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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모색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먼지 바람 속에서 부릅 뜬 빛나는 눈
“먼지 바람 속에서도 난 눈을 뜨고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룹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가사 중 한 대목이다. 혼란과 복잡함, 무질서한 변화 등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도 방향감각을 흩트리는 먼지바람이 가득하다. 이런 먼지 바람 속에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난 얼마 전 이런 먼지 바람 속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한 거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바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이다. 학문적으로도 이미 가장 훌륭한 언어학자, 심리학자인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일을 바라보는데도 게으르지 않은 외계인 같은 사람이다. 특히 그는 냉전의 종식이후 마치 물이나 공기와 같이 당연해져 버린 소위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롭게 경쟁해서 이긴 사람이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억울하면 출세해라….”라고 한마디 하는 것을 세련되게 포장해 놓은 힘의 논리, 적자 생존의 논리이다. 물론 이런 경쟁적인 요소가 변화와 진보를 위한 원동력이 되는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힘의 논리의 맹점은 게임이 진행되는 법칙에도 이러한 힘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예를 들면, 운동 경기에서 심판을 매수하여 이긴 편에서 “심판을 매수하는 능력도 힘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가장 저열한 수준의 힘의 논리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이 유지되는 것은 이런 논리가 근본적으로 이미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힘은 또 다른 힘을 낳고 그것은 현실을 더욱 공고히 한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힘은 돈으로 나타나는데,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돈과 힘의 편중현상은 과거에 비해 더욱 확실해 졌다. 그리고 이 사실은 여러 분야의 기득권층이 얽혀서 설계한 선전술과 같은 기만책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진다.
빛나는 두 눈을 가진 촘스키는 이 책에서 절대강국인 미국이 저지른 중남미 등에서의 경제적, 정신적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WTO, NAFTA, MAU) 그러나 냉철한 촘스키의 분석 뒤에는 따뜻한 가슴이 느껴진다. 그가 진정으로 고발하는 것은 형식적인 제도의 맹점 뿐만이 아니라 한없이 추락하는 ‘사람의 가치’인 것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사람을 넘어서는 이윤(profit over people)’ 이다. 그는 이윤을 위해 다수를 기본적인 인간의 생활로부터 소외시키는 소수의 욕심과 그 책략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권력에도 흡수 고용되지 않고, 다수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하는 진정한 지성인의 태도를 보이는 촘스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또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런 감동은 감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애틀에서 일어난 WTO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나 다자간 투자협정(MAU)을 저지시킨 사건이 그 예이다.
이 즈음에서 이렇게도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라는 힘의 논리를 대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한숨이 나온다.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 복지의 기반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라는 논리가 미국보다 더욱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에 대한 의심없이, 소외되는 다수에 대한 배려없이, 모든 것을 가지는 소수에 편입되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 같다. 이 방향 모를 질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먼지 바람 속에서도 눈을 떠야 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