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외로움 족의 담담한 세상보기

 약간 우울한(mild depressive) 사람이 세상을 가장 정확하게 본다는 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있다. 이 결과는 논문 속의 복잡한 수치와 분석 기법 보다는 오히려 은희경의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에 더욱 잘 구현되어 있었다.

 우울이라는 감정도 약물로 조절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하려면 일단 외로워야 한다. 그리고, 외로우려면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줄 아는 조건들이 절실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모두 그렇다. 경제적 문제가 크지 않은 30대의 지성을 갖춘 여성 혹은 남성들. 인생의 절반쯤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삶의 문제들은 죽음처럼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의미 ; ‘사랑’에서 쿤데라가 한 표현) 다가온다. 벗어나기 힘든 일상들과 환상들 속에서 타고난 외로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외로움의 족속들은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일상이라는 것 만큼 복잡한 양가감정을 지닌 단어가 또 있을까? 일상의 지겨움과 일탈의 두려움. 어떤 하나를 택하기에 다른 한가지의 기회비용이 너무나 커보이는 그런…. 그래서 사람들은 환상을 택하기도 한다. 일상을 살며 일탈이라 느끼는 환상. 사람들은 일상의 지겨움을 넘어서기 위해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끊임없이 증폭시켜 살아간다. 이런 환상의 주된 주제는 바로 사랑과 고통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소설의 주인공 만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을 벗어난 삶을 살아 감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고통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절대 환성 속으로 밀어넣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외롭게, 한 점의 과장도 없이, 담담하게 자신과 직면하고 있었다.
삶은 어차피 억지스런 의미 부여와 과장 또는 증폭과 상관없이 내 것인 듯, 내 것이 아닌 듯, 그렇게 나비 마냥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것임을 아는 듯이 모르는 듯이…..

 이 담담한 태도는 나의 감성에 들어 맞는다. 더구나 작가는 뛰어난 관찰과 표현으로 일상속에서 비일상성을 끄집어 내고, 일탈 속에서 일상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가을을 닮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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