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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폴 오스터의 '거대한 괴물'을 빌리게 된 것은 Leviathan이라는 원제목이 영어로 병기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읽었던 두권의 오스터의 책이 '개인'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만 치중하고 있었고, 상당히 유사한 면이 많았다. 두권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세번째 책은 뭔가 조금 차별화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토마스 홉스가 말한 Leviathan이 제목이라면, 개인과 사회와의 이야기일듯 싶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의 불화와 갈등을 예상했고, 역시나 앞선 두권의 책보다는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졌다. 지속되는 우연의 연속은 디마지오와 릴리언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절정에 이르렀고, 솔직히 난 이 장면에서 책을 덮고 싶을 정도였다.
더구나 디마지오의 캐릭터는 다중인격자 같다. 그는 난생 처음 본 친절한 소프트볼 선수를 쏴죽이지만, 알렉산더 베르크만이라는 사람을 연구한 지적인 박사다.
냉전/매카시즘과 베트남전, 가깝게는 이라크전과 911까지 미국인들도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지만, 근대사 100년을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에서 자라난 리바이어던이 훨씬 강하고 생생하다.
'나 다시 돌아갈래~!'를 목놓아 외치던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너무나 평범한 이름)가 생생하게 체험했던 현실에 비하면, 미국인들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다.
오스터는 괴물사냥에 실패했다. 그들의 리바이어던이 얼마나 무서운지 묘사하지 못했고, 시대와 역사라는 괴물에 치인 개인들치고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예술적 자의식이 강해 보여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정말 그 괴물이 무섭다면 인간들은 생존에 급급하게 마련이지 않을까?
괴물이 너무나 생생하고 컸던 한국의 작가들은 이 괴물을 빼고는 더이상 '삶의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괴물은 주로 정치적이고,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괴물이었고, 그 이야기들은 거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시대는 바뀌어서 괴물은 사라진 듯 보인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제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에 매료당하고 있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은 언제나 사람들 곁에 존재한다. 좀더 은밀해지고, 강력해진 변종 괴물의 실체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