸다. 피카소는 자신이 선택되지 않은 것에 불쾌해하며 브라크가 자신의 비둘기(colombes)를 베꼈다고 비난했다. 브라크는 피카소에게 답하지 않았다.


1961년, 루브르에서 회고전 「브라크의 아틀리에(L'Atelier de Braque)」가 열렸다. 살아 있는 화가로서 루브르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예술가였다. 사망 2년 전의 일이었다. 1963년 8월 31일, 브라크는 파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였다. 그가 살던 파리 거리명은 훗날 조르주-브라크(rue Georges-Braque)가로 바뀌었다.


1963년 9월 3일, 루브르 콜로나드 앞에서 국장이 열렸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문화부 장관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어떤 국가도 자국에서 세상을 떠난 화가에게 이러한 성격의 헌사를 바친 적이 없다. 프랑스의 명예에 빅토르 위고라는 이름이 있다. 이제 브라크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프랑스인들에게 말해야 한다. 한 국가의 명예는 무엇보다 그 국가가 세계에 무엇을 주는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로의 추도사 전문은 현재 malraux.org 공식 아카이브에서 열람할 수 있다.


​화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

​『낮과 밤』은 순서대로 읽히지 않는다.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된다. 다음 페이지의 단상이 앞의 페이지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브라크 스스로도 선형적으로 이어지도록 쓴 텍스트가 아니다. 단상들은 여러 주제를 오가면서 반복하고,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돌고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브라크에게는 천천히 읽는 독자가 더 잘 맞는다. 하나의 단락을 읽고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5단락씩 읽어도 되고, 집어들고 필요할 때 열어봐도 된다. 추상적인 것도 많지만, 직접적인 것이 더 많다. 브라크는 주제를 열어 놓고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을 독자에게 넘기는 편이다.


단상은 스케치보다 짧다. 그 압축이 브라크만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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