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노혜경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노혜경의 에세이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는 전투적인 휴머니즘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주류의 횡포를 또박또박 지적하고 있고, 그

주류들의 눈으로는 충분히 악랄해 보일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매우 적

절하다. 우리 사회는 권력의 위계가 너무 지나쳐 병적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권

력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의외로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일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주류에 대한 강박적인 동경은 때때로 많은 희생을 낳

고 있다. 그리고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당연해

진다. 이러한 당연함이 그러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소외되는 소수들은 그 중의 소수를 다시 소외시킨다. 커다란 그리고

당연한 틀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그 대표적인 편가름은 여성 대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에게는 당연함으로 여겨지는 많은 것에 상처

를 받고 있다. 때때로 남성들의 무의식 수준의 폭력은 상식 이하의 수준이다. 그러나 노혜경은 단지

여성들의 대변자가 아니라 인간을 대변하고 있기에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휴머니스트이다. 여성이

한정된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거창한 야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남자로 혹은 여자로서 당연

한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챕터의 제목 "아버지와의 전쟁"은 괜찮은 작명이다. 모든 권위로 대표되는 아버지는...

그녀의 말처럼 경배의 대상이 아니고,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다. 친부 살해의 모티브는 종교적이다.

소포클레스와 프로이트의 "오이디프스 왕"이나 "죽음의 한 연구"에서의 촌장 유리의 경우나, "카라마죠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챠코프나... 모두다 그렇다.


정신적 친부살해가 청출어람이 아닌 패륜으로만 기억되는 우리사회의 병적인 자화상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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