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디아스포라 기행은 재일동포 작가인 서경식 선생의 슬프고 쓸쓸한 에세이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경식 선생은 자신의 조국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디아스포라이다.

(원래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말하던 그리스어가 일반명사화 되었다.)

600만명에 달하는 코리언 디아스포라 중 한 사람인 서경식씨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이다.

 

이 세련된 에세이는 "태어난 곳에서 여지껏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느끼기 힘든 상실의 감정을 품고 있다.

비록 서울이라는 곳은 온통 아스팔트 뿐이어서 뿌리 혹은 고향이라는 감정이 싹트기 쉽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이 뿌리없음 혹은 근본적인 이방인의 느낌은 그의 글에서 아련하게 드러난다.

일본은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국인인 그 역시 일본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예민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서경식 선생에게는 그저 당연해 보이는 것들도 차별과 폭력으로 다가왔으리라.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 역시 그에게 따뜻하지 않다.

그의 두 형은 군부독재시절 조국인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정치범으로 잡혀 오랜 세월(19년간) 옥살이를 하게된다.

그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런 소속감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그에게 집단과 집단에 의한 힘의 행사에 대해 반감을 갖게 만든다.

그 정점에 있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파시즘은 그에게 끔찍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바그너의 다섯 시간짜리 오페라를 즐길만한 예술적 감수성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파시즘적 징후들에는 더더욱 민감하다.

가깝게는 그의 친형들... 그리고 윤이상 선생이나 이탈리아계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에게 상처를 준 모든 잘못된 구별짓기와 폭력에서 그는 치를 떨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일종의 여행기다. 런던과 광주, 카셀, 브뤼셀, 잘츠부르크 등을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과 생각들이 책으로 엮여 있으니....

사람들이 사는 곳,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흔적이 남는다.

그는 그가 밟고 지나가는 장소와 사람들이 만들어낸 예술작품 속에서 교묘하게 살아숨쉬는 고통과 차별의 흔적을 찾아낸다.

아무도 의뢰하지 않는 사건을 찾아 헤매이는 쓸쓸한 사립탐정 같다.

 

외로움은 자기를 의식할 줄 아는 모든 존재가 갖는 근본적인 감정이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없는 감정을 해박한 지식과 깊은 고민으로 숙성시켜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제 환갑을 앞에 두신 서경식 선생의 건강과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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