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음, 김현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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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사놓은 책. U2 보노의 추천으로 시작하는 책.
나는 이 책을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 방식으로 책상 위에 오래 두고 읽었다. 

저자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매우 이상적인 사람이다.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에다 볼리비아와 폴란드, 러시아, 중국 등에서 활약하여 경제학자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마치 경제학 분야의 히딩크와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 이후로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세상의 빈곤을 몰아내기 위한 좋은 일에 그의 에너지와 능력을 사용한다.  

그는 이성을 믿으며, 그것이 가져올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굳게 신봉한다. 그래서 그가 발전경제학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는지도 모르겠다. 550페이지가 넘는 책 곳곳에 배어있는 그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의로운 행동. 그러한 가치들의 촉구는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그런데, 명석한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그녀의 명저 "쇼크 독트린"에서 제프리 삭스를 맹렬히 비난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삭스와 클라인의 차이가 어디에 기인하는 지를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이성과 인간미를 바탕으로 선한 자본주의는 가능하다. vs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재앙이자 악이다.

삭스는 선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쪽이다. 비록 그는 이 책에서 브레턴우즈 체제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들(세계은행이나 IMF)의 빈곤국 지원 행태를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시장,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변수를 고려하고는 있으나 내가 보기에 그의 생각들은 매우 선형적(linear)이다. 경제 발전과 그로 인한 풍요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발전의 단계는 대체로 하나의 길로 귀결된다.

빈곤국은 발전의 사다리에 첫발을 내딛여야 절대적인 빈곤을 이겨낼 수 있으며, 사다리를 먼저 오른 선진국들은 극단적 빈곤국들이 지닌 부채를 탕감해 주고, 국가 GDP의 0.7% 정도를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런 조건없는 부채탕감이나 무상원조? 이러한 논리는 시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반시장적이고 현실적으로도 선진국들의 단기적 이익에 반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프리 삭스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역시 '이익'에 근거하고 있다.

제프리 삭스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초토화된 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실행한 마셜플랜 같은 대외정책이 장기적인 결과로는 미국에 그리고 각각의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록, 마셜플랜이 입안되고 실행될 수 있었던 배경이 (미국과 유럽의 문화적 인종적 동질성, 이데올로기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냉전시대 상황)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 나오미 클라인의 입장을 살펴보자. 그녀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재앙이다. 그런 그녀에게 인간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선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고 외치고 행동하는 제프리 삭스는 밀턴 프리드먼이나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네오콘 들보다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아마도 아름다운 포장지에 쌓여있는 대량살상무기 같았을 것이다. 

나는 나오미 클라인의 입장에 좀 더 동의한다. 제프리 삭스가 냉전시대에 IMF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처방전으로 남미와 동유럽, 러시아, 중국 등에서 수행한 시술들에 의해서 세상은 균형을 잃은 측면이 있다. (이러한 행적은 사실 "빈곤의 종말"의 메인 테마는 아니다.) 시간이 꽤 지나서 그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처방한 '쇼크'의 상흔이 아물어 가긴 한다지만, 그 쇼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내 '쇼크'라는 단어에 대해서 다소 억울해 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가 얻는 개인적 명성도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에 가장 적합한 "인재"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보통 시대를 앞서가는 정도의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은 살아서 홀대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삭스가 볼리비아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처방을 한 후 발전을 원하는 수많은 나라에 불려 다녔다. 그가 한 경제적 처방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의 명성은 신자유주의의에 의해 보호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나온 제프리 삭스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밀레니엄 프로젝트(2025년까지 지구에서 절대적 빈곤을 끝내자는 프로젝트)에 쏟는 노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 빈곤을 끝내기 위해서 그가 추진하는 방식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적합하고, 힘이 있다. 빈곤을 끝내려는 여러가지 방법 중 유력한 하나이다.

여러 맥락을 제외하고, 책 자체에 대해서만 평가해 봐도, 이 책은 매우 친절하고 잘 구성되어 있다.언제 읽을 지 모르겠지만 그의 최근작 [커먼웰스: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도 구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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