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발로통의 그림을 본다. 심장 박동마저 포착하려는 집요함,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드러내려는 불가능한 시도에도 자기기만이나 연민 따윈 없다. 현재의 어둠을 알아버린 자만이 정확함을 추구한다. 예술은 환상이 아니라 상상으로 가능하다. 상상이란 곧 이성의 다른 이름이다.
펠릭스 발로통은 세 편의 소설과 여덟 편의 희곡을 썼다. 무대 세트 디자인, 사진, 그리고 다수의 조각 작품도 남겼다.
그의 소설 #유해한남자 (La vie meutrière)는 주변 사람들을 비극적인 사고로 죽게 만든 젊은 미술 평론가 자크 베르디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화 <L'Assassinat(살인)>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유머를 담은 삽화를 소설에 직접 그려 넣기도 했다.
발로통의 친구 뵈이야르(Vuillard)는 1893년에 [Théâtre de l’Œuvre]라는 극단을 설립했고, 그곳에서 발로통을 비롯한 '나비파'가 세트와 팜플렛 등을 디자인했다. 발로통 본인은 직접 희곡도 썼으며, 1904년에 그의 희곡 <매우 강한 남자>가 파리의 [Thétre de Grand Guignol]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1899년 코닥 카메라를 구입한 발로통은 여름휴가, 가정의 실내, 그리고 친구 방문 같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냅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작업실로 돌아와서는 이 사진들을 모티브로 현실의 기이하고 허구적인 버전의 회화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1904년에 몇몇 청동 누드를 제작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조각을 실험하기도 했다.
발로통의 이름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예술사의 그림자 속에 남아있지만, 그의 유산은 그의 명성 이상으로 더 광범위하다.
서사 서스펜스의 대가인 그는 1897-1899년의 부르주아 가정의 실내장면 시리즈에서 금지된 사랑과 상실이라는 사적인 세계 위에 관음적인 렌즈를 놓는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발로통의 실내 장면에서 보여주는 서사적 이미지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반향을 일으키는 모호하고 불분명한 서사와 유사하다. <붉은 방>과 <방문>처럼 입체감이 없는 실내 장면들은 에드워드 호퍼를 예고하듯 극도로 객관적인 거리두기의 방식(임상적 분리)으로 그려졌다.
연극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그의 '시각적/서사적(영화적) 스타일'은 심지어 알프레드히치콕 의 영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그의 독특한 색감은 웨스앤더슨 의 영화 세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이처럼 "지극히 독특한 발로통"의 흔적은 결국 20세기 예술과 문화의 전개 속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발로통의 그림을 보면 가장 안락한 공간 속 두 남녀의 다정한 포옹조차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전하고 있는, 일종의 수수께끼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발로통 그림은 우리 안의 탐정을 자극한다고 썼는데, 이 소설은 탐정의 돋보기 안경이나 마찬가지 일 듯하다. 발로통의 그림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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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의 소설 <유해한 남자>의 자크 베르디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살인자의 운명에 대항해 자기 삶의 종식을 기획한다. 그는 석양의 그림자 살인으로 다음 세기 전무후무한 정오의 태양 살인의 전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