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코믹스.

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수학(혹은 수리논리학)에 대한 만화인 로지코믹스는 여러가지 면에서 정말 뛰어난 책이다.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정작 읽게 된 것은 어쩌다 회의시간보다 한시간 빨리 도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회사 도서관에 갔는데, 이 묵직한 책(무게와 내용 모두)이 있었고, 서서 몇페이지를 읽다가는 그대로 빠져들게 되었다.

버트런드 러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에 한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읽은 그의 책들은 철학자로서, 문학가로서(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정치운동가로서의 러셀이었다. 그가 유명한 수학자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르게 그의 수학적인 업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로지코믹스는 수학자, 수리논리학자로서의 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로지코믹스의 저자인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크리스토스 파파디미트리우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그리스 사람들이다. 그림을 그린 알레코스 파파다토스도 그리스 사람이고, 애니 디 도나는 알레코스의 부인이다. 저자들은 수학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독시아디스는 15세에 콜럼비아 대학에 입학한 수학자이면서도 그리스에 돌아가서는 연극과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고, 파파디미트리우는 컴퓨터공학자로 빌 게이츠가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들은 이 만화책에 그들의 모든 장점들을 결집해 놓았다. 러셀의 삶의 궤적에 따라가면서 풀어내는 수학자들의 세계에는 탄탄한 스토리가 엮여 있으며, 대사들은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림들이 가지는 콘티의 완성도도 매우 훌륭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 책을 옮긴 전대호씨의 번역실력도 매우 출중하다.

이 책은 수학자들이 가지는 "논리와 광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극도로 논리적인 기호체계인 수학은 수학자들의 아주 감성적인 열정에서 비롯된 학문이다. 그들의 열정은 일종의 광기로도 비춰질 수 있을 정도이다. 논리학은 수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진리의 토대를 찾아 헤맨다. 이 책의 다른 이름은 "토대를 찾아서"인데, 러셀은 어려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우면서 느끼는 명징한 즐거움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기하학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공리들이 의심되지 않는 것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토대를 찾아서 헤매인다.

그는 그가 존경하던 수학자와 수리논리학자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집합론에 대해서 "러셀의 역설"을 발표함으로써 수리논리학 분야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더불어 10년간 진리의 토대를 고민하는 책 '수학원리'를 집필한다. 하지만, 그는 그 책이 모든 진리의 토대를 찾는데는 실패했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그 고민의 과정들은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 하는 등 '토대'로서 역할을 한다.

저자들은 수학자들의 광기를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와 묘하게 병치시키면서 스토리를 끌어간다. 그리스의 학문적, 문화적 성취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수 있었다. (2012년 거의 국가 부도사태를 맞은 비극적인 상황이 한층 더 오버랩되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게오르크 칸토어, 고틀로프 프레게, 다비드 힐베르트, 앙리 푸앵카레, 버트런드 러셀,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존 폰 노이만, 쿠르트 괴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앨런 튜링 등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들의 업적과 생각들, 그들의 관계, 그들을 둘러싼 비극들이 이 책이 다루는 내용들이다. 작가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이 책은 수학 자체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수학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물론 수학적인 내용들도 알기 쉽게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