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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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  책 이름이다.

시사저널에서 표현의 자유를 찾아 독립한 사람들이 만든 시사잡지 '시사인'이 첫번째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점점 더 양극화되고, (다양성은 유지하는)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이 심화될수록,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양극단으로 나뉠 것 같다. 한 편에는 이렇게 혼돈스럽고 살기 힘겨운 시대를 진단하고,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통찰을 주는 훌륭한 읽을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한 편에는 이 시대를 혼돈의 시대가 아니라고 여기고, 기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시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꽤나 지독한 혼란의 시대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들의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된 사고의 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저자들은 생태학, 정신의학,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적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들의 강연을 모은 책이다.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많이 듣는 관용구이지만, 사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개념들의 조합이다. 지식인들이라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고, 전문지식은 곧 권력 혹은 자본으로부터의 유혹의 대상이다. 이 지식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권력과 자본의 방향과 일치시키기만하면 훨씬 풍요롭고 안락하게 세상을 살아갈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한 개인의 안락함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시대이기에 그렇지 않다고 해서 크게 흠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시대에 저항한다. 그것이 정의롭지도 않고, 장기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태어나기를 그렇게 정의롭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있을 뿐이다.)

 

녹색평론 출판인 김종철, 정신과의사 정혜신, 경제학자 김수행, 사회인류학자 조한혜정, 역사학자 서중석.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이 시대를 '위기'라고 정의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위기에 가장 근본적인 진단을 하고 있는 분은 김종철씨의 생태학적 시각이라고 본다. 그는 현재의 "자본의 방종과 냉정"에 대해 "농적 가치"로 돌아간다. 농업적 가치? 우리가 흔히 비웃는 그 농업적 근면성? 맞다. 그 농업이다. 그의 시각은 여섯개의 강의 중에 가장 촌스럽고,가장 이상적이고, 가장 멀리 와 있다. 하지만 그 의아함을 뒤집어 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참 쉽게 읽힌다. 강연을 기초로 만들어졌으므로 구어체의 문장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연자 여섯 외에 또 다른 여섯 명의 훌륭한 바람잡이들 (이문재, 김어준, 정태인, 우석훈, 하승창, 정해구 씨)은 독자들이 궁금해 할 내용을 잘도 물어봐 준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진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두명은 아주 훌륭하게 그것들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있다. (책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까 조심스럽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창의적인 표지 디자인이다.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책 제목을 기막히게 시각화 했다. 위의 책 표지를 보자. 두 팔을 벌린채 암울하게 추락하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있다. 하지만, 책 제목대로 거꾸로 돌려보면? 추락하던 남자는 곧바로 점프하며 환호하는 희망이 가득한 남자로 바뀌게 된다.

"거꾸로~! 희망인 것이다~!" 표지 디자이너는 이러한 생각으로 디자인을 했을 것이다. 기막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뒷면이다. 뒷면에도 이 추락하는 남자의 그림자가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다. 디자인 컨셉에 대한 추론이 맞다면 뒷면의 작은 남자는 거꾸로 돌려 환호하는 모습으로 디자인 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책을 다 읽으면, 절망 속에 추락하는 남자가 책의 내용에 의해 희망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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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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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의 주된 관심사는 "신자유주의와 일상의 비루함"이다.

무슨 무슨 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이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영향을 미치는가가 궁금한 것이다.

확실히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고, 정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의 일상은 비루해졌고, 우리의 정신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4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오락가락 하면서 나의 눈길을 끌었다.

비루한 일상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바로 소설이다.

게다가 주인공들은 노숙자, 백수, 반공 보수 할아버지, 불량한 청소년 등 소위 말하는 사회의 주류에서 열외로 벗어난 사람들이란다.

이들이 엮어내는 아수라장을 한번 엿보고 싶은 마음에 냉큼 구매했다.

 

숨가쁘게 넘어가는 300여 페이지 속에 있는 기발한 구성과 독특한 상상력, 감칠맛나는 문장 구사능력.

상상을 극단으로 밀어부치는 자신감은 대단한 과장법으로 승화되었고, 일종의 컬트 소설로 완성되었다.

등장 인물들의 비루한 일상과 개연성 있는 에피소드가 1부를 구성하고 있고,

2부는 승자독식에 패자부활전 없는 사회를 지독한 난장판으로 표현한다.

 

이런 구성과 내용은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물론 <퀴즈쇼>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고,

<열외인종 잔혹사>가 한겨레 신문사에서 상을 받고 한겨레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점은 유사한 점이자 서로 대비되는 차이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신문사의 선호를 떠나서 퀴즈쇼 보다는 열외인종 잔혹사를 더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속 분위기는 12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캐비닛>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다소 기괴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소설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수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자유로워야 할 소설가들의 정신에 억압적인 사회분위기가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독자들이 과장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정도로 이상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일까?

하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짖굳은 아수라장은 2009년 여의도 모 처에서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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