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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지음, 박정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성경에 관련된 책이긴 하되 종교서적은 아니고, 인문학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지식사회학 혹은 언어역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보면 되겠다. 영원한 스테디 & 베스트 셀러인 성경은 문자와 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분석하는데 가장 좋은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와 역자는 고대언어학자여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면이 있다. 책의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도 논리적이긴 하되, 흥미롭지는 않았다. 저자는 성경이라는 대상을 둘러싼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맥락들을 논거로 성경이 책이 된 시기와 그 의미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이 책의 독자로서 나의 관심사는 성경이나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에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지식이 구성되고, 기록되고, 전달되고, 해석되는데 있어서의 문화의 영향력이 더 관심을 끌었다. 저자가 이 책의 18~19페이지에서 제시하듯이 텍스트(text)보다 중요한 것은 컨텍스트(context)가 아니겠는가? 책을 읽는 내내 푸코가 말하는 "에피스테메"와 같은 지식과 문화의 지층을 바라보는 느낌을 가졌다.
성경은 누구인가에 의해 쓰여졌으며,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성경이 지니고 있는 남성적인 시각은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당하고, 이스라엘 역사라는 특수성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성이라는 미덕을 위협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성경이 가진 권위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비판적인 시각을 허락하지 않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아마도 기독교를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상당히 불경한 책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성경은 믿음의 대상이지 분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과연 성경이 누구에 의해 쓰여졌는지에 대해 일반적인 궁금증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누구에 의해 쓰여졌는지 보다는 언제쓰여졌는지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그러한 주장은 당시의 문화적인 상황을 볼 때 타당해 보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문자와 책은 더 이상 희귀하지 않아서 신비로운 것이 아니며, 숨쉬듯이 당연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너무나 차고 넘쳐서 쓰레기나 소음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성경(구약)이 쓰여지던 무렵의 상황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문자는 매우 희귀한 것이었고, 권력을 상징했다. 당시의 기록자는 단지 기록자의 역할을 했을 뿐, 자신의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자라는 관념이 없었기에 누구에 의해서 쓰여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자는 앗시리아 제국의 출현에 의한 역사적 사건과 문화적 환경을 분석하고, 히스기야 왕에 이르러서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서 유사한 방식으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책으로서의 성경이 갖는 의미들을 전달하고 있다.
과거 중동지방의 역사에 대한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분석방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숨쉬듯 당연한 것들의 총체 = 문화"를 역사적으로 분석하여 그들의 상황과 시각으로 연구하는 방식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해주는 듯한 탈맥락적 연구방식보다 더 객관적이고 보편성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