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저자 권혁범 교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이다. 세상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그는 우리 사회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남성주의와 민족주의, 국가주의, 군대문화 등등을 배격한다. 다수의 횡포에 의해 억압당하는 소수의 입장에서 자유의 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라는 책은 여러가지 자유의 모습 중에서 여성주의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본 글들을 모은 것이다. 건강때문에 몇 년동안 고생했다고 밝혔듯이 출간년도(2006년)보다 한참 늦은 사례들이 약간 진부할지라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다가 느낀 불편함이 생각난다. 그렇지만 권혁범의 책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나도 남성이고 권혁범도 남성이기 때문일까? 냉정하게 분석하면 정희진의 책은 뭔가 탄탄한 논리보다는 언어적 사례의 나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언어는 사고를 표현하면서도 규정하는 속성을 가졌기에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그 수준이 다소 피상적이었던 것 같다. 반면 권혁범의 책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기제들을 논리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권혁범의 책이 엄청난 깊이의 이론서는 아니다.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다.)

이 불편함의 차이가 남성이 가진 여성주의와 여성이 가진 여성주의의 차이일까? 남성과 여성이 설득하는 혹은 설득되는 방식이 서로 다른 차이일까?

 

내게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는 페미니즘 그 자체보다는 억압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 것도 사실이다. 저자 권혁범이 가진 자유에 대한 관점을 지지한다. 앞에 '신'이라는 글자가 하나 붙었는데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이렇게 다를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어이없기도 했다. 신자유주의는 힘을 가지고 억압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말하는 자유이고, (권혁범의) 자유주의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에서의 남성중심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거의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유라기보다는 전횡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힘을 가지고 있는 기존 체제가 갖는 공고함은 무섭다. 그것은 그 세계의 게임의 룰이기 때문이다. 남성주의가 강한 조직에서 성공하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남성적이고 권위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세계의 게임의 룰을 받아들여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그 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배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게임의 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다. (남성적) 권위를 포기할수록 권위가 생기는 새로운 세대의 게임의 룰은 과연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에 발을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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