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정수진 외 옮김 / 큰나무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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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뒤죽박죽 세상, 뒤죽박죽 인간 ; 세기를 뛰어넘는 한 천재의 성찰


 

 “천재는 악필이다.”


 

 글씨를 못쓰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주 인용하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문득 "천재는 악필"이 아니라, "악필이 천재를 만드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줄에 맞춰 또박또박 쓰인 글씨에는 정형의 아름다움은 배어있으나, 파격과 일탈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다.

반면 삐뚤 빼뚤 쓰인 악필 사이로는 이미 존재하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심과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생각이 스며 들어가는 틈새가 보인다. ; 내가 생각하는 ‘천재’란 기존의 것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파괴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천재라고 생각한다. 아니 위의 논리를 따르면 그의 파란만장하고, 극적인 삶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의 이름과 달리 1800년대를 살다 간 사람이다. 그 시대는 인간의 이성(理性)이 가장 신뢰 받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는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이야기 한다.(그의 소설에는 언제나 일반적 기준에서 보면 반쯤 미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죄와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악령의 키릴로프,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 이런 생각은 한 세기 뒤에 인간의 집단적 광기가 표출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증명되었고, 이 사건들은 반이성주의, 실존주의 등에 영향을 주었다.

 
 세계대전 후에는 어떠한가? 기막힌 기획으로 자행된 테러행위나, 터무니 없는 욕심으로 인한 명분없는 전쟁과 그것으로 인한 빈곤과 고통. 돈이 사람의 가치를 넘어서고, 사람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도구의 도구가 되는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성적인 세계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아니 이렇게 큰 시대정신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서도 이런 생각은 유효하다. 불완전한 인간들의 일상은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사소한 감정적 기복에 더 크게 좌우되지 않는가?
작가는 ‘질투’라는 책에서도 이성적이지 않은 삶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묘지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의 기묘한 대화를 엿듣는가 하면(아마도 그의 섬망증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되는….),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나 크리스마스에 얼어 죽는 한 모자의 이상한 이야기들 말이다.

 
 물론 위대한 ‘이성의 힘’을 통해 인간은 좀더 긴 삶을 살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들이 축적한 훌륭한 지적 자산들도 이성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부정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뒤죽박죽이고, 인간의 삶도 마음도 뒤죽박죽이라는 것 역시 부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불완전한 인간은 영원한 "수정궁"(‘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 밝혀지는 '수정궁'의 숨은 뜻은 이성으로만 돌아가는 차갑고 투명한 사회를 말하고, ‘죄와 벌’에서도 선술집의 이름으로 암시적으로 등장한다.)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씀이다.
 

--------------------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작은 단서 -----------------


 

 도스토예프스키 읽는 순서 : 지하생활자의 수기 -> 죄와벌 -> 악령 ->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
(‘백치’라는 소설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죄와벌과 악령사이에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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