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의 저자 우석훈이 <88만원 세대>에서는 박권일과 함께 경제에 관한 세대론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알다시피 경제학에서는 희소한 자원과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분배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대체로 계급간의 분배 문제가 많은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분석의 단위가 바로 시간에 따라 나뉘면서 나름의 동질성을 갖는 집단인 세대라는 점에서 새롭다. 구체적으로는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지금의 20대가 구조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대론은 주로 정치 혹은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이러한 경제적 하부구조에 대한 세대별 분석은 또 다른 시사점을 주고있다.)  

저자에 의하면, 현재 20대들은 여러 가지 기회들을 구조적으로 갖지 못한 채 기성세대들에 의해 착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는 것은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쓴 1000유로 세대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은 조어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개념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눈치다. (20대 비정규직의 한달 평균 수입에서 나온 조어이다.) 우리의 88만원 세대들은 스스로 이 냉혹한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판을 짜기에 힘이 부족하고, 지금의 구조를 만들어낸 기성세대들은 88만원 세대의 독립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는 한참 무서웠던 인신매매라는 것이 없어진 이유를 수요와 공급에서 찾는다. 이제는 인신매매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허드렛일이라도 해야하는 공급이 많아 졌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사람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행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고, 5%정도의 안정된 정규직을 위한 <배틀로얄> 형태의 무자비한 상호경쟁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것은 88만원 세대에 속한 개개인의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88만원 세대들은 불합리하고 냉혹한 구조보다는 개개인의 경쟁력을 극대화하여 기존 구조에 성공적으로 편입하는 데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책의 맨 앞머리에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로 이들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20대 초반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데서 이 책을 시작하는데, 집값도 등록금도 생활비도 직장도 모두 젊은이들의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20대들은 일종의 사회적 약자이지만, 이들이 가질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해 주지 않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승자 독식의 잔혹한 게임은 한 세대내 경쟁이 세대간 경쟁의 모습을 띠면서 더욱 심해 졌다.

이미 상당부분 사라져버린 연공서열제도는 지금에서는 고리타분한 밥그릇 챙겨주기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 제도는 사회적 초년생들에게 유리한 제도인 셈이다. 비교적 출발선상이 비슷한 세대내 경쟁만 열심히 하면 되도록 구획을 나누어 주던 제도인 것. 권투로 말하자면 체급을 나눠주는 정도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장치가 사라지면서 많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가진 헤비급 선수와 플라이급 선수가 링에서 싸우는 꼴이 되었고, 20대들은 그 희생양이 되었다. 

각 나라에서는 이러한 세대별 약자들을 보호하는 여러가지 유무형의 사회적 장치를 운영하였고, 이런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문제의식조차 없이 20대들이 직장과 아르바이트 현장 등에서 착취당하고 있다. 20대들은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에 빠져 전체적인 구조를 볼만한 시간적 여유도, 지적 능력도 상실한 채 영어와 취업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기성세대들은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말고, 88만원 세대들이 사회적으로 좀더 책임을 가질 나이가 되었을 때, 밀어닥칠 재앙에 가까운 상황들을 직시하고 세대간 불균형의 문제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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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글은 장하준의 글보다 논리가 부족하지만, 확신에 찬 듯한 표현 때문에 독자들을 혹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나중에 "아님 말고..." 할 것 같은 왠지 모를 가벼움이 스스로를 B급도 아닌 C급 경제학자라고 칭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사례들을 포함한 그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특히, 이 88만원 세대라는 책은 많이 읽혀서, 경쟁은 곧 효율이라는 단순한 논리가 실제로 제대로 그리고 장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배려와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가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기 필마로 전 국민에게 내던진 이 낯선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고, 실제로 준비가 시작된다면 88만원 세대는 몇십년 후에 그의 동상이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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