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있었다
임영태 지음 / 창해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달빛이 주는 존재의 사색

 사실 달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은 빛을 내는 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은 언제나 우리에게 사색의 빛을 던져 주곤 한다. 비록 지금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광물 덩어리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달에 얽힌 모든 상상과 사색들은 나에게는 아직 생생한 신화로 남아 있다.
 게다가 달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래서 달빛은 헤어지는 두 아이를 모두 집까지 바래다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달빛 역시 세 명의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상처와 고통의 삶을 비추어 준다.

깡패와 시인, 그리고 둘과는 위상이 좀 다른 이름을 가진 여자.
이 세 명의 주인공은 남다르게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진정한 주인공인데 다른 소설에 비해서 배경이나 관념적 설명, 다른 인물들의 비중은 의도적으로 축소되어 있고, 오직 이 세 명의 인물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소설의 배경은 놀라울 정도로 인물에 종속되어 있는데, 그 공간이 너무나 협소해서 세 명의 주인공들은 큰 개연성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데, 그래서 이 소설의 공간은 마치 작가의 머리 속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혹시 이 세 명의 인물은 작가의 Id, Ego, Superego가 소설 속에서 형상화 된 것은 아닐까? 물론 본능적인 삶을 사는 폭력적인 깡패는 Id, 시적 영감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 고뇌하는 시인은 Ego, 놀라운 언어 능력에 종교적 감성을 지닌 여자는 Superego이다. 
 아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폭력이다. 그 폭력에 사고를 제한당한 심리학 전공자의 억지스럽고 유치한 상상일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소설을 다 읽었다. 그리고는251쪽에서 작가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가가 밝히는 이 소설의 주제는 ‘상처를 통해 획득하는 존재증명’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불교적 세계관과 ‘나는 생각하고 그래서 존재한다.’는 서양의 철학자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존재를 연역하는 서양의 이성중심, 뇌중심 사고에 비해서 인생의 고통에서 존재의 확신을 얻었던 동양적 존재의식!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단지 앎이 아닌 삶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불교의 사색이 이미 읽었던 소설에서 밀려온다. (내용없는 형식이 없듯이 서양철학자의 앎도 삶과 철저하게 유리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존재에 관한 진지한 생각을 접할 때면, 난처한 느낌이 없지 않다. 형이상학적 내용자체가 낯설고, 부담스럽기도 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언뜻 밖으로 내어 놓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왠지 모를 생각이 내 속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람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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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간 20번이나 고쳐 쓰고, 스스로에게 만족이 되는 이 소설을 반나절에 읽은 것이 작가에게 조금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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