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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전세계적인 관심과 그것이 가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한 현명한 사람이다.
엄청난 인구수를 자랑하는 인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로이는 첫번째 소설인 <작은 것들의 신>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고,
심지어는 부커상을 받게 되어 전세계 사람들로 부터 관심을 얻었다.
그녀 자신이 말하듯이 세상의 돈이 돌아가는 거대한 파이프 라인에 구멍을 뚫은 것 처럼 돈도 많이 벌었고,
그 구멍을 뚫은 수단이 부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관심과 명예도 얻었다.
이 부와 명예를 즐기며, 파티에도 참석하고 사고 싶은 것들도 사면서 기득권 층에 부드럽게 연착륙하면 되었지만,
로이는 그 돈과 명예가 쏟아져 들어와 그 힘에 자신의 온몸이 멍드는 것같았고, <작은 것들의 신>에 묘사된 모든 감정, 모든 느낌의 가닥들 하나하나가 은화로 바뀌어버린 것 처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178페이지)
이 보통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이질적인 마음의 반응들! 이 반응이야 말로 그녀가 현명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획득한 부와 명성을 "상상력"을 가지고 "공공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소설 이후로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던 두 편의 정치에세이 "상상력의 종말"과 "공공의 더 큰 이익"을 보려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생존의 비용을 참조하시라.>
파티에나 참석해주고, 인도의 이익을 위한 아름다운 소설이나 조금 써 주면 좋으련만, 이 여인은 왜! 도대체 왜! 댐건설과 핵무기 등에 대해 반대하는 글을 쓰고, 행동하는 걸까? 인도의 기득권 세력이 생각해 보면 정말 이해가 안가는 일일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한 소설가가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리우는 노엄 촘스키 같은 사람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가 가진 지적 능력이나 학자로서의 명예와 권위라면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을텐데....? (실제로 이책에는 촘스키 책을 위한 발문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대중들이 자신에게 위임한 힘을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힘이라는 것도 관계속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그 관계를 읽지 못하고 종종 착각한다. 한때 에어로빅 강사이기도 했다는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작가들은 자기가 이 세계 속의 이야기를 고른다고 상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작가를 골라냅니다. 이야기는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냅니다. 공적인 이야기든, 사적인 이야기든, 이야기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이야기 자신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라고 명령합니다. (63페이지)
이 이야기에서 로이는 자기 자신이 특출나서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연히 자신을 통해 쓰여진 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인해 얻은 권력을 댐과 핵무기, 마초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눈먼 세계화 등으로 고생할 사람들에게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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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엄 촘스키의 외로움
-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 새로운 미국의 세기
이 책에 실려 있는 글의 목차이다.
하나 같이 강한 것에 의해 소외받는 약한 것들을 보듬는 것들이면서도, 흔히 강자로 군림하는 집단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범할 수 있는 전체주의적 오류들 역시 경계하고 있다. 그녀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는 아마도 촘스키의 방대한 자료 조사만큼이나 큰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진 인도 여인에게는 좀더 많은 관심과 그것으로 비롯되는 힘을 몰아줘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