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를 보면 기막한 장면이 나온다.

9.11 때 월드트레이드 센터에서 자원봉사하다가 폐가 망가진 사람들이 의료보호를 받지 못하자, 그들을 배에 태우고 관타나모에 간다.

메가폰으로 관타나모에 갇혀 있는 9.11 테러 용의자들의 의료보호는 잘 되고 있는지 묻는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는 "물론 잘 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9.11을 위해 몸을 바친 사람들이 9.11을 일으킨 용의자들보다도 의료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밝히는 장면이다.

천재적인 장면 구성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읽기 전에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대답대로 의료보호를 제대로 받고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거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관심은 지식을 추구하게 되고, 지식은 더 큰 관심과 생각을 낳는 법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마비쉬 룩사나 칸이라는 마이애미 대학 로스쿨의 여학생은

"관타나모"라는 미국의 치부를 탁월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천부적 인권>이라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를 깊히 생각하게 된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미국에 위협이 될만한 사람들 수백명이 갇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 수는 전혀 미국에 위협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온화한 의사, 염소치기, 잘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 등등)

단지 미국인이 걸어 놓은 엄청난 현상금 때문에 잡혀온 사람들이 많은데, 보통은 정당한 법적 절차에 의해서 온 것도 아니다.

이역만리 타향에 잡혀와서 구속을 당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 대해 결백함을 주장할 만한 방법이 없다.

그런 중에 어떤 변호사들은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 관타나모를 찾는다.

그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법률서비스를 살 수 있을까? 국가에서 돈을 대주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들이 만족할 만큼은 아닐 것이다.)

억울한 수감자들은 처음에는 이해가 안된다. 자신들을 잡아 가둔 미국이 변호사들에게 비용을 대 줘가면서 그들을 변호하다니...?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법률적 안전판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도저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무시할 수 없다.)

이 법률 서비스에 아프가니스탄 가정에서 태어난 미국인 여학생은 통역으로 활동하게 되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모든 사람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는 가지고 태어난다.

그 최소한의 권리는 인간 본연의 도덕과 상식, 사회적 제도, 법률 등에 의해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도덕, 제도, 법률 들이 정교하게 발달한 것을 보면, 역으로 그것들이 얼마나 자주 파괴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그 인권 파괴의 비합리적인 힘들이 여러가지 얼굴로 그려지고 있다. 

국가라는 권력, 전쟁, 종교에 대한 모욕, 고문, 뻔히 보이는 거짓말, 상식에 반하는 권위에의 복종, 책임회피, 은폐와 기만 등등

물론 "인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그 결실도 있어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