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요즈음 뜨고 있다는 모로코에 대한 여행기, 하루 이틀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분량, 감성적인 사진에 대한 과감한 지면 할애, 커피샵과 연계된 마케팅 전략, 노란 책갈피줄과 하드커버를 사용한 양장본....

이 책은 베스트셀러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9800원의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대량생산과 소비로 원가절감하고, 할인율을 크게 하면 소비자의 지갑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에 이 처럼 화려하게 부활한 엘리아스 카네티의 1968년 작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는 대한민국의 메이저 출판사 민음사의 야심작인 듯 싶다. 하지만,  카네티의 이 30년 전 여행기를 읽는 것은 헐리우드의 기획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작가보다는 독자와 판매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 적어도 내게는 유쾌한 기분을 주지는 않았다. (엘리아스 카네티라는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약간은 안타깝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유태인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했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에서 독일어로 작품을 쓴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 역시 집단과 군중의 광기가 발현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군중과 권력'이라는 사회학 연구의 결과물을 내 놓기도 했다고 한다.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는 저자의 이러한 삶과 지식의 여정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카네티는 모로코라는 낯선 나라의 낯선 풍경들을 그려 내고 있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대단해서 여기 저기 다녀 보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본다.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다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60년대 모로코 아랍인이 가지는 미국인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알제리나 모로코의 도시는 탈집중화되어 있는 형태로 프랑스인들의 엄청난 공세에도 안정적으로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였다고 하지만, 다한의 마음 속에 있는 마음의 구조물은 강대국의 경제적 공세의 상당부분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비루한 당나귀의 욕정에 대한 에피소드는 영화 '화엄경'에 나오는 "욕망을 비웃지 마라, 보살의 씨앗이다."라는 가르침과 상통하는 깨달음에 이른 것 같고, 눈만 내 놓은 여인들이 사뿐 사뿐 던지는 빵을 고르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이처럼 카네티의 관찰력은 뛰어나고, 감수성은 예민해 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그의 관찰력과 감수성은 높은 지식 수준을 가진 백인 남성이라는 우월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 느낀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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