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 참을 수 없이 궁금한 마음의 미스터리
말콤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얀 그레스호프는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앗아가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어떤 것을" 이라고 좋은 책을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자면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는 아주 좋은 책의 범주에 속한다. 글래드웰은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우리가 확신하는 것들을 세련되고 지적인 형태로 빼앗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잡지 New Yorker에 기고되었던 글들을 모은 결과물이고, 글의 범주는 '문학적 저널리즘'에 속한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마치 소설과 같다. 이런 문학적 방식은 글에 접근하는 문턱을 낮추어 주고, 쉽게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단순한 정보와 지식을 넘어서는 통찰을 담고 있으며, 그 통찰에 대한 확실한 근거들이 제시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기능 역시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의 독자로서 내가 빼앗긴 '확신'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 시장을 뒤흔드는 무작위적 사건에 인내심과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는 투자가들의 논리

 : 블랙스완의 저자이자 월가의 투자가인 나심 탈레브의 이야기다. 그는 주가는 통계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같은 금액의 수익과 손실에 대한 대부분의 투자자들의 생각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기는시장을 뒤흔드는 무작위적인 사건(데이비드 흄이 말한 검은 백조)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Fat Tail에 대해서 옵션을 매수한다. 평소에는 소소하게 잃지만,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수익을 얻게 된다. 확신과 인내가 놀랍다.

- 문화적으로 규정되는 여성들의 몸

 : 1960년 미국에서 여성들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식의 피임약 판매가 승인된다. 피임약을 둘러싸고 종교적, 윤리적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연 이제 더 이상 다산을 하지 않는 문화적 특질에 의해 여성들의 권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스트라스만은 평생 생리 횟수가 100번에서 400번으로 늘어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과거보다 잦아진 생리횟수가 난소암과 자궁내막암, 유방암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다산을 위해 진화된 여성의 몸은 문화에 의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 퍼즐과 미스터리의 차이, 위축과 당황의 차이

 :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정보가 더 많아야 한다. 반면 미스터리는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제 정보를 수집하는 첩보원의 시대는 가고,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분석가의 시대가 온다.

 : 위축은 너무 많은 생각으로 초보자처럼 돌아가게 되는 것이고, 당황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상태를 말한다. 

- 조숙한 천재라는 신화에 반하는 대기만성형 천재들의 이야기

 : 하늘이 내린 어린 천재들과 상반되는 대기만성형 천재들이 많다. 오랜 시간에 걸쳐 꾸역꾸역해나가는 그들의 꾸준한 노력이야 말로 진정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닐까?

- 차별화와 지지라는 맥킨지식 인재경영 논리의 허울

 : 역사상 가장 쓰레기같은 기업으로 기억될 엔론의 인재경영은 맥킨지의 차별화와 지지라는 논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프로파일링이 얼마나 범죄 수사에 도움이되는가에 대한 상식

 : 기막힌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을 통계적인 눈으로 보면 허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한다. 전설적인 프로파일러의 활약만 기억에 남게 될 뿐더러, 한개의 사건 내에서도 맞는 것만 남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통계를 비웃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확률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이러한 사람들은 나중에 남들에게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심리학의 결과물들을 아주 흥미롭고 쉽게 독자들에게 해석해 주는 말콤 글래드웰은 마치 어려운 기술을 잘 해석한 후 조형이라는 시각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디자이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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