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무지개 씨앗을 뿌리는 인문주의자 무소작의 여행기

`지지직~` 갈라진 마당 틈새에서 기어나오는 개미를 초점을 잘 맞춘 돋보기로 오그라뜨리는 장난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왜 그렇게도 신나고 재미있었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어린 시절 다소 잔인한 장난이 내 머리속에 다시 떠오른 것은 이청준의 신작소설 "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를 접하고 나서다.

어린 무소작 처럼 집안에 혼자 남겨진 나는 은빛 테두리에 손잡이가 검은 돋보기를 들고 개미사냥에 나섰다. 아직 어려서 정밀하지 못한 손으로 어렵사리 햇빛을 모아 신나게 개미를 오그리고 있었는데, 난 문득 놀라운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프리즘을 통해 비친 `무지개`였다. 난 곧 개미사냥을 잊고 `무지개`에 매료되었다. 강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빛이 어울려 내는 아름다움을 뿌리는 그 빛에 매혹된 채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다소 엉뚱했던 어린 무소작은 소풍길 큰 산에 올라가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를 어렴풋이 느끼곤 떠나게 된다. 읍에서 서울로, 서울서 세상으로.... 그도 `강함`보다는 `아름다움`에, `같은 것`보다는 `다양한 것`에 매료된 것은 아닐까? 떠돌이가 된 소작이 다른 것을 찾고 그것이 익숙해 지면, 또 다시 다른 것을 찾아 헤매이는 것은 마치 무지개를 찾아 나선 사람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떠돌이 무소작도 세월을 비켜 갈 수는 없었고, 마침내 더 이상 직접경험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경험을 퍼뜨리는 이야기꾼이 된다.

사라져 버린 고향에서 소작은 좁은 하늘아래 사는 고향사람들의 일상에 `다름`을 더해주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점점 무소작의 이야기가 익숙해 지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다름`을 통해 `다름`과 `같음`이 맞닿아있고, `보편`과 `특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야기 꾼 소작도 `밖의 경험`에 비해 형편없는 `안의 경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유일한 안의 경험인 꽃씨 뿌리는 할머니 이야기를 비롯한 이야기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게 된다.

`강함`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같음`에 `다름`을 더해주는 사람이야 말로 인문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강함`과 `같음`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아닌가?

이 책을 덮을 즈음 늙은 이야기꾼 무소작씨는 그렇게 세상에 무지개의 씨앗을 심으며 세상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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