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거울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북라인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생각의 거울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개성적 개념화의 산물이다. 이 철학 에세이는 제목처럼 서로 대칭되는 생각들을 '그럴듯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포크와 스푼과 같이 물질적으로 보이는 것부터, 아름다움과 숭고함, 존재와 무와 같은 미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개념들도 아우른다. 이러한 개념들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정의해 나가는 과정과 방식 또한 아주 자유로워서 (에세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언어학이나 철학 사유의 틀을 빌기도 하고, 신화 속에서 발견되는 집단적 무의식이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의거하기도 한다.

이것은 언어를 주된 분석의 대상으로 여기는 현대의 분석철학을 시도하되, 과학적인 엄밀함 보다는 고개 끄덕일만한 공감과 납득가능성을 추구하는 문학적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모던하면서 동시에 포스트모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인식의 영역 밖에 있던 것들을 개념화하고, 빈약한 사전적 의미만을 지니고 있던 개념들을 여러 근거들을 통해 풍부하게 만드는 작업은 훌륭한 가치를 지닌다.
더구나, 그 개념을 '생각의 거울'에 비추어 얻은 또 하나의 개념과 함께하며 일석이조 하고 있지 않은가?
(몇몇 개념들의 설명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문화적 특성 때문에 잘 와닿지 않는 것도 있긴 했지만....^^)

너무 관념적이기만 하고 실제 손에 잡히는 내용없는 칭찬이 너무 길었다.
하얀 마음을 가진 109페이지 "쾌락과 기쁨"을 살펴보자.

모든 창조에 수반되는 감정은 기쁨이다. 그것은 창조적 행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면모이다.
창조적인 일이 가져다주는 다른 보상(돈, 명예)은 비본질적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기쁨만이 창조의 고유한 속성이다.
(창세기 보면 천지창조가 이뤄지는 7일동안 매일매일의 창조가 "야훼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로 끝나는데 이 성경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쾌락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기쁨이 창조를 물들이고 있는 감정이라면, 쾌락은 파괴의 한가지 형태인 소비에 동반되는 감정이다.
과자를 만드는 법을 고안해서 과자를 만드는 제과공은 기쁨을 느끼지만, 배가 고파서 과자를 먹으면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과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이다. (도덕주의자들이 쾌락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과 쾌락이 분리시킬 수 없는 형태로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관능이다.
관능이라는 이 파괴적 열망은 창조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명쾌하고도 납득할만한 정의다. 
 

우리는 투르니에의 창조적 사고를 통해 세가지 관념에 대한 그럴듯하고 풍부한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읽은 나도 기쁘니, 만들어 낸 투르니에는 많이 기뻤겠지...?
하지만, 이 세가지 관념에 대해 또 다른 그럴 듯하고 풍부한 정의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잊으면 안된다.
창조의 기쁨이 투르니에만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조선의 선비들의 대부분이 주자가 명쾌하고 그럴 듯하게 해석해 낸 공자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면서 더 이상의 해석은 없다고 했을 때, 윤휴는 "주자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왜 주자만 맞다고 하고 나는 틀리다고 하는가?" 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윤휴는 기존 권위를 파괴한 자리에 자기 것을 창조하는 관능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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