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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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생 소설가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꽤나 유명해서 나도 이 소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다, 작가의 이름도 소설의 제목도 표지도 뭔가 가벼워 보였다. 그러지 않기로 했지만, 베스트셀러에는 손이 가지 않는 괜한 오만(?)까지 은근슬쩍 작용해서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흔한 연애 소설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그 가벼워 보이는 외양과 베스트셀러라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작용하였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다녀올 일이 많은 나로서는 기차에서 읽을 가벼운 읽을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띈 이 책을 기차에서 펴 든 즉시 나는 나의 모든 예측이 지독한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가볍지 않은, 그렇다고 무겁게 풀어 내지도 않은 이 소설과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의 힘은 그 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하긴, 1940년생 박상륭씨가 1975년 '죽음의 한 연구'를 발표했으니, 1980년생 김애란씨가 2011년에 삶과 죽음에 대한 훌륭한 소설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삶과 죽음에 대한 기막히게 설정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단순하지만 중층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지닌 '상황'의 에너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소진되지 않고, 이야기를 밀어주는 강한 힘으로 남아있다. (몇천년을 살아남은 그리스의 비극이 생각날 정도이다.) 물론 어떤 것의 프레임이 훌륭하다고 해도, 디테일이 받쳐주지 않으면 명작으로 남을 수 없다. 젊은 소설가 김애란의 디테일은 이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성장과 노쇠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이다. 이 프로세스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TV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근본적 비밀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 대해서 함부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의 누구도 정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젊은 소설가는 과감하게 질문을 던진다. "답을 줄수는 없지만, 꼭 생각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요?" 라고 묻는 듯 하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솔직해질 수 밖에 없다. 죽음과 직면해서는 평소에 잘 통하던 자기기만은 통하지 않는 법이다. 죽음과 소멸을 항해 가는 과정이 '노화'이다. 늙는 것. 그것은 대체로 느리기에 자기자신을 속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 아름이는 빨리 늙는다. 그 아이는 부득이 "삶 혹은 죽음"의 속도를 느끼고 그 본질과 마주서야 하는 것이다.

 

죽는 것, 사는 것, 늙는 것은 모두 아픔/고통이다. 아파 본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을 가져다 주는 지 안다. 아픔은 죽음을 얼마만큼 대신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 과정을 겪으면, 자기 자신에 솔직해 질 수 있고, 부질없는 집착을 버릴 수 있다. 세상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새로운 앎과 삶을 향한 또 다른 길을 열어 준다.

이 젊은 작가는 아픔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비극 속에서 낙관을 이야기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이 더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기발한 반전을 좋아하는 듯 하다. 작고 큰 반전들이 거듭되면서, 가장 큰 반전을 예측하게 되었다. 이 점은 아름이 부모님이라는 매우 중요한 인물들의 비중이 소설 후반 지나치게 줄어드는 것과 함께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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